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을 걷다, 광장에서 쉬다
산 크리스토발(San Cristóbal)에서 하는 또 하나 즐거움은 골목길을 걷는 것. 역시나 편의점에서 산 한 잔의 아메리카노 커피 또는 한 캔의 맥주와 함께 한다.
산 크리스토발은 역사가 오랜 도시다.
1527년 세워진 이 도시는 그 역사의 흔적들이 좁은 골목길마다 오롯이 남아 있다. 가장 진한 흔적은 역시나 바닥에 깔린 돌들. 대부분의 도로나 인도 모두 돌로 깔려 있는데 얼마나 오랜 세월 사람들이 걸어 다녔는지 반들반들하다 못해 어떤 돌들은 신발 바닥의 뒤축처럼 닳아져 있다.
골목길 좌우로는 아름답게 칠해진, 오래된 옛 집들이 연이어 있다.
이곳에 있는 멕시코 전통 가옥들은 기와지붕을 특징으로 한다. 따로 담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벽이 담장 역할을 하며 건물로 둘러싸인 가운데에 정원이 있다. 대체로 집 구조가 ㅁ자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골목길은 높은 담으로 둘러 싸여 있지만 담에 난 대문들과 창문들이 나름의 독특함과 귀여움을 더 한다.
멕시코 골목들과 주택들은 갖기 다양한 색깔들로 채색되어 있다.
한 집에 여러 가지 색깔로 칠하기 보다는 한 가지 색깔을 주로 하면서 대문이나 창틀 등에만 다른 색깔로 특징을 주는 데, 집마다 또는 골목마다 칠하는 색깔이 다르다. 그럼에도 노란색, 황토색, 갈색이 주된 색깔이다.
골목마다 전통가옥을 개조해 만든 예쁜 카페들과 식당, 호텔, 그리고 상점들이 있다.
도시의 중심인 소깔로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들에는 이들이 집중되어 있는 상점거리, 카페거리, 식당거리 등이 있다. 저녁에는 거리로 나온 테이블까지 사람들로 가득하다.
세월의 흔적이 짙게 어린, 골목의 돌길들을 걷다 보면 수백 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기분이 든다면 과한 표현일까?
이른 아침 안개에 서린 길이나 땅거미 짙어진 조명 깔린 길을 걷다 보면 그런 의문은 사라질 것이다. 산 크리스토발의 거리는 소깔로 광장으로 통한다. 길을 걷다가 지칠 때면 광장으로 와서 땀을 식힌다. 멍 때리다가 힘이 나면 또 다른 방향의 골목길로 걸어 들어간다.
이른 아침부터 길을 걷는다.
오늘은 특별히 오전 10시에 무료 워킹투어(Free Walking Tour)가 있다. 이것도 소깔로 광장, 정확히는 산 크리스토발 성당 앞 광장에서 출발한다. 이틀 동안 제법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직 가지 못한 골목길이 많다. 물론 걸었던 길들도 설명이 깃드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2시간의 투어지만 시간은 금방 간다.
무료라곤 하지만 완전한 무료는 아니다.
거의 필수처럼 굳어진 팁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곤란해질 때가 있는데 정말 돈이 궁하거나 적당한 잔돈이 없을 때가 그렇다. 미처 잔돈을 준비하지 못해서 주머니에 100달러밖에 없다면 거슬러 달라고 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100달러를 주는 것은 말도 안 되고. 그 놈의 팁 문화는 참 별로다. 얼마를 주어야 하는지 애매하기 때문이다. 무료라고 하지 말고 차라리 가격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 적어도 얼마를 주어야 하는지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프리워킹 투어가 끝나고 숙소에서 쉬다가 해가 질 무렵에 다시 나왔다. 산 크리스토발은 야경도 예쁜 도시다. 저녁의 골목길이 예쁜 도시다.
걷다가 다리가 아플 때쯤 재래시장 근처의, 항상 사는 노점에서 팝콘을 사서 소깔로 광장에서 맥주를 마신다. 시원한 바람과 식민지 멕시코의 풍경 그리고 사람들이 어울려져 좋다.
골목길을 걸으멍, 광장에서 쉴멍.
산 크리스토발은 그런 슬로우 시티다.
맥주를 마시다 친구에게 카톡을 날려 부족한 자금을 지원 받았다. 고마운 친구들. 덕분에 가난한 배낭여행자는 다시 공중급유를 받았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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