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成都)에서 윈난성(雲南省) 다리(大理) 가는 길 1
청두(成都)를 떠나 윈난성(雲南省) 다리(大理)로 이동한다. 청두도 좋지만 곧 겨울로 들어간다. 중국에서 겨울을 나기에 가장 좋은 곳은 역시 윈난성이다. 동남아 바로 위 중국 남쪽 지방이지만 고원 지대라 사시사철 따뜻하다.
여기에 다리는 중국에 있는 배낭여행자의 성지다. 기후도 온화하지만 넓디넓은 얼하이(洱海) 호수와 높디높은 창산(苍山)이 그림 같이 받치고 있으면서 역사가 묻어 있는 고성(固城) 도시다. 여기에 물가도 저렴하니 배낭여행자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청두(成都)에서 다리(大理) 가는 방법
다리까지 이동하려면 1박 2일에 걸쳐 장장 천km 정도를 달려야 한다. 한 번에 청두에서 다리까지 가는 방법은 비행기를 타는 것이지만 이번 여행의 철칙 중 하나가 되도록 육로를 이동하는 것이니 비행기는 제친다.
비행기를 제치고 그나마 편하고 빠른 방법은 고속열차를 타고 쿤밍(昆明)으로 가서 그곳에서 다시 고속열차를 타고 다리로 가는 것이다. 좀 돌아가는 길이지만 고속열차를 이용하는 것이니 시간은 훨씬 단축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방법은 청두에서 일반기차로 윈난성과 쓰촨성의 경계에 있는 판즈화(攀枝花)라는 도시로 가서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다리로 들어가는 길이다. 예전에 청두에서 리장(麗江) 갈 때 갔던 길이다.
청두에서 판즈화가는 길은 동티베트의 산맥을 타고 가는 길이라 고속열차가 없다. 일반 열차로 장장 14시간을 가야한다. 야간열차를 타고 아침에 판즈화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버스 터미널로 이동해서 바로 다리 가는 버스를 탈 생각이다. 낮 기차를 타고 풍경을 보고 싶지만 심야에 판즈화에 떨어지게 된다.
판즈화에서 다리 가는 버스가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예전에 그곳에서 리장을 갔으니 다리 가는 버스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리로 가는 버스가 없다면 리장으로 가면 된다. 정처 없는 여행자에게 정해진 여정이란 없다. 숙소에서 물어보기는 했는데 왜 비행기를 타고 가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정작 큰 문제는 다리 가는 버스의 유무가 아니라 청두에서 판즈화 가는 기차다. 미리 표를 샀음에도 이미 침대칸의 좌석이 매진이여서 잉쭈어(硬座, 일반석) 좌석을 샀기 때문이다. 앉아서 14시간을 가야 하니 그게 고욕이다. 가려는 날짜의 전후 3~4일로는 모든 침대석이 매진이었다.
예전에도 잉쭈어를 타고 갔었는데 그때도 무척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나마 그때는 일행이라고 있었지.
기차역 풍경과 고난의 잉쭈어(硬座, 일반석)
중국 일반기차의 일반석인 잉쭈어의 좌석은 우리의 옛날 기차인 비둘기호나 통일호의 일반석을 생각하면 된다. 좌석은 마주 보고 있고, 좌석 등받이는 앞, 뒤의 사람이 공통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전혀 젖혀지지 않는다. 이런 의자에 앉아서 14시간을 가려면 온 몸이 결린다. 그나마 사람이라도 적으면 다행이련만 침대석이 일찌감치 매진된 것을 보면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오후 3시쯤 숙소를 나서서 청두역으로 간다. 청두역은 며칠 전에 기차표를 사러 다녀온 곳이라 길은 잘 안다.
청두역에서 기차를 타기까지 4번의 기차표와 신분증 검사를 한다.
일단 기차역 광장에서 역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기차표 검사를 하고, 역 안으로 들어갈 때는 신분증과 기차표를 같이 검사한다. 이때는 거의 입국심사를 받는 기분이 든다. 여권의 이름과 기차표에 기재된 이름을 꼼꼼히 확인한다. 여기를 통과하면 역 안으로 들어가면서 짐 검사도 한다. 그리고 대합실에서 승강장으로 들어갈 때 표를 검사하고 마지막으로 열차에 탈 때 객차 입구에서 표를 다시 검사한다. 아주 미친다. 기차 한 번 타는 것이 한국에서 국제선 타는 것보다 더 까다롭다.
일반적으로는 기차 안에서도 기차표와 신분증을 검사하는데 이번에는 검사를 안 한다. 침대칸에서는 물론이고 고속철도에서도 검사를 했는데 말이다.
중국 기차역은 웬만한 한국의 지방 공항보다 더 크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땅덩어리가 어마어마하다 보니 기차가 가는 곳도 많다. 청두와 같이 각 성의 성도인 경우는 중국 대부분 주요 지역을 커버한다. 출발하는 기차가 엄청 많을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플랫폼도 많아서 기차역이 클 수밖에 없다.
거대한 기차역에는 항상 사람도 많다. 요즘은 공항이 많이 생겨서 그나마 기차역에 사람이 준 편이다. 최근에는 항공편이 많이 생겨서 비수기에는 비행기가 기차보다 싼 경우도 많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중국에서 항공 수요가 급속히 늘어나다 보니 최근 국제 항공업계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일단 전 세계의 파일럿들을 블랙홀처럼 끌어들이면서 조종사의 몸값을 올리고, 다른 나라에서는 조종사들이 부족해지는 현상도 나타난다.
외국 조종사들을 끌어 들여도 중국의 항공 수요를 맞추지 못하다보니 아직 제대로 숙련되지 못한 조종사들을 투입하면서 중국 항공기에서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는 기사도 본 기억이 난다.
사실 한국에서 외국을 나갈 때도 중국 비행기가 저렴하다. 어쩌면 중국 비행기 덕에 싼 값에 해외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동남아와 같은 근거리 노선은 저가항공이 더 저렴하지만 유럽과 같은 장거리 노선은 저가 비행기가 커버할 수 없어서 저렴한 중국 항공사를 자주 이용한다. 까탈스러운 중국 공항에서 환승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대합실에 앉아서 기차를 기다린다.
중국 기차는 되도록 빨리 타는 것이 좋다.
이것은 인도도 마찬가지인데 보통의 중국 승객들이 짐이 많기 때문이다. 여유 부리다 늦게 타면 내 배낭 놓을 곳을 찾지 못해 좌석에서 먼 곳에 두거나 최악의 경우 안고 가거나 내 자리 밑에 두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더욱이 일반석은 입석이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전쟁이다. 혹시 중국의 명절인 춘지에(春節, 설)에나 최대 휴일인 노동절 기간에 일반석에 앉는다면 화장실 가는 것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통로에도 짐과 사람들로 겹겹이 쌓여 있어서 도저히 화장실까지 나아갈 수가 없다. 기차라고 편하게 생각하고 타기 전에 맥주나 커피를 마셨다면 죽었다고 봐야 한다.
전에는 기차 타는 중국인들이 양동이 같은 것을 많이들 들고 있었다. 요새는 없어졌나 싶었는데 여전히 많다. 접었다 펴는 의자도 보인다. 양동이나 이런 접이식 의자를 가지고 있다면 대충 입석이라고 보면 된다. 양동이는 음식이나 짐을 담는 용기로도 쓰이지만 가장 중요한 용도는 의자로 쓰는 것이다. 기차가 출발을 하면 입석으로 탄 사람들이 저마다 양동이를 통로에 놓고 앉는다. 그러니 화장실 가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짐이 많다 보니 기차를 타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기차를 빨리 타려고 한다. 새치기는 기본이고 앞에 있으면서도 개찰이 끝나자마자 뛰기 시작한다. 일단 짐과 자리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입석이 없는 고속열차나 침대칸은 이럴 염려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좀 일찍 타는 것이 좋다. 그래야 내 좌석 바로 위에 짐을 얹을 수 있거나 침대칸의 경우에는 맨 아래 침대 밑으로 짐을 넣을 수 있다. 일단 그곳에 놔두어야 짐을 관리하기가 싶다.
이런 경우를 많이 당해봐서 나 역시 되도록 중국이나 인도에서는 기차를 빨리 타려고 한다. 오늘 같이 일반석인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고 뛰지는 않지만 맨 뒤에서 여유를 부리는 짓은 하지 않는다. 짐이 없다면야 전혀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개찰을 하고 플랫폼으로 들어가려 하니 어마어마한 짐을 드신 분들이 너나없이 뛰신다.
침대칸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타고 있는데 내가 타야할 일반실은 길게 줄이 서 있다. 젊은 역무원 한 명이 인상을 쓰면서 줄을 세우고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역무원은 입구에서 기차표를 검사하고 있다.
젊은 역무원이 소리를 쳐대며 줄을 세우고 있어서 기분이 상했는데 조금 있으려니 이해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먼저 타려하니 난리도 아니다. 줄을 서고 있는 와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새치기를 시도한다. 그때마다 젊은 역무원이 호통을 치면서 뒤로 보내는데 좋게 말하면 통하지가 않는다. 어떤 아저씨 한 분은 못들은 척 하고 계속 버티고 있었는데 이 역무원이 바로 앞에까지 와서 손으로 가리키면서 뒤로 가라고 한다. 덕분에 새치기 없이 순서대로 기차를 탄다. 고함을 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걱정을 했는데 비수기여서 그나마 입석이 많지는 않다. 여기서 많지 않다는 것은 화장실을 갈 수 있겠다는 것이지, 통로가 한산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내 좌석은 통로 쪽이라 내 옆에도 서서 가는 분이 계신다. 객차와 객차가 연결되는 곳에는 당연히 발 디딜 틈이 없다. 그곳에 화장실이 있으니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이러고 청두에서 판즈화까지 14시간을 가야한다. 판즈화까지 입석이라면 죽음이다. 중간에 보니 대담하신 분들이 계시더라. 통로에 이불 같은 것을 깔고 아예 누워서 잠을 자는 분도 계시고, 의자 밑으로 들어가서 주무시는 분들도 계신다.
좌석에 앉아 두어 시간이 지나니 슬슬 힘들어진다. 앉은 사람으로서 입석으로 가시는 분들을 걱정하면서 한 동안 기차를 탔는데 이게 한 두어 시간 지나니 앉아 가는 것도 고욕이다. 좁고, 젖혀지지 않는 의자에 앉아서 가려니 온 몸이 결린다.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어 보지만 너무 불편해서 잠도 오질 않는다. 입석으로 통로에 이불 깔고 누워 계시는 분이 부러울 뿐이다.
한 8시간 정도 지났을까 이제는 엉덩이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서 앉아 가기도 힘들다. 잠자는 것은 완전히 포기했다. 잠을 자야 시간이 빨리 갈 터인데 도저히 자세가 나오질 않는다.
청두에서 산 보온병을 꺼낸다. 중국의 모든 기차에는 뜨거운 물을 제공한다. 보온병에 커피를 타서 마시면서 이 시간을 즐기기로 한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니 입석이 좀 빠져 나가서 통로에 여유가 생겼다. 음악과 커피를 마시면서 엉덩이가 아프면 서 있다가 다리가 아프면 앉아가기를 반복한다.
창밖은 불빛 하나 없는 어둠이다. 풍경이라도 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가끔 마을이나 도시를 지날 때 불빛 속에 비치는 풍경이 장난 아니다. 기차는 강을 따라 가고 있다. 아마도 강 협곡을 따라 올라가나 보다.
윈난성은 대체로 2천m의 고지대다. 평지인 청두에서 거의 2천m의 고지대까지 올라가야 하는 길이다. 낮이라면 쓰촨성 고지대의 절경을 구경하면서 갈 수 있을 터다. 강 협곡을 따라 올라가는 기차라 생각만 해도 아찔하게 멋있을 것 같다.
기차는 정말이지 천천히 간다. 어차피 걸리는 도착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조바심을 낼 필요도 짜증이 날 이유도 없겠지만 느려도 너무 느리다. 계속 올라가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철도가 단선으로 보인다. 반대편에서 기차가 올 때마다 통과할 수 있도록 옆으로 비껴서 한참을 기다린다. 역에서도 정차 시간이 무척이나 길다.
역에 설 때마다 사람들이 좀 내리겠거니 생각했는데, 타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다. 좌석이 널널해지면 혹 누워갈 수 있지 않을까 했던 생각은 허망하게 무너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 옆과 앞자리에 앉은 사람 모두 여자 분이란 사실이다. 지금까지 기차든 버스든 내 옆에는 다 남자들이 앉았었는데 가장 결정적일 때 여자 분들이다. 내 앞자리와 옆자리는 젊은 처자고 대각선에 계신 분만 아주머니다. 앞자리 처자는 여군이다. 대학 대신 군대를 간 것 같다. 나이가 무척이나 어려 보이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근무하냐고 물으니 비밀이란다.
옆의 처자 때문에 알게 되었는데 중간에 침대칸에 자리가 나오면 그 자리를 살 수 있다고 한다. 중간에 기차 차장이 무어라고 말하는 소리에 옆자리의 처자가 뛰어갔다가 돌아와서 이야기를 해준다. 아쉽게도 처자는 표를 못 구했단다.
청두역에서 기차표를 살 때 창구 직원이 잉쭈어인데 괜찮냐고 물었었다. 입석도 아니고 잉쭈어를 사는 사람에게 재차 물어본 이유가 아마 외국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뭘 모르고 사는 거 아닌가 싶어서 확인하는 것일 게다. 다른 표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니 그렇다며 표를 주었다.
입석으로 가시는 분들을 보면서 위안을 삼는다.
by 경계넘기.
'세계 일주 여행 > 중국(China)' 카테고리의 다른 글
D+026, 중국 다리 1-2: 청두(成都)에서 다리(大理) 가는 길 3(20181210) (0) | 2021.01.13 |
---|---|
D+026, 중국 다리 1-1: 청두(成都)에서 다리(大理) 가는 길 2”(20181210) (0) | 2021.01.13 |
D+024, 중국 청두 8: 청두(成都)와 쓰촨성(四川省)에서 가볼 만한 곳들(20181208) (0) | 2021.01.12 |
D+023, 중국 청두 7-2: 무후사(武侯祠) 옆 진리(錦里) 거리(20181207) (0) | 2020.12.18 |
D+023, 중국 청두 7: 쓰촨 대학(四川大學)에서 중국 개혁개방 40년의 진정한 모습을 본다(20181207) (0) | 2020.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