노가다(건설 노동)의 꽃, 공수제
오전에 신규자 안전교육을 받으면 근로계약서를 쓴다.
이제야 진짜 일을 하게 되는 거다. 근로계약서에 나오는 포괄 임금제는 익숙하지가 않다. 건설 일용직은 주로 포괄 임금제를 사용한다. 기본급, 주휴수당, 연장근로수당, 연차수당이 모두 포함된 임금이라는데 대충 일당에 모든 게 다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다. 월 단위 계약인 일용직 건설 노동은 퇴직금도 없다.
중요한 것은 일당의 금액.
내가 받을 일당은 14만 원. 근로계약서에서 확인한 것은 이 금액이다. 다른 조건은 뭐 제대로 읽지도 않았다. 나만 쓰는 근로계약서도 아니고. 주간 8시간 근무에 14만 원이니 시급으로 따지면 1.75만 원이다. 꽤 좋다. 2002년 올해 최저임금이 9,160원이니 최저 임금의 거의 두 배에 이른다.
하지만 더 좋은 것이 있으니 공수제라는 노가다만의 임금 방식이다.
노가다, 즉 건설 노동은 시급제가 아니라 공수제라고 한다. 그럼 공수제가 무엇일까? 건설 노동에서는 주간 8시간 일당을 1공수라고 한다. 내 경우 1공수가 14만 원이다. 여기까지는 시급제나 공수제나 별반 차이가 없다. 노가다가 다른 일보다 시급이 좀 더 높다는 정도다. 내 경우 시급 1.75만 원짜리 일인 것이다.
공수제는 연장 노동을 할 때 시급제와 확연히 달라진다.
노가다는 하루 근로를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주간 8시간, 연장 2시간, 야간 2시간 그리고 철야다. 철야는 야간 근무를 말한다. 일반 시급제에서는 주간 8시간에 2시간을 연장하는 경우 두 시간의 시급만이 추가되거나 여기에 약간의 연장 수당이 붙는다. 하지만 노가다는 2시간 연장에 0.5공수를 준다. 주간 8시간에 1공수를 주는데 2시간 연장에 0.5공수를 주는 것이다. 여기에 다시 야간 2시간을 하면 다시 0.5공수를 준다. 주간 8시간에 연장과 야간 4시간을 하면 2공수가 되어 일당의 2배를 받는다. 이걸 시급으로 치면 노가다는 연장 1시간의 시급이 주간 시급의 2배를 주는 셈이다. 철야는 8시간 근무에 2공수를 쳐준다. 야간에 철야로 8시간을 일하면 주간보다 2배를 받는다.
내 경우 주간 8시간의 일당 즉 1공수가 14만원이니 연장 2시간을 하면 1.5공수로 21만을 받고, 여기에 야간 2시간을 추가하면 2공수가 되어 일당의 두 배 28만을 받는다.
고로 노가다는 연장에 의미가 있다.
노가다에서는 한 달에 며칠을 일했냐고 묻지 않는다. 몇 공수를 했는가를 묻는다. 한 달에 30공수를 했느니 50공수를 했느니 하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만일 내가 한 달에 일요일만 빼고 26일 내내 연장, 야간까지 해서 2공수를 했다면 (26일 × 2공수)해서 총 52공수를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달에 받는 내 월급은 (14만원 × 52공수)해서 세전으로 총 728만원이 된다. 경험이나 기술이 있어서 일당이 센 경우는 한 달에 천만 원 이상을 가져가기도 한다.
결국 노가다는 공수놀음이다.
주간 8시간은 공수를 받기 위한 밑작업이라고 할까? 진짜 돈은 연장에 있는 셈이다. 그래서 노가다하는 사람들은 공수가 많이 나오는 곳을 찾아다닌다. 요즘 농촌이나 조선소에 일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 특히 조선조에서 건설 노동으로 빠진 사람들이 다시 조선소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럴 만도 하다. 미안한 말이지만 농촌이나 조선소는 시급제이기 때문에 일단 공수제에 맛을 들이면 절대 돌아갈 수 없다. 다른 뜻이 있지 않고서는.
그럼 내가 일하는 곳은 공수가 많이 나올까?
그렇지 않다. 내가 일할 곳은 5일 근무에, 주당 2시간 연장 하는 날이 3일만 있다. 월, 화, 목이 연장이고 수, 금은 주간만 있다. 야간은 아예 없다. 주말은 무조건 쉬고. 이렇게 하면 한 달 22일 근무로 쳐서 평균 28~9공수가 나온다.
일부러 좀 여유 있는 곳을 찾았다.
나는 노가다 초보다.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괜히 욕심만 부리다가 오히려 몸 망가지거나 며칠만 하고 자의든 타의든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마냥 주간만 하는 것은 영 개운치 한다. 노가다 언어로 연장 없이 주간만 하는 것을 맨대가리라고 하는데 맨대가리만 하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심심하다. 노가다의 꽃은 연장에 있는데 이 꽃물을 조금이라도 맞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무슨 일이든 새로운 일을 할 때 일종의 워밍업 기간을 갖는다.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 멀리, 길게 가고자 할수록 천천히 시작한다. 장기 여행을 할 때 첫 장소에서 워밍업 시간을 갖는다. 한 일주일 정도 쉴멍 놀멍하며 몸을 풀어주고, 현지에 적응을 한다. 태국이나 중국 같이 마사지를 잘하는 곳은 오전, 오후 마사지를 받으러 다니기도 한다. 그렇게 천천히 현지에 적응하면서 서서히 텐션을 올리는 게다. 여행을 하다보면 첫날부터 신나서 열심히 돌아다니는 친구들을 보는데 대체로 오래 못 가서 탈이 난다. 내 경우 장기든 단기든 여행을 하면서 몸살 한 번 난 적이 없다. 2년 여 동안 세계 여행을 할 때에도 물론이다. 어는 정도 충분히 몸을 풀고 현지에 적응을 한 상태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런 워밍업 시간은 특히 고산 지역에서 중요하다.
3천 미터 이상의 고산 지대를 여행하는 경우 반드시 2~3일은 물이나 많이 마시면서 천천히 동네나 둘러봐야 한다. 괜찮은 것 같다고 첫날부터 고산 지대에서 발에 땀나게 돌아다니다간 당일이나 다음날 저녁에 지옥을 맛볼 수 있다. 고산증 제대로 오면 약도 없다. 고산증에 안 걸리려면 적어도 첫날은 마치 우주인이 달을 걷듯이 천천히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노가다에도 이 법칙을 적용했다.
더욱이 전혀 경험이 없고, 몸을 많이 쓰는 일이니 특히 내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일주일에 연장 3일도 경험이 전무한 내게는 장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분명 노다가의 꽃은 공수제에 있다.
돈이 필요한 내가 노가다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몸만 잘 적응한다면 몇 달 열심히 공수 댕겨서 1년 이상 세계여행을 할 수도 있다.
by 경계넘기.
'살아보기(국내) > 청주살이(20220521~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가다 이야기 9: 유도원은 편할 줄 알았는데...... (20220524-2) (0) | 2022.06.12 |
---|---|
노가다 이야기 8: SK하이닉스 M15 건설 현장으로 (20220524-1) (3) | 2022.06.12 |
노가다 이야기 7: 노가다(건설 노동)의 분야, 공종(工種) (20220523-3) (0) | 2022.06.12 |
노가다 이야기 5: 노가다(건설 노동) 첫날, 교육만 받았는데 일당을 준다! (20220523-1) (3) | 2022.06.07 |
노가다 이야기 4: SK하이닉스 출근길 답사 & 하이닉스 이야기 (20220522) (2) | 2022.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