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의 꿈, 보헤미안의 삶

세상의 모든 경계를 넘어 보다 자유로운 미래를 그린다

미얀마의 민주화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며...

세계 일주 여행/터키(Turky, 튀르키예)

D+148, 터키 괴레메 3: 스머프(Smurfs) 마을에 숨어들다(20190411)

경계넘기 2020. 8. 14. 16:50

 

 

스머프(Smurfs) 마을에 숨어들다

 

 

조식을 든든히 먹으니 굳이 점심이 필요 없다.

 

간단한 간식 정도면 충분하다. 더욱이 야채를 중심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니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조식을 먹으면서 삶은 계란과 과일을 좀 챙긴다. 통과일은 사람들이 잘 먹지 않아 남는다. 조식을 해주는 친구에게 뜨거운 물도 얻어 커피도 타서 보온병에 담는다.

 

오늘을 일명 스머프 마을(Smurfs)에 간다.

 

레드 존(red zone)에 있는 스머프 마을은 버섯 바위들이 있는 파샤바(Pasabag) 계곡을 말한다. 괴레메(Gőreme) 주변의 레드 존은 굳이 투어로 갈 필요가 없다. 트레킹 겸 걸어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카파도키아에서는 목적지도 목적지이지만 그 가는 여정 여정이 모두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물론 시간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투어로 돌아야겠지만. 가는 길은 어제 간 곳보다 훨씬 먼 곳이다. 구글맵으로 확인해보니 괴레메에서 대충 편도로 5.5km 정도가 나온다.

 

구름 사이로 비취는 싱그런 아침 햇살과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경쾌하게 길을 걷는다.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괴레메 마을을 벗어나면 들길이 나오고 곧 기암괴석의 석림(石林) 사이로 들어간다. 갑자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새로운 세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레드 벨리 초입을 지나치니 바로 Cavusin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마을 가운데 이슬람 사원이 보이고 그 뒷편으로 구멍이 숭숭 뚤린 거대한 암석벽이 있다.  눈으로 봐도 매우 높고 가파른 암석인데 여기도 곳곳에 사람들이 굴을 파두어서 암석이 마치 넓고 얇게 자른 치즈 조각 같다. 정상까지 올라가보려 했지만 암석벽 바로 밑에서 길을 찾을 수 없다. 정상부는 마을 쪽에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보다.

 

 

 

노란꽃밭에 싸여 있는 마을 어귀의 공동묘지가 묘한 매력을 준다.

 

앞으로는 멀리 카타도키아의 멋진 평원이 펼쳐지고 뒤로는 기암괴석이 병풍을 친다. 이런 곳을 명당이라 해야 하나.  공동묘지가 마치 별장 같다. 

 

 

 

마을을 지나면서부터 구글맵이 알려준 평탄한 길을 벗어난다.

 

길을 찾거나 만들어 간다. 되도록 기암괴석들과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산길로 가기 위함이다. 솔직히 들길인지 산 능선인지 바위 능선인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걷고 있는 길이 들인가 싶으면 산이고, 산인듯 싶으면 바위고, 바위인가 싶으면 산이다. 가다가 길이 막혀서 되돌아 나오는 것도 허다했으니 가는 데에만 10km가 넘어 보인다. 

 

산길은 산길대로, 바윗길은 바윗길대로, 들길은 들길대로 제 나름의 멋이 있다. 너무도 멋있고 맘에 드는 길이다. 조그만 올라가도 환상적인 절경이 펼쳐지고, 감탄을 넘어 신음이 나온다.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이라 그 멋이 더한다.

 

멋들어진 곳마다 털썩 주저앉아 커피도 마시고 가져간 먹을거리도 먹으면서 멍을 때리곤 한다. 배낭을 베개 삼아, 바람을 이불 삼아 살짝 누워도 본다. 신비로운 자연과 한몸이 되는 기분이다. 이 순간만큼은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자연인! 

아니다. 

우주의 어느 한 혹성에 홀로 떨어진 우주 여행자 같다.

 

 

 

오늘 못 가면 내일 가면 되는 것이건만 현대인의 고질병인 조급성이 자꾸 발을 재촉한다.

 

고질병은 고질병인가 보다. 쉽게 고쳐지질 않는다. 구름이 낀 날. 햇살은 뜨겁지만 구름이 햇살을 막으면 금세 선선해진다. 걷기엔 정말 좋은 날이다.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면 바람이 세다. Cavusin 마을을 지나자 점차 길 위에 버섯 바위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곳곳에 무리를 지은 버섯 바위들이 있다. 파샤바에 제대로 가고 있나보다.

 

버섯 바위.

 

머리는 큰데, 몸통은 가늘고 긴 송이버섯을 딱 닮았다. 홀로 있는 것도 있지만 보통 서너 개가 군락을 짓듯 모여 있어서 정말 버섯 무리 같다. 표고버섯을 닮은 바위도 있다. 몸통이 두껍고 짧아서 귀엽기도 하지만 때론 강인함과 웅장함도 느껴진다.

 

 

 

꼭 버섯으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뒤뚱뒤뚱 펭귄 같기도 하고, 멀리 평원을 감시하는 사막의 보초병 미어캣(meerkat) 같기도 하다. 때론 사마귀가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남성의 상징 같은 놈도 있고.

 

 

 

 

 

이런 버섯 바위는 어떻게 생긴 것일까?

 

 

버섯 바위는 무르고 두꺼운 암석층 위에 단단한 암석층이 부분부분 얇게 깔려 있는 지형에서 나타난다. 오랜 풍화작용으로 아래층의 무른 암석층은 대부분 깎여 나간 반면에 단단한 위층의 암석층이 있는 곳은 이 단단한 암석층이 비바람을 막아서 아래의 무른 암석층에도 풍화작용을 더디게 해주기 때문이다.

 

머리는 짧고 크고, 몸통은 가늘고 긴 버섯 바위가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단단한 암석층의 머리가 떨어지거나 어떤 이유로 사라지면 몸통의 무른 암석층도 곧 사라진다고 한다. 거친 비바람에 노출되어 풍화작용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카파도키아는 대체로 화산재가 쌓여서 만들어진 응회암으로 덮여 있다. 카파도키아 평원에 우뚝 솟아 있는 3,917m의 에르지에스 산(Mt Erciyes)3백만 년 전에 대폭발을 일으키면서 만든 지형이다.

 

바로 이 응회암이 무르고 부드러운 암석이다. 카파도키아를 덥고 있는, 무르고 두터운 응회암층이 오랜 시간의 풍화작용에 깎이면서 지금의 멋진 풍경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두터운 응회암 층에 현무암 등과 같은 단단한 암석층이 부분부분 얇게 깔려 있는 곳에서는 버섯 바위가 생긴 것이다.

 

 

 

스머프 마을이 보인다.

 

곳곳에 우뚝 우뚝 솟아 있는 버섯 바위들을 구경하며 한참을 걷는데 갑자기 길이 끊겼다. 길을 만들며 겨우겨우 바위산을 넘어가니 저 멀리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파샤바인가 보다. 멀리서도 일단의 버섯 바위 군락이 보인다. 정말 스머프 마을이다.

 

 

 

막상 파샤바에 들어가니 조금 식상하다.

 

투어로 온 사람들은 놀랍겠지만 난 이미 많이 봤다. 이곳에 버섯 바위들이 확실히 많긴 하지만 그만큼 사람도 많다. 오면서 오롯이 느꼈던 그 감흥과 감동을 느낄 겨를이 없다. 단체 관광객에 휩쓸려 사진 몇 장 담는 게 고작이다.

 

 

 

올 때는 조금 우회해서 편한 들길로 걷는다.

 

들길도 아름답다. 사람도 거의 없는 고즈넉한 길이다.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기분이다. 돌아가는 길에는 햇살도 좋아서 구름 사이로 들어난 파란 하늘과 푸른 들판 그리고 노란 꽃밭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

 

평화롭고 자유롭다.

 

오래 걸었는데 오히려 몸과 마음이 다 상쾌해지면서 편해진다. 이런 길을 무지 걷고 싶었는데 이렇게 원 없이 걷는다.

 

 

 

오늘도 카파도키아의 길을 원 없이 걸었다.

 

이곳에 오면 애드벌룬도 타고, ATV도 타고, 말도 타고 한다지만 난 걷는 게 가장 좋다. 이곳에 오래 머무르면서 매일 이런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걷고 있으면서도 한다.

 

요즘은 이런 길을 걸을 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음성파일을 들으면서 대사를 따라 한다. 일명 쉐도잉. 사람이 없는 한적한 들길과 산길이라 큰소리로 떠들면서 걸으니 심심하지도 않는다. 영어도 많이 느는 기분이다.

 

 

 

숙소에 들어오면서 어김없이 도너 2개와 맥주 2병을 산다.

 

숙소 옥상 식당에서 맥주에 도너 먹는 것도 좋다. 숙소 옥상 식당보다 전망이 좋은 식당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한적해서 더욱 좋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