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예보를 보면 오늘부터 쿠엥카가 계속 비였는데 아침 하늘이 좋다. 두꺼운 구름이 떠 있기는 하지만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는 아니다. 햇살만 창창하다.
어제 봐두었던 박물관과 유적지를 향해 숙소를 나섰다. 박물관 이름은 Museo Pumapungo. 중심가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면 나온다. 쿠엥카는 걷기 좋은 도시다. 구도심 여기저기 옛 식민지 시대의 스페인식 건물들이 있고, 곳곳에 성당도 있다.
박물관 가는 길에도 성당이 있다. 하얀색 건물의 성당. 이름은 lgesia de Todos Santos. 그냥 산토스 성당이라고 하자. 하얀색 건물이 보기 좋은데, 멀리서도 스페인식 주황색 지붕들 사이로 하얀색 건물이 돋보인다.
그 성당 아래로는 제법 규모 있는 하천이 흐른다. 멀리서 내려다봐도 물이 깨끗하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주변은 녹지로 잘 가꾸어져 있다. 맑고 푸른 하천이 도심을 감고 있으니 더욱 보기 좋다.
놀랍게도 박물관은 무료였다. 시설도 전시도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특히, 2층 소수민족관이 볼만하다. 에콰도르에 있는 소수민족들의 의상, 기구, 문화, 취락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들이 만드는 용품들이 매우 정교하고 예쁘다. 대나무나 천으로 만든 것들이다. 아쉽다면 대부분의 전시물이 스페인어로만 설명되어 있다는 것.
박물관을 나와서 옛 유적지를 가려고 했는데 나와서 보니 박물관을 통해서 들어가는 것이었다. 무료니 다시 들어가도 되지만 담장 안으로 보니 그다지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박물관을 돌아 내려와서 하천변을 걸어서 시내로 들어갔다. 어쩜 이렇게 하천을 잘 관리하고 보존했는지 쿠엥카만 보면 에콰도르가 남미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처럼 보인다. 하천 주변으로 잘 사는 집들이 늘어서 있다. 북미 사람들이 은퇴하고 이곳으로 와서 많이 산다고 하던데 그런 사람들이 집들인가도 싶다.
어제 걸었던 도시의 이곳저곳을 다시 걸어본다. 도시의 구조와 형태가 페루의 아레키파(Arequipa)를 연상시킨다. 구시가지의 모습이나 형태, 그리고 그 주변을 도는 하천의 모습까지도.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답게 아레키파보다는 옛 것들의 모습들이 더 남아있다. 길도 더 아기자기하다. 걷기 좋은 도시. 그렇다고 구시가지가 그렇게 넓은 것은 아니다. 넓이는 아레키파와 비슷하다. 반나절 정도만 걸어 다니면 대충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다.
오기 전에는 작은 도시일 거라 생각했는데 제법 규모가 있는 도시다. 찾아보니 에콰도르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구시가지를 둘러싸고 새로운 시가지가 매우 넓게 퍼져 있다. 그러다 보니 낮의 시가지에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성당들이 미사를 위해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어제는 잠겨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던 성당 안을 볼 수 있었다. 유럽 못지않은 규모의 화려한 성당들이었다. 미사를 들이고 있어서 이리저리 구경할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그 경건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쿠엥카에는 도심의 규모에 비해 성당들이 참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시가지의 가장 중심인 칼레론 공원(Calderon Park)을 사이에 두고 있는 신(新)성당과 구(舊)성당.
우선 공원의 서쪽에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는 신성당인 쿠엥카 대성당(Cathedral of the Inmaculate Conception). 푸른 세 개의 돔과 주황색 대리석 건물이 웅장하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내부도 크고 화려하다. 특히. 푸른 두 개의 돔은 저녁에는 조명을 받아 그 블루 빛이 더욱 도드라지면서 도심 곳곳에서 보인다. 그래서인지 성당이라기보다는 모스크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이 성당의 특징이 앞의 두 첨탑이 뾰족하게 올라가지 못하고 평평하게 남아 있다. 건축 당시 설계를 잘못해서 첨탑을 올리면 그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 맞은편에 쿠엥카 구성당(old Cathedral of Cuenca)이 있다. 이 성당은 현재 박물관으로 활용되어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고 하는데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그 외에도 산토 도밍고 성당(Santo Domingo), lglesia San Sebastian, Santo Cenaculo 등이 있는데 나름의 멋을 가지고 있는 성당들이다. 쿠엥카의 성당 순례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유럽을 거쳐 오면서 너무 많은 성당들을 봐온 관계로 성당에 대한 흥미가 많이 떨어져서 어느 성당이 어느 성당인지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분명 쿠엥카의 성당은 유럽의 성당들과 또 다른 멋과 향을 내고 있었다.
쿠엥카에는 거리마다 골목마다 작은 카페들과 레스토랑이 숨어 있다. 옛 건물들의 특징이기도 하겠지만 겉에서는 작아 보이지만 안으로 깊고 넓은 레스토랑들이 많다. 각 레스토랑들은 나름의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우러진 레스토랑들이 많이 보여서 식도락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흥미를 가질 만하다.
걷다가 힘들면 예쁜 카페에서 차 한 잔, 커피 한 잔 하고, 배가 고파지면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 한 끼 하기 좋은 그런 도시다.
오후 늦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숙소 천정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웅장하다. 거의 우박 수준. 다행히 숙소에 있어서 기분 좋게 그 소리를 듣는다.
비가 그친 사이 터미널에 가서 내일 바뇨스(Banos) 갈 버스표를 샀다. 낮에 갔을 때는 직원이 없어서 그냥 돌아와야 했는데 저녁에 가니 있다.
아쉽긴 하지만 내일 쿠엥카를 떠나기로 한다. 쉬기 좋은 도시이긴 하지만 나에게 다소 크고 번잡한 도시다. 오히려 내겐 바뇨스 같은 작은 도시가 쉬어 가기 좋은 도시다. 쿠엥카도 도심지가 아니라 외곽 주택가로 빠진다면 쉬어갈 만한 좋은 곳이 있을 지도 모른다.
치클라요(Chiclayo)에서 과야킬(Guayaquil)이 아니라 쿠엥카를 오기로 한 나의 판단은 옳았다. 쿠엥카를 그냥 패스했다면 후회했을 성 싶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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