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의 성, 파묵칼레(Pamukkale)를 걷다
페티예Fethiye)를 떠나서 파묵칼레(Pamukkale)로
오전 10시 30분 버스.
걸어서 오토가르(autogar) 즉, 버스 터미널에 간다. 숙소에서 30분 정도의 거리. 터미널에 일찍 도착해서 시간이 많이 남는다. 공항이나 터미널, 기차역은 되도록 일찍 가서 기다리는 것이 나의 오랜 여행 습관이다. 이런 곳에서 주로 책을 읽는다. 카페에서 책이 잘 읽히듯이 약간의 생활 소음과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는 약간의 흥분이 집중을 돕는 것 같기도 하다. 커피 한 잔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화장실 문제로 버스를 탈 때는 자제한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버스가 와서 사람들을 태운다.
이 버스가 페티예에서 바로 파묵칼레로 가지는 않는다. 이 버스는 파묵칼레 근처의 큰 도시인 데니즐리(Denizli)로 간다. 그곳에서 내려 파묵칼레 들어가는 돌무쉬로 갈아타야 한다.
물론 직접 가는 버스도 있다. 시내에 있는 파묵칼레 버스 사무실에서 알려준 것이다. 다만 그 버스표는 터미널에 가서 사야 한다는 말에 포기했었다. 생각이 나서 물어보니 일종의 시외버스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터미널에서는 4시간 50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어떤 블로그에서 보니 6시간 가까이 걸렸다고도 한다. 고속버스의 거의 두 배가 걸린다. 몇몇 도시만 거치는 것이 아니라 마을마다 서는 시외버스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조금 늦어져서 10시 50분에 페티예를 출발한 버스는 1시 45분에 데니즐리에 도착했다. 딱 3시간 걸렸다.
터미널에서 바로 파묵칼레 가는 돌무쉬로 갈아 탄다.
터미널 지하로 내려가서 76번 플랫폼으로 간다. 버스 차장이 짐을 건네면서 자세히 알려줬다. 처음에는 76번이라고 해서 버스 번호가 76번인 줄 알았는데 지하로 내려가니 금방 그것이 플랫폼 번호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막 떠나려는 버스는 자리가 없어서 보내고 다음 차를 탄다. 다음 버스도 바로 10분 만에 출발한다. 파묵칼레 가는 버스는 자주 있는 것 같다.
데니즐리 터미널에서 파묵칼레는 2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파묵칼레에 내려서 일단 숙소를 잡는다. 파묵칼레는 당일치기로 가는 경우가 많다. 야간버스를 타고 이른 아침에 이곳에 도착하거나, 이곳에서 저녁 늦게 출발하는 야간버스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간다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처럼 오후에 이곳에 도착해서 당일로 이동하려면 파묵칼레를 한, 두 시간 만에 거의 스치듯 둘러봐야 한다. 그럴 바에야 안 가고 만다.
비수기라 그런지 파묵칼레 숙소가 그리 비싸지 않다. 하지만 예약을 안 하고 갔더니 몇 개 없는 도미토리 숙소는 만실이다. 그냥 개인실을 얻었다. 80리라에 조식 포함. 나쁘지 않다.
목화의 성, 하얀 파묵칼레(Pamukkale)를 걷다
숙소에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급하게 대충 옷을 갈아입는다.
물길을 걸어야 하니 반바지로 갈아입는다. 신발도 샌들로 갈아 신는다. 파묵칼레의 하얀 석회봉은 신발을 벗고 다녀야 한다. 석회봉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아무래도 샌들이 들고 다니기도, 물에 젖은 발에 신기도 편하다.
숙소에서 조금만 걸어 나가도 산 한쪽 벽면을 타고 하얀 성벽 같은 곳이 보인다. 입구에 사람이 많다. 일찍 가라고 하더니만 그 이유를 알겠다. 입장료는 50리라.
들어서자마자 하얀 설국이 펼쳐진다.
멀리서는 작아 보였는데, 막상 그 안에 들어서니 온 세상이 설국 같다. 눈이 부셔 바로 뜨기가 힘들다. 물이 흘러서 더욱 하얀 것 같다.
터키어로 ‘파묵(Pamuk)’은 ‘목화’, ‘칼레(Kale)’는 ‘성’이라는 뜻이다.
고로 파묵칼레는 ‘목화의 성’이다. 하얀 목화꽃을 닮아서 그렇게 지었나 보다. 목화의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신을 벗어야 한다. 어차피 곳곳에 물이 흐르기 때문에 신발은 벗는 것이 좋다. 물속에 발을 담그니 좋다. 물의 따스함이 느껴진다. 온천물이라고 하던데 온천물이라 따뜻한 것인지 강렬한 햇살에 물이 덥혀진 것인지는 모르겠다. 물에도 석회가루가 있어서 고여 있는 곳은 뿌옇다.
파묵칼레는 지하에서 석회 성분을 가진 온천수가 지표면으로 흘러나와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하얀 석회 성분을 함유한 물이 오랜 시간 암석 표면을 흐르면서 침전되고 응고되면서 하얗게 암석화된 것이다. 이 과정이 지속되면서 계단 모양의 석회봉을 만들었다고 한다. 물이 계속 흐리니 계단 모양의 석회봉마다 물이 고이면서 계단식 수영장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파묵칼레의 모습은 우리나라 남해의 다랭이논에 하얀 석회를 두텁게 발라놓고 다랭이논에 물을 채워놓은 모습이다. 지난한 과학적 과정은 잘 알지 못하지만, 자연이 경이롭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좀 걷다보니 처음의 감흥이 사라진다.
울퉁불퉁한 석회봉 위를 걷는 발바닥이 너무 아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인위적으로 물을 가둬 수영을 할 수 있도록 해두었기에 유원지 같다는 인상만 주기 때문이다.
입구에서 길게 이어지는 석회봉을 벗어나 신발을 신는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나 싶었는데 진짜 모습은 그곳에서 조금 돌아가는 곳에 있다. 급하다고 입구와 연결된 곳만 보고 가면 절대 안 된다. 입구에서 석회봉을 다 올라오면 유적지가 보인다. 이 유적지를 마주 하면서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성벽이 보이는데, 그곳에서 파묵칼레가 한 눈에 들어온다. 허물어진 성벽 아래로 마치 하얀 다랭이논들이 이어져 있는 듯한 모습이다. 파묵칼레 사진에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인 것 같은데 아쉽게도 물이 말라서 하얀 석회 모습만 남아 있다.
그 모습만이라도 감사하며 좀 돌아 나오는데 절벽 위 물이 가득찬 하얀 다랭이논들이 나온다.
물이 흐리니 작은 폭포가 연이어 있는 캐스캐이드(cascade) 같기도 하다. 하얀 계단식 연못들에서 물이 위 연못에서 아래 연못으로 흘러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완연한 파묵칼레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얀 연못에 담긴 물은 햇빛에 반사되어 더욱 맑고 푸르고 영롱하다. 절벽 위에 있어서 천상(天上)의 모습 같다. 아름다움을 넘어 성스럽다.
이곳에 도시를 만들었던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이 도시를 ‘성스러운 도시(Holy City)’, 즉‘히에라폴리스(Hierapolis)’라 불렀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충분히 알만 하다.
한국에 이런 곳이 있다면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에서 선녀가 목욕하는 연못의 배경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나무꾼은 내가 지금 서 있는 나무 뒤나 바위에 숨어 있을 것이고.
이곳은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감시원도 눈에 불을 켜고 지키고 있다. 다행히 사람들도 감시원 때문만이 아니라 그 경이로운 아름다움에 감히 들어갈 생각을 못 한다.
물이 마른 파묵칼레의 바닥도 무척 기하학적이다.
현대 미술의 한 작품 같기도 하고, 지구가 아닌 어느 혹성의 표면 같기도 하다.
당일치기로 보러 왔다면 마음이 급해서 이런 구석까지 둘러볼 생각을 못했을 터이고, 파묵칼레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고 그저 그런 관광지의 하나로만 기억할 뻔 했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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