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파란 바다와 푸른 하늘
아침 햇살이 너무 좋다.
카파도키아에 있을 때에는 하루에도 여러 번 날씨가 변했는데 이곳의 날씨는 어제나 오늘이나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하늘이다. 거기에 아직 4월이라 바람은 선선하기 그지없다. 정말 걷기 좋은 날씨. 한낮의 태양은 살을 태우는 느낌이지만 습도가 낮아서 그늘에만 들어가면 썰렁함이 느껴진다. 이것이 지중해성 기후의 특징일까.
커튼을 치니 이른 아침부터 쏟아지는 햇살로 더 이상 침대에 뒹굴 수가 없다. 개인방이라고 영화와 드라마 등을 보니라 늦게 잠이 들었다. 도미토리에서 오히려 더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 같다. 남을 신경 써야 하는 도미토리에서 개인방을 쓰게 되니 해방감이 느껴져서 게을러지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지중해의 아침 햇살을 이길 재간이 없다. 커튼을 치고 잔 것이 그나마 늦잠을 잘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안탈리아 동쪽 해변을 걷는다.
오전 10시쯤 숙소를 나와서 어제 걷지 않았던 올드타운의 골목길을 이리저리 걸어본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안탈리아의 동쪽 해변 길을 걷는다. 올드타운을 벗어나니 공원도 나온다. 이름이 카라알리올루 공원(Karaalioğlu Park)이다.
공원 초입의 바다가 보이는 곳에 Hidirlik Tower가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다. 이 탑은 2세기 로마가 이곳을 지배할 때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하드리아누스의 문(Hadrian’s Gate)와 함께 안탈리아에 있는 대표적인 로마 건축물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이 탑의 정확한 용도를 모른단다. 등대, 첨탑 등등 여러 가지 설만 난무하고 있다고. 용도가 어찌 되었든 이들 건축물들이야말로 안탈리아가 얼마나 오래된 도시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사실 안탈리아는 그보다 앞선 기원전 2세기에 세워진 도시라고 한다. 2천년 훌쩍 넘는 역사를 가진 도시다.
역사적 의미는 그렇고, 안탈리아 동편 해안은 쪽빛 지중해가 바로 보이고 맞은편에는 올림포스 설산이 마주 보이는 곳이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전망 좋은 카페에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차이(cay)를 마시며 눈이 시리도록 지중해의 풍경을 담는다.
카라알리올루 공원 자체는 별 매력이 없다.
하지만 바로 그곳에서 바라보는 안탈리아 바다의 풍광이 좋다. 풍광이 좋고 그늘진 곳마다 다정한 연인들이 앉아 있어서 홀로 온 여행객을 쑥스럽게 만든다. 역시 안탈리아는 연인들이 와야 하는 곳이다.
공원을 벗어나면 도로가 나오고 거기를 쭉 통과하면 또 다른 공원이 나온다. 거기서 보는 풍경 또한 일품이다. 중심가에서 한참 벗어난 곳이라 사람들이 적어서 더 좋다. 아베크족은 아예 없고, 가끔 동네 사람들이 목 좋은 벤치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정도다.
마을 앞 공원 같은데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어느 한 호텔 정원 같은 곳에 내려가서 의자에 앉았다. 비수기라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아무도 신경 쓰질 않는다. 나무 그늘이 늘어진 곳에 의자를 놓고 하염없이 바다와 산을 바라보고 있다.
바다는 하늘보다 더 파랗다. 바다는 파랗고 하늘은 푸르다. 절벽 위에는 빨갛고 노란 꽃들이 피어 있다.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하니 그 꽃들의 색깔이 더욱 선명해진다.
이렇게 앉아 있으니 너무 좋다. 그 어느 목 좋은 카페보다 더.
불현듯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바다의 색깔이야 바다 밑 토양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지만 어찌 이곳 지중해의 바다는 이토록 맑고 깨끗한 것일까?
지중해는 인류가 가장 먼저 살아온 바다 중의 하나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서구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대서양 연안에 비해서는 조금 늦었지만 여타 바다에 비해서는 산업혁명도 빨리 시작한 곳이다. 수많은 사람과 배가 오가다 보면 쓰레기와 폐수가 바다로 흘러들어가 색깔도 맑기도 변하게 마련일텐데. 안탈리아 앞 지중해 바다는 너무도 맑고 깨끗하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바다가 어찌 여전히 맑고 깨끗할 수 있을까? 안탈리아만 해도 적어도 2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곳이다.
겨우 수십 년의 산업화 과정을 거친 우리네 바다는 지금 공해와 오염에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부럽다 못해 짜증이 난다.
멍하니 지중해 바다와 올림포스 산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새들이 날아다닌다.
아주 어렸을 때 들어보고 이후에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새 지저귐 소리가 들린다. 지지배배. 제비다. 어느새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새가 되어버린 제비다. 제비들이 내 눈앞에서 활공을 한다. 마치 한국에서 넘어 온 제비인양 반갑기 그지없다. 그리고 미안해진다.
제비가 지저귀며 벌이 윙윙거리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티 없이 푸른 하늘은 분명 이곳이 공해 없는 깨끗한 곳임을 보여주고 있다. 당연히 바다도 맑을 수밖에. 부럽다. 터키의 이 바다가. 이 환경이. 돈이 좀 많고 경제가 좀 더 발전하면 뭐하나. 제비도 벌도 사라져가는 땅 위에 살면서.
오늘도 서울 하늘은 뿌옇겠지. 문득 그곳에 계시는 부모님이 생각난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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