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치 않은 트레킹
야외 박물관을 나오다 보니 맞은편 산등성이에 기암괴석들이 즐비하고 거기에도 사람들이 만든 굴이 많다. 자세히 보니 산등성이 곳곳에 길이 나 있어서 올라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시간도 많이 남아서 올라간다.
올라와서 보니 야외 박물관은 아무것도 아니다.
거기서부터 끝없이 이어져 있는 능선 길을 걸으니 곳곳이 기암괴석이다. 그 기암괴석마다 어김없이 동굴이 뚫어져 있다. 그런 풍경이 때론 예술적으로 때론 기괴함으로 다가온다.
사람처럼 생긴 돌기둥도,
버섯 모양의 돌기둥들도 보인다.
암석 계곡은 마치 빙하의 크레바스(crevasse) 같다.
커튼이나 창자처럼 융기가 있는 암석들이 커다란 절벽이나 깊은 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평탄한 능선 길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심연 같은 암석의 계곡은 잠시만 내려다봐도 떨어질까 섬뜩하다.
모양도 다양하고 색깔도 다양한 돌들과 암석의 향연.
눈을 들어 멀리보면 저 넓은 카파도키아의 환상적이고 그림 같은 평원이 발 아래 펼쳐져 있다.
날씨도 선선하고 이 보다 더 좋은 트레킹이 없다.
카파도키아의 독특한 지형은 오랜 시간의 풍화 작용에 의해 생성되었다. 비교적 무른 응회암으로 뒤덮인 대지가 오랜 풍화 작용에 대부분 깎여 나가고, 비교적 강한 암석들이 군데군데 남으면서 삼각형 모양의 기암괴석들을 만들었다.
낮은 구릉의 산등성이를 때론 들판을 따라가는 길이라 힘들지 않다. 더욱이 시야가 탁 트이고 카파도키아의 그 진기한 풍경들이 걸을 때마다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눈앞에서 펼쳐지니 힘들 틈도 없다.
레드 벨리
Red Valley
길이 있는 데로 계속 걷는다.
나중에 갈 생각이었던 로즈 벨리(Rose Valley)와 레드 벨리(Red Valley)로 이어지는 것 같아서 계속 가보기로 한다. 한참을 가다보니 정말 로즈와 레드 벨리를 가리키는 이정표들이 나온다.
레드 벨리 초입에 있는 한 카페로 내려간다.
하늘이 잔뜩 찌푸리고 있어 곧 비가 올 것 같다. 급히 편한 길로 되돌아가려고 하는데 비가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다. 다시 카페로 뛰어 들어간다. 뒤이어 중국인 부부 한 쌍과 러시아 처자 한 명도 비를 피해 카페로 들어온다.
한 30분 쏟아지던 비는 언제 왔느냐는 듯 멈춘다.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라 되돌아가려고 하는데 같이 비를 피한 사람들이 모두 레드 벨리로 들어간다. 좀 고민하다가 같이 들어간다.
나를 포함한 네 명이 이내 한 팀이 되었다. 길이 좀 복잡하고 잘못된 이정표들이 있어서 서로들 길을 찾느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다. 계곡에 깊이 들어갈수록 네 명은 더욱 하나의 팀이 되어서 길을 찾는다.
계곡길이 끝나니 차가 다니는 도로가 나오는데 그 도로를 따라 가니 괴레메 야외 박물관이 나온다.
괴레메 야외 박물관 맞은편 언덕에서 시작한 트레킹은 시계방향으로 걸어서 로즈 벨리를 거쳐 다시 야외 박물관으로 돌아오면서 끝났다. 크게 한 바퀴를 돈 셈이다. 대략 20km 이상 걷지 않았나 싶다. 생각지도 못하게 시작한 트레킹이었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길이었다.
곳곳의 전망 좋은 바위 위에 걸터앉아 보온병에 담아간 커피를 마시며 멍 때리기도 했고, 음악을 들으며 걷기도 했다. 걸을 때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기암괴석들과 시시각각 변화는 바위 색깔들은 이곳 카파도키아의 위대함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길도 힘들지 않고 편했다.
특히 흙이 부드러워서 그렇게 많이 걸었건만 무릎이나 발바닥이 아프지 않다. 오히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야외 박물관보다 훨씬 좋았다.
괴레메에서는 걸어야겠다.
여기선 걷는 것이 이곳을 가장 잘 보는 방법이기도 하고, 가장 잘 즐기는 길인 것 같다. 매일 새로운 길을 걸으면서 볼 새로운 풍광에 흥분되고 설렌다.
내일은 어떤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질까?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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