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와 터미널이 가까우면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편하다. 버스표를 사러 가기도, 버스를 타러 가기도.
간만에 낮에 버스를 탄다. 대충 7~8시간 걸린다고 하니 낮 버스가 있다. 오전에 출발하면 해지기 전에 충분히 도착하니 말이다. 페루에서 쿠엥카로 오는 길에 탄 2번의 버스는 모두 밤 버스였다. 낮에 운행하는 버스가 아예 없었다. 그러다 보니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이번에는 낮 버스이니 제대로 풍경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버스는 아침 8시 45분을 조금 넘겨서 출발했다. 버스에 탄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웬걸 이놈의 버스는 그냥 중간 도시들을 들리는 수준이 아니라 길 가다가 손만 들면 바로 세운다. 완행도 이런 완행이 없다. 허울은 멀쩡한 버스가 운행은 한국의 시골버스보다 더 하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리. 스치는 창밖의 이국적인 풍경이 좋고, 지나가는 마을들의 모습이 흥미로우니 그 자체도 나에겐 여행이다. 이런 버스를 대체 얼마 만에 타보는 것인지. 딱 내가 좋아하는 시골버스의 모습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고 하지만 다행히 만석이 되는 경우는 없어서 두 좌석을 혼자 차지하고 올 수 있었다.
쿠엥카(Cuenca)에서 바뇨스(Banos) 가는 길은 마치 강원도 평창지역을 가는 느낌이다. 끝없는 산들로 이어지는 지역을 버스는 굽이굽이 달리고 있었다. 버스 좌석마다 달린 하얀색 비닐 봉지가 얼마나 험한 길을 달리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비록 주변에 보이는 산이 높지 않다 하더라도 일단 쿠엥카의 고도가 2,596m 그리고 바뇨스의 고도도 1,820m이니 기본적으로 버스는 2천m대의 고산지역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한낮의 태양이 떠 있음에도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
람이 서늘하다 못해 차갑게 느껴져서 긴팔 후드티를 입게 만든다.
고산지역을 달리다 보니 창밖으로 다채로운 풍경이 보인다. 굽이굽이 산길을 달리다 보면 깊이를 알 수 없는 계곡이 발아래 펼쳐지기도 하고, 구름 위를, 때론 구름 속을 달리기도 한다.
파타고니아 그리고 칠레 지역을 달릴 때에는 황량한 황무지와 사막만이 끝 모르게 펼쳐졌는데 이곳은 푸르른 산들이 겹겹이 이어져서 눈이 다채롭다.
에콰도르의 산악풍경은 조금 이채롭다. 유럽을 달리다 보면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의 밀밭과 목초지를 보게 되는데 이곳은 산악지대에 그런 풍경이 펼쳐진다. 산의 삼림을 밀어내고 그곳에 목초지나 밭을 일군 것인데, 여느 나라들과 다른 모습은 계단식이 아니라 경사지 그대로 목초지와 밭을 일구고 있다는 것이다. 때론 높은 산 정상까지 목초지와 밭을 일구어 놓은 곳들도 더러 있다.
이런 풍경이 쉼 없이 이어지다 보니, 한편으로는 에콰도르의 사람들의 노력과 인내에 박수를 보내다가다 한편으로는 처참한 산림파괴의 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염려도 든다.
높은 산들이 이어지는 고산지역이지만 오는 길 내내 마을이 끊기는 곳은 거의 없었다. 끝없이 밭과 목초지, 그리고 주거지역이 작든 크든 이어지고 있었다. 강원도 지역만 하더라도 국도를 달리다 보면 민가가 끊어지는 곳이 나오게 마련인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버스는 쉬지 않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사람을 태우고 내린다. 시외버스 수준을 넘어서 마을버스다.
한참을 달리던 버스는 서서히 고도를 낮추는 것으로 보이더니 곧 바뇨스에 도착했다. 도착시각이 거의 오후 4시쯤 되었으니 대략 7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직행으로 온다면 4~5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차창으로 스치는 경치가 좋아서 그런지 지겨운지 모르고 왔다.
바뇨스라는 도시 자체의 첫인상은 조금 실망스러운 모습이다. 조용한 작은 마을을 생각했는데, 작기는 하지만 전형적인 관광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과 그들을 위한 숙소와 식당 그리고 카페로 북적대는 그런 모습.
한국 여행객들이 많이 가는 숙소라고 하더니만 바뇨스의 한국인 여행객들은 모두 이곳에 있나 보다. 가자마자 만난 한국여행객들과 바뇨스의 곱창과 맥주로 저녁을 했다. 모두를 한국에서 키토로 들어온 여행객들인데 키토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는 곳 갈라파고스를 들어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나 같은 가난한 여행자에게는 그림의 떡인 곳이다.
역시 한국인들답게 2차도 했다. 숙소에서 맥주를 사서 먹었는데 꽤 마신 것 같다. 조용한 마을보다는 관광지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그런지 여행객들끼리 늦게까지 술을 먹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곳에서 좀 머물다 갈 생각이었는데 계획을 수정해야할 것 같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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