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괴레메(Göreme)를 떠나서 안탈리아(Antalya)로 가기로 했다.
더 있고 싶지만 숙소가 연장이 안 된다. 숙소를 옮기면 되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다. 열심히 걸어 다녀서 이제 괴레메 근처의 지리는 대충 눈에 익었다. 여행자에게 눈에 익었다는 것, 익숙해졌다는 것은 곧 떠날 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아침에 ATM에서 돈을 찾아 안탈리아행 버스표를 끊는다.
여러 버스 회사가 있지만 호파(Hopa)에서 처음 탄 메트로(Metro)를 그냥 타기로 한다. 첫 인연이 무섭다고 처음 탔던 버스라 그냥 호감이 간다. 안탈리아까지 버스비는 85리라. 다행히 3열 버스다. 나는 한 줄로 된 좌석을 배정받았다. 같은 버스라도 두 줄 좌석과 한 줄 좌석 가격이 다르다는 말도 있던데 물어보지는 않았다. 저녁 11시 버스라 내일 좀 많이 기다려야할 것 같다.
버스표를 사고 나서 다시 길을 걷는다.
오늘은 갔던 길을 다시 걸어보기로 한다. 새로운 길은 다소 긴장하며 길을 찾아 가야 하지만 갔던 길은 편하게 이 생각 저 생각 딴 생각하면서 걸을 수 있어서 좋다. 음악도 듣고. 괴레메 야외 박물관(Goreme Open Air Museum) 쪽에서 산길을 통해 걷는다. 괴레메에서 처음 걸었던 길이다. 그 길을 그대로 찾아 걷는다. 며칠 전에 걸은 길이지만 새롭다.
레드 밸리(Red Valley) 초입의 카페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Cavusin 쪽으로 가거나 레드 밸리로 가거나 했다. 이번에는 카페 뒤로 나 있는 다른 쪽 계곡 길로 가보기로 한다. 어떤 계곡 길인지 어디로 연결된 곳인지 모른다. 그냥 가보는 거다. 아니면 돌아오면 되니까.
하지만 기우는 잠시, 이 길도 역시 멋있다.
갈림길 카페에서 숲을 밀치고 들어가면 웅장한 바위들이 위용을 드러내는 계곡 길이 나온다. 거기서 조금씩 더 들어갈수록 주변의 바위들이 어느덧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내가 밟고 있는 흙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바위들도 모두 붉다.
거기서 바윗길로 올라서면 서서히 수줍은 새색시의 붉은 홍조처럼 꼭꼭 숨겨두었던 아름다움이 눈 앞에 펼쳐진다.
이 계곡이 로즈 밸리(Rose Valley)다.
항상 비를 피하던 그 카페가 레드 밸리와 로즈 밸리의 갈림길에 있었다. 한참을 걸어오니 높은 언덕 위에 카페가 있다. 이곳에서 물어보니 이 계곡이 로즈밸리란다. 이곳 카페 앞에서도 레드 밸리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언덕 위에 있는 카페에서부터 이어지는 전망은 정말 압권이다. 이곳에서 보니 왜 레드 밸리고 로즈 밸리인지 알겠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붉게 물들었다. 레드 밸리도 붉은 빛을 띠지만 이곳의 바위는 마치 장미꽃잎처럼 겹겹이다. 붉은빛의 바위들이 출렁인다. 석양에 일 때는 붉게 타오르지 않을까!
로즈 밸리의 끝이 바로 Cavusin 마을 초입으로 연결된다.
진작 알았으면 파샤바(Pasabag)이나 아바노스(Avanos)에 갈 때 이쪽 길로 다니는 것이었는데. 어제 비를 피했던 그 움막도 보인다. 나만의 추억이 깃든 곳.
제대로 레드 밸리와 로즈 밸리를 다 걸었다.
이 길들은 이 생각 저 생각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면서 걷기 좋은 길이다. 경치면 경치, 소리면 소리, 공기면 공기. 다 좋다. 건조해서 모기도 없다.
나중에 다시 온다면 매일 이 길을 산책하리라.
더 갈까 하지만 하늘이 다시 컴컴해진다.
서둘러 돌아가는 길을 잡는다. 어제처럼 비가 쏟아질 수 있어서 지름길로 걷는다. 좀 걸으니 비가 떨어진다. 다행히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쏟아지지는 않는다.
숙소에 와보니 도미토리의 집기를 바꾸고 있다. 나중에 알았는데 도미토리를 없애고 3인실로 바꾼다고 한다. 도미토리가 돈도 안 되지만 특히 불평신고가 많다고 한다. 도미토리 고객들이 평점을 많이 깎는단다. 그래서 도미토리 예약이 안 되었던 모양이다. 난 만실이라 방이 없는 줄 알았다. 여하튼 덕분에 오늘도 혼자 도미토리, 이제는 3인실 방을 독차지 한다. 내일 떠나야 하니 눈치 안 보고 빨래도 열심히 하고, 어제 오늘 방에서 편하게 쉰다.
짐을 정리하는데 아쉬움이 밀려온다. 며칠이나마 더 있고 싶다.
정말이지 가면 갈수록 더 좋은 곳이 나온다.
큰일이다. 이러다 남미 근처라도 갈 수 있는 것일까!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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