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우(Lviv)에서 본 베르디(Verdi)의 오페라, 가면무도회(Un ballo in maschera)
아침은 리비우에서 유명하다는 크레상으로 해결한다.
크레상이라 해서 그냥 빵은 아니고 샌드위치라고 보면 된다. 종류와 가격대가 다양하다. 다만, 중심지의 크레상 가게에서는 손님이 많아서 제법 기다려야 한다. 우리도 먼저 나온 커피 다 마신 다음에야 크레상이 나왔다. 오늘은 한국인 여행객 친구만 혼자 보내고 난 호스텔에서 쉴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대충 다 구경한 것 같고 좀 피곤해서다.
저녁에 리비우에서의 첫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간다.
오늘 공연은 베르디의 가면무도회. 인기 있는 공연이라 그런지 대체적으로 가격대가 높았고, 그 마저도 남은 표가 많지 않아서 울며 겨자 먹기로 어제 450흐리브냐짜리 표를 샀다. 이번 여행에서 베르디의 오페라만 두 번째다. 첫 번째가 아르메니아 예레반의 오페라하우스에서 본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오페라는 줄거리를 알고 가야 감상에 좋다는 슬로베니아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여 숙소에서 쉬면서 가면무도회의 줄거리를 숙지하고 간다. 리비우의 오페라하우스는 지금까지 본 오페라하우스 중에서 규모가 가장 작았지만 건물 외관이나 공연장 내부는 모두 예뻤다. 작아서 그런지 무대는 조금 좁아 보였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오페라 보러 갔다가 7부 바지가 드레스 코드에 맞지 않다고 해서 입장을 못할 뻔한 일이 있었다. 그 덕에 이번에는 긴 바지에 셔츠까지 갖추고 들어갔지만 이곳은 드레스 코드를 그렇게 엄격하게 따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대부분 관객들은 정장을 갖추고 입장한다.
그런데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다.
생각도 못한 일이다. 더욱이 사이드 좌석은 너무 의자가 따닥따닥 붙어 있고, 각각 방으로 되어 있어서 더욱 더운 것 같았다. 드레스 코드를 맞춘다고 긴 바지에 긴팔 옷을 입었더니 더 덥다. 공연은 흥미 있었다. 특히, 하이라이트인 3막의 가면무도회 장면은 무대와 의상이 화려해서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다만, 베르디의 오페라는 라 트라비아타도 그렇고 춤이 많지 않아서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보인다. 아마 내가 오페라의 초보라 그걸 것이다. 나 같은 초보 오페라 관객에게는 춤이 많이 들어가는 로컬 오페라들이 더 재미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리비우에서의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클래식 공연을 보는 것. 마침 리비우 오페라하우스는 여름 시즌 공연이 지난주부터 시작한 터라 앞으로 두 주 동안에는 거의 매일 공연이 있다. 알고 온 것은 아닌데 축복이다. 알았다면 한 주를 더 빨리 오지 않았을까. 공연은 빠지지 않고 볼 생각이다.
한 나라 또는 한 도시에서 무엇이든 하나라도 제대로 챙길 수 있다면 큰 수확이고 결코 잊히지 않는 추억이 된다. 아르메니아(Armenia) 예레반(Yerevan)이 그 사례다. 예레반은 나에게 클래식 공연에 대한 첫 경험을 선사한 도시였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오페라와 발레를 감상했다. 덕분에 예레반은 오페라와 발레를 보거나 생각할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도시가 되었다.
예레반이 클래식 공연에 대한 첫 경험을 선사한 도시라면 리비우는 클래식 공연을 가장 많이 본, 즉 클래식 공연에 대한 깊이를 더한 도시로 내 기억에 남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공연을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물론 그렇다고 비싼 좌석을 앉겠다는 것은 아니다. 빼놓지 않고 보겠다는 것이다.
리비우에서 클래식 공연을 많이 보려는 이유는 우선 우크라이나가 오페라와 발레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역시 가격이다. 오페라하우스 공연 티켓이 대체로 50흐리브냐에서 시작한다. 1흐리브냐가 우리돈 50원 정도 하니 50흐리브냐면 2,500원이다. 만원 안팎이면 좋은 좌석에서 클래식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다만, 공연 일정을 보니 한 가지 고민거리가 있다.
7월 초에 볼만한 공연이 많이 걸려 있다는 것이다. 예레반에서 놓친 ‘카르멘(Carmen)’ 공연도 있고, 발레의 정수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Swan Lake)’도 7월 첫 주에 있었다. 한국에서는 비싸서 보기 힘든 공연. 사실 이번 달보다는 7월 초에 보고 싶은 공연이 더 많다. 이걸 보려면 폴란드 바르샤바와 독일 베를린을 포기하고 여기서 바로 비행기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넘어 가야한다. 바르샤바와 베를린에 볼거리가 많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국제사적으로 베를린과 바르샤바는 의미가 있는 곳이라 한번은 들려보고 싶은 곳이다.
쉬어 가는 리비우, 그런데 여기서도 고민이 끝이 없다.
심플하게 살고 싶어 여행을 떠난 것인데 여행은 더 많은 선택과 결단을 쉬지 않고 요구한다. 크든 작든. 무튼 내가 클래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여행에서 클래식에 눈을 뜬다. 그저 한 번의 경험으로 시작한 예레반에서의 오페라와 발레 공연이었는데...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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