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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026, 중국 다리 1-2: 청두(成都)에서 다리(大理) 가는 길 3(20181210)

경계넘기 2021. 1. 13. 10:23

 

청두(成都)에서 윈난성(雲南省) 다리(大理) 가는 길 3: 숨가쁜 1박 2일의 여정

 

버스는 종점인 버스 터미널에 940분에 도착한다. 기차역에서 815분에 버스를 탔으니 자금만치 시내버스만 1시간 25분을 탔다. 터미널로 들어가서 버스 일정표를 보니 리장(丽江) 가는 버스는 보이는데 다리(大理) 가는 버스가 보이질 않는다. 일하시는 분을 잡고 물어보니 있단다. 일정표에는 없는데 이상하다. 다리가 윈난성에서 작은 도시도 아닐 터인데.

 

창구에서 다리에 간다고 하니 표를 준다. 105위안. 표를 보니 다리라고 쓰여 있는 것이 아니라 샤관(下關, 하관)이라고 쓰여 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다리는 샤관과 샹관(上關, 상관), 그 사이에 다리 고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샤관이 도시의 중심지고, 내가 가려는 다리 고성은 유적지이자 관광지다. 터미널과 기차역은 당연히 샤관에 있다.

 

표를 주면서 역무원이 곧 차가 출발하니 서둘러 가라고 한다. 화장실만 겨우 들리고 바로 버스에 올라탄다. 좌석은 맨 뒤에서 하나 앞. 그래도 창가다. 차에 탄지 몇 분 안 되어서 버스가 출발한다.

 

 

 

판즈화에서 다리 가는 버스는 하루에 단 두 대뿐이었다. 오전 8시와 940. 940분에 터미널에 도착해서 버스를 탈 수 있었던 데는 버스가 조금 지연되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볼 뻔 했다.

 

14시간 기차를 타고, 20여 분 만에 시내버스를 1시간 20분 정도 타고, 10분 만에 다시 다리 가는 버스를 타고 있다. 잠시 숨 돌릴 틈도 없다.

 

여행을 하다보면 이런 일이 가끔 생긴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이동 중에는 짐을 흩트려 놓지 않는다.

 

예를 들면 표를 살 때 핸드폰이나 카메라 등을 손에 들고 있다거나 하지 않는다. 일단 버스나 기차에서 내리기 전에 짐을 제자리에 챙기고, 이동 중에 핸드폰이나 카메라 등을 쓸 일이 있으면 바로 다시 사용하더라도 원래 있던 가방 안에 넣어 둔다. 그렇지 않고 손에 들고 있거나 잠시 다른 곳에라도 놓아두면 이렇게 급하게 차를 타야 할 때 놓고 오는 경우가 생긴다.

 

중국과 같은 경우는 표를 살 때에도 신분증을 보여줘야 하니 손에 지갑과 여권을 들게 마련인데 여기다 핸드폰이나 카메라 등까지 들다보면 십중팔구 하나는 어딘가에 놓게 되는데, 이렇게 급한 일이 생기다 보면 정신이 없어서 놓고 오게 된다.

 

이동 중에는 귀찮더라도 쓴 물건은 다시 가방에 넣어 두는 것을 습관화하고 있다. 되도록 손에 드는 일은 없도록 한다.

 

이번에도 내 손에는 지갑과 여권뿐이었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면 습관처럼 바로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여권도 받으면 바로 가방 안에 챙기고. 마지막에는 받은 티켓만 손에 든다. 티켓을 확인한 이후에는 티켓도 지갑에 담는다.

 

때론 터미널이나 역에 사람이 많으면 미리 현금만 꺼내 주머니에 담아 두기도 한다. 아예 오픈된 장소에서 지갑을 꺼내지 않는 것인데 도난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번거롭지만 습관화하지 않으면 난처한 일이 생긴다. 바쁘고 급할수록.

 

출발할 때 빈자리가 있어서 편하게 가나 싶었는데 역시나 중간 중간 사람들을 태우기 시작해서 곧 만석이 되었다. 버스는 25인석 미니버스.

 

 

 

바로 뒤에 있는 중국 친구가 음악을 큰 소리로 듣고 있어서 상당히 거슬렸다. 그런데 한참 가다 보니 이 친구 멀미를 된통 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쌤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랜 시간 계속 멀미를 하는 것을 보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는 꼬불꼬불한 길을 한동안 달린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예쁘다. 날씨는 완연한 봄과 같다. 두껍게 입지 않은 옷마저도 덥게 느껴진다. 좀 지나니까 버스에서 에어컨도 튼다. 14시간 만에 바뀌는 세상이다.

 

쉽게 가는 방법을 놔두고 이렇게 힘든 노정을 가는 이유는 바로 윈난과 쓰촨의 고산 길들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전에 판즈화에서 리장 가는 길이 위험하기도 했지만 아름다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굽이굽이 깊은 계곡 길을 달리는 버스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훌륭했다. 차에서나마 그것을 즐기고자 이런 길을 택한다.

 

 

 

판즈화에서 다리 가는 길은 그렇게 좋지는 않다. 중간 정도는 산길을 달려서 그런대로 풍경이 좋았는데 나머지 반은 평지의 일반 마을길을 달린다. 당연히 풍경도 없는 지루한 길이다.

 

윈난 길은 리장에서부터 아름다운 것 같다. 판즈화에서 리장, 리장에서 중뎬(中甸, 샹그릴라) 등등 가는 길이 모두 예쁘다. 그래서 청두(成都)에서 동티베트의 캉딩(康定), 다오청(稻城), 중뎬으로 해서 다리로 들어오는 여정을 시도했던 것이다. 겨울이라 다오청의 야딩(亞丁)에서 트래킹은 못하겠지만 버스에서 가는 길의 풍경이나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야간에 이동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가는 길의 풍경을 다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야간에 이동하면 숙박비는 하루 벌 수 있지만 점에서 점으로만 여행을 하는 셈이다.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낮에 이동한다면 점에서 점이 아니라 선()이나 면()의 여행이 가능하다. 버스가 달리는 곳의 풍경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도 여행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버스가 로컬 버스라면 버스 안에서의 풍경도 좋은 경험으로 남는다. 버스의 리드미컬한 진동이 편안한 잠으로 이끌기도 한다. 조금 고생은 되겠지만.

 

 

 

낮 이동에도 단점이 있다. 물론 숙박비를 아낄 수 없다는 점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도착지에 저녁에 도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초행길에 저녁, 그것도 늦은 저녁에 떨어지면 숙소를 찾거나 이동하는 데 무척 애를 먹는다. 위험도 하고.

 

따라서 이동 시간이 길어서 저녁 늦게 떨어지는 곳은 끊어서 이동하기도 한다. 중간지에서 묵었다 가는 것이다. 그러면 피곤함도 덜하고 여행도 더 즐길 수 있다. 때론 귀찮기도 하지만.

 

하지만 이것도 정보가 있을 때에나 가능하다. 말도 통하지 않고 정보도 없는 곳에서는 얼마나 걸릴지, 언제 도착할지 제대로 모르고 타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경우 새벽 1, 2시에 낯선 목적지에 떨어지기도 한다. 엄청 당황스럽다. 이럴 때 여행의 경험과 순발력이 드러난다.

 

겨울의 중국을 계속 여행하다가 윈난성(雲南省)에 들어서니 달라진 게 많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꽃이다. 청두에서도 꽃을 보긴 했지만 여기는 그냥 제철이다. 여기저기 노랗고 빨간 꽃들이 만발이다. 밭에도 채소들의 싱그러운 녹음이 가득하다. 봄이라고 해야 하나 가을이라고 해야 하나. 육로의 기나긴 이동이 계절의 변화를 가져온다. 차장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스하다 못해 따갑다. 나도 모르게 커튼을 친다. 이제 겨울은 안녕인가.

 

 

 

오후 1시에 버스가 한 휴게소에 들린다. 휴게소라고 하지만 작은 식당을 겸하는 가게 앞이다. 블로그들을 보면 이런 곳에서 하는 식사가 조금 비싸긴 하지만 다들 맛있었다고 한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반찬 몇 가지를 담아서 밥을 먹는다. 25위안. 가격은 싸지 않지만 맛있다. 밥과 반찬을 더 담아서 먹는다. 뷔페처럼 상관없다. 반찬만 더 담으려 했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밥도 더 담아가라고 손짓을 하신다.

 

 

 

귤도 한 근 산다. 5위안. 달다. 버스 안에서 까먹으니 색다르다. 하지만 이때부터 버스는 지루한 길로 접어들었다.

 

7시간 반을 달려서 버스는 오후 520분에 샤관 터미널에 도착했다. 다리 고성 근처의 숙소까지는 여기서 다시 시내버스를 타야 한다. 버스 타는 곳을 알 수 없어서 물어보니 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기차역으로 가면 거기에 정류장이 있다고 한다.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다.

 

버스는 번호가 아니라 三塔專線으로 쓰여 있다. 기차역이 종점으로 보인다. 주차장 같은 곳에 여러 노선의 버스가 주차해 있다. 540분에 출발할 버스는 거의 1시간 넘어 가서야 목적지에 도착한다. 거리가 먼 것이 아니라 중국 버스는 제한 속도가 있는지 엄청 천천히 달린다. 차가 막히든 막히지 안 든.

 

저녁 7시에 드디어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판즈화에서 다리 오는 버스 안에서 예약했다. 판즈화에서의 일정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예약을 못하고 있다가 버스에 탑승한 이후에 예약했다. 현지 유심을 달고 다니니 이게 좋다.

 

계산해 보니 청두에서 다리까지 차만 24시간 탔다. 청두에서 판즈화까지 14시간의 기차, 판즈화에서 시내버스 1시간 반, 판즈화에서 다리까지 7시간 반의 버스, 다리 터미널에서 고성까지 1시간. 24시간. 중간 중간 갈아타는 시간은 길어봐야 20분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일정이 딱 맞은 것이고 달리 말하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달린 것이다. 그래도 크게 피곤하지는 않다. 감사한 일이다.

 

숙소는 이모쑤안 게스트하우스. 하루 도미토리 방값이 15위안. 지금까지 방값 중에서 가장 저렴하다. 방은 만실이어서 처음으로 침대 이층을 사용한다.

 

체크인을 하자마자 젊은 사장이 한국인이 같은 방에 묵고 있다면서 소개시켜 준다. 한국인은 이곳에서 이미 열흘 정도 묵고 계시는 분으로 중국을 많이 여행한 분이다. 이곳 다리도 자주 오는 편으로 이 숙소에만 세 번째라고 한다. 덕분에 이곳 사장과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단다. 간만에 한국인을 만나니 반갑다.

 

숙소에서 훠궈로 저녁을 먹는데 30위안만 내면 된다고 한다. 방값이 15위안인데 밥값이 30위안이라 조금 비싼 감이 없진 않지만 마땅히 저녁 할 곳도 없어서 방에 가방만 내려놓고 같이 식사를 한다. 중국 와서 처음 먹는 훠궈다. 혼자 다니다 보니 훠궈를 먹기가 어렵다.

 

게스트하우스는 사장 부부와 사장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가족 숙소다. 한국인 친구 말에 의하면 부인이 원래 여기 사장이었고, 여행을 좋아하는 남자가 여행하다가 눈이 맞아 작년에 결혼하면서 이곳에 살게 되었단다. 남자는 동북 장춘 사람이란다. 장춘에 사시는 부모님도 이곳으로 오셔서 아들 일을 돕고 있다고.

 

동북 분들이라 음식이 우리 입맛에 맞다. 중국에서 우리와 가장 음식이 비슷한 곳이 동북 3성이다. 지리적, 역사적으로 가장 가까운 면도 있겠고, 또 조선족 자치주도 있어서 더욱 그렇다. 사장도 한국 음식을 좋아해서 장춘에 있을 때에도 자주 조선족 자치구인 옌변에 가서 식사를 했다고 한다. 훠궈를 먹는데 반찬으로 김치가 있다. 옌볜에서 사온 조선족 김치라고 한다. 조금 달긴 하지만 기본적인 맛은 비슷하다.

 

방은 6인실로 나를 포함 한국인 2명과 중국인 4명이 있다. 사교성 좋은 한국분이 이미 같은 방 중국인들을 친구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같이 훠궈를 먹은지라 다소나마 친해진 기분이 들어서 좀 더 편안한 도미토리 생활이 될 것 같다.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나니 피곤함이 몰려온다. 다리에서는 며칠을 묵게 될까? 나도 궁금하다. 일단 방값이 싸니 그건 좋다. 게스트 사장도 나쁘지는 않고.

 

그렇게 12일 간의 이동을 마감한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