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王后)의 밥, 걸인(乞人)의 찬
멕시코에 와서 벌써 좋아하는 것이 생겼다.
바로 편의점 커피. 편의점에서 내려 파는 커피를 말한다. 한국에도 있지만 이곳 멕시코가 종류도 다양하고 훨씬 잘 갖추어져 있다. 커피 맛을 잘 모르긴 하지만 나쁘지는 않다. 물론 가격과 양도 착하다.
남미에 비해 멕시코는 편의점이 보편화되어 있는 것 같다. 두 브랜드의 편의점이 주류인 것 같은데 하나는 멕시코의 국민 편의점인 옥쏘(OXXO)와 일본의 세븐일레븐(7-Eleven)이다. 옥쏘는 콜롬비아 등의 남미에서도 좀 본 것 같은데 알고 보니 멕시코의 편의점 브랜드였다. 하지만 이곳 플라야 델 카르멘(Playa del Carmen)에서는 세븐일레븐이 좀 더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좀 부연하자면 세븐일레븐은 원래 미국의 편의점 브랜드였다. 그것을 1991년 일본 회사가 인수한 것이다. 현재는 일본 브랜드다. No Japan 운동에 동참해야 하는데 본의 아니게 이곳에서는 목이 좋은 곳에 영락없이 세븐일레븐이 있다.
편의점 커피 한 잔 들고 음악을 들으며 아침이나 일몰 직전의 해변 가를 걷는 것은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더욱이 이곳은 카리브 해(Caribbean Sea)가 아닌가! 아침에 일어나 편의점에서 커다란 아메리카노 한 잔 들고 해변 가를 걷는다. 어제의 반대편 방향으로 걸어본다. 반대편은 리조트와 고급 호텔들이 줄지어 있다. 리조트와 호텔에서 관리를 해서 그런지 바닷가는 훨씬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어제는 구름이 많이 끼었는데 오늘은 화창하다.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모래사장 위를 덮치는 햇살이 뜨겁다. 어제와 같은 날씨인 듯싶어서 선크림도 바르지 않고 나왔다. 샌들을 벗는다. 모래사장은 역시 맨발로 걸어주어야 한다. 살포시 모래사장 위로 밀려오는 파도에도 살짝 발을 담가 본다. 파도가 밀려 내려갈 때 내 발밑에서 같이 빠지는 모래가 무척이나 간지럽다.
햇살은 뜨겁지만 바람은 시원하고 상쾌하다.
아침 산책이 좋은 이유는 시원하고 부드러운 모래사장과 상쾌하고 싱그럽게 부는 바람의 느낌 때문이다. 거기에 따스한 커피 한 잔과 음악. 모래사장의 폭은 좁지만 이곳의 모래는 무척이나 곱고 하얗다. 맨발로 밟으면 부드럽게 느껴지는 모래의 느낌이 좋다. 털 때는 좀 수고스럽지만.
타코(Taco)로 아침 겸 점심을 때운다. 길 노점에서도 먹고, 저렴하고 맛있어 보이는 로컬식당에서도 먹었다. 그런데 노점의 타코 가격이 오히려 비싸다. 노점은 5번가 중심도로에 있고 식당은 뒷골목에 있기 때문이리라.
오후 늦게 다시 해변 가로 나간다.
저녁으로 조각 피자와 맥주 사들고. 아직은 해가 강해서 바다가 보이는 그늘을 찾아서 맥주에 피자를 먹는다. ‘왕후(王后)의 밥, 걸인(乞人)의 찬’ 김소운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에 나오는 구절이다. 문든 떠오르는 구절이다.
멕시코 만의 카리브 해를 바라보며 피자 한 조각과 맥주 한 캔을 저녁으로 먹는 가난한 여행자의 지금 심정이 딱 그렇다. 아침과 점심은 편의점 커피와 타코 몇 조각으로 해결하고 저녁은 캔 맥주와 피자 조각으로 해결하지만 마음만은 그 누구보다 풍요롭다. 카리브 해의 푸른 바다와 하얀 모래 그리고 그 바다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이 걸인의 찬을 왕후, 아니 황제의 밥으로 바꾸어 주고 있다.
해가 진 후에는 역시나 편의점에서 따스한 아메리카노 한 잔 들고 다시 해변으로 나간다. 서늘하게 식은 모래사장 위에 털썩 주저 앉아 음악을 들으며 어둠이 깔린 바다를 바라본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 보름달이다. 내가 한없이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으니 옆에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던 한 멕시코 친구가 나를 보며 “full moon! full moon!”을 외친다. 내 눈과 마주치니 보름달이 아름답지 않냐고 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들어 대답을 해주었다.
바닷가 보름달 달빛에 묻힌 지금 이 순간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자유롭다.
‘왕후(王后)의 밥, 걸인(乞人)의 찬’
지금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그 어느 곳에서 마신 커피보다 그윽하고 풍만하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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