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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라오스(Laos)

D+044, 라오스 루앙프라방 1-2: 베트남 하노이(Hanoi)에서 라오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으로 2(20181228)

경계넘기 2021. 4. 12. 08:00

 

D+044, 라오스 루앙프라방 1-1: 베트남 하노이(Hanoi)에서 라오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으로 1(20181228

베트남 하노이(Hanoi)에서 라오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으로 1 하노이에서 루앙프라방 여정 베트남 하노이(Hanoi)에서 라오스 북부의 루앙프라방(Luang Prabang)까지 버스가 달리는 거리는 870km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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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Hanoi)에서 라오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으로 2

 

 

루앙프라방(Luang Prabang) 가는 길

 

 

버스 입구, 운전석 옆에 털썩 앉는다.

 

해도 떴는데 통로에 끼어 있을 수만은 없다.

기사와 차장들이 들어가라고 하는 것을 온몸이 아프다는 몸짓을 해가면서 눌러 앉는다.

 

처음에는 들어가라던 다른 기사도 어쩔 수 없는지 내 옆에 앉아서는 이런 저런 것들을 묻는다. 내 여권도 보자하고. 차장이 건네는 대나무 파이프 담배도 피워본다. 겁나 독하다. 물론 통역이 따로 있다. 기사 바로 뒷자리에 있던 베트남 처자가 영어를 해서 통역을 해준다.

 

자리가 좀 불편하긴 하지만 기사 옆에 앉아서 차가 지나는 도로 가의 라오스의 풍경을 감상한다.

 

 

 

감상은 좋은데 어제 밤을 설쳤더니 졸음이 밀려온다.

가끔 버스를 세우면 얼른 내려서 스트레칭을 하곤 하지만 졸음을 쫓긴 역부족이다.

 

조는 걸 봤나 보다. 한 차장이 자기 자리를 내어준다. 자기는 다 잤단다. 다들 권하기에 마지 못하는 척하면서 올라간다. 주변의 베트남 승객들도 내가 좀 안되어 보였는지 손짓으로 어여 올라가란다. 앞에서 둘째 열, 윗자리라 차창 전망이 좋다.

 

양보를 한 덕이다. 어제 저녁은 좀 고생했지만 라오스 풍경을 제대로 감상한다.

산과 들, 논과 밭, 마을과 집 그리고 사람들. 

 

 

 

이 버스는 침대 버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한국의 중고 버스를 들여와서 개조한 것이다. 운전석 위에 크게 한글로 금연이라는 푯말이 그대로 붙어 있다. 그래서 아래 좌석에서는 창밖을 거의 볼 수가 없다. 내가 양보한 자리는 아래 좌석이다. 내가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그 자리에 누워 갔다면 꼼짝없이 풍경도 못보고 24시간 이상을 갈 뻔 했다.

 

양보로 양심도 지키고, 전망을 볼 수 있는 실리도 얻는다.

조금 고생한 덕을 본다.

 

운은 또 뒤바뀌었다.

 

 

 

좌석에 눕자마자 금세 잠이 들었나 보다. 1시간 정도 달렸나. 버스는 조금한 도시의 한 식당 옆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점심 식사 시간. 생각해보니 아침식사 시간도 없이 국경에서 내리 달렸다. 어제 오후 2시 이후로 아무것도 먹질 못했다.

 

배고프다는 생각도 잠깐 환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상태로 가면 루앙프라방에 저녁 늦게야 도착할 것 같다. 지금 하지 않으면 루앙프라방에서는 오늘 환전이 불가능해 보인다. 국경에서는 환전상도 환전소도 없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 것인지 비가 오는 궂은 날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다.

 

버스가 정차한 곳은 작은 도시. 하지만 지나면서 보니까 ATM이 보였다. 점심을 먹는 대신 도로로 나선다. 작지만 제법 있을 것은 다 있는 도시다. 여행사도 있고, 서양 여행자도 보이는 것으로 봐서는 여행지인가 보다.

 

 

 

분명 은행도 있을 터. 길에서 봤던 ATM은 고장 난 상태다. 거의 사용을 안 하는 것으로 보인다. 눈에 보이는 여행사에 들어가 물어보니 조금만 더 가면 은행이 있단다. 은행 앞 ATM에서 인출을 시도하는데 이번엔 카드가 되질 않는다. 옆에 있는 은행에 가보라고 해서 가봤지만 그쪽도 안 되긴 마찬가지. 제법 규모 있는 은행인데도 국제카드 사용이 안 되다니.

 

ATM은 포기하고 창구에서 베트남 돈 환전을 시도한다. 두 은행 중 비교적 한산하던 은행의 창구에서 물어보니 바로 환전을 해준다. 생각했던 환율보다도 낫다. 역시 20만 동짜리 베트남 지폐를 허물지 않은 것이 잘한 짓이다.

 

20만 동 지폐 세 장을 환전하니 손에 라오스 돈 23만 낍(Kip) 정도가 주어진다. 한국에서 가져온 라오스 돈이 12만 낍 정도 되니 당장 오늘, 내일은 걱정 없을 것 같다. 고장이긴 하지만 이런 작은 도시에서도 24시간 ATM이 있는 것을 보니 루앙프라방에는 여기저기 ATM이 천지일 것 같다. 주말이라도 인출의 걱정은 없을 듯하다.

 

환전을 하니 든든해진다.

 

든든해지니 배가 고파진다. 버스로 오는 길에 라오스 샌드위치 하는 곳이 보인다. 5천 낍. 우리 돈 7백 원. 역시 싸다. 루앙프라방에서는 두, 세 배쯤 하겠지만.

 

거리를 둘러보던 이탈리아 친구가 샌드위치 맛있냐고 묻는다. 국수를 하나 먹긴 했는데 배가 고프단다. 가격도 싸지만 진짜 맛있다고 말해준다. 버스에 탈 때 이 친구가 나를 보더니 엄지를 척 세운다. 샌드위치 최고라고 고맙단다.

 

개인적으로 베트남 샌드위치인 반미보다 라오스 샌드위치를 더 좋아한다. 맛도 그렇고 양도 더 많은 것 같다. 특히 바게트가 더 맛있다. 더 부드럽고 구수하다. 라오스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아서 빵이 맛있다고 하는데 그건 베트남도 마찬가지이니 어느 것이 더 맛있는지는 순전히 개인 취향이다.

 

버스는 오후 3시에 다시 출발한다. 이제는 자리가 있으니 편안하다. 이층이라 전망도 좋다. 자다 경치보다 그런다.

 

 

 

완만한 산간 지대를 달리던 버스는 이제 거친 산길을 굽이굽이 달리기 시작한다.

 

대관령 옛길과 같은 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경치는 좋다. 티베트나 중국 쓰촨성과 같은 깎아지른 절벽 위의 도로를 달리는 아슬아슬함은 없지만 제법 산세가 험한 곳을 버스는 느릿느릿 올라간다.

 

 

 

도로의 상태는 좋지 않다.

부분부분 비포장도로도 나오고.

포장된 도로도 그 상태가 좋지 않다. 짙게 패인 곳이 많다.

 

 

 

쉼 없이 올라간다.

그만큼 루앙프라방이 고지대에 있다는 것이리라.

점심 이후 몇 시간째 쉬지 않고 버스는 오르고 또 오르고 있다.

 

 

 

석양에 젖은 라오스의 풍경이 더욱 아름답다.

 

하루 종일 라오스의 풍경을 원 없이 볼 수 있으니 감사하다.

길을 달리며 라오스를 본다.

 

 

 

오후 6시가 훌쩍 넘으니 길에 어둠이 깔린다. 더 이상 창밖으로 풍경이 보이질 않는다. 어제 오후 6시에 버스가 출발했으니 이미 여행사에서 말한 24시간은 넘었다. 얼마를 더 갈 것인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저녁 10시에 드디어 루앙프라방에 도착한다. 장장 28시간의 버스 타기가 끝났다. 중간에 갈아타지 않고 28시간을 내리 버스 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하나의 기록을 세운다.

 

 

먼저 손 내밀어 준 베트남 친구들

 

 

터미널에 내리니 막막해진다.

일행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다.

 

같은 버스에 탔던 서양 친구들은 서로들 모여서 이미 둥글게 진을 짰다.

 

매번 터미널에 내릴 때마다 보이는 풍경인데 그럴 때마다 이국의 기마 병력에 둘러싸인 로마부대가 생각나서 웃음이 난다. 로마 군대가 둥글게 진을 짜서 방패로 둘러막은 형세다. 이들의 방패는 등에 진 배낭이다.

 

서로 둥글게 모여서 무언가를 의논하는 모양을 묘사한 말인데 과히 틀리지는 않다. 실제로 역이나 터미널의 극성스런 삐끼들을 막는데도 제법 유용하다. 이곳 터미널의 삐끼들도 그 진을 뚫지 못하고 주변에서 서성이며 기다린다.

 

예전 같으면 나도 그 진에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일행이 없는 홀로 여행자는 하이에나와 같은 삐끼들의 주된 공격 대상이다. 요즘은 그 진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점점 귀찮아진다. 그만큼 경험이 많아졌다는 의미이기도 할 게다.

 

동양 여행자들은 주로 각개전투다.

 

뭉치질 않는다. 뭉치지 못한다는 것이 더 정확이다. 성격도 성격이지만 현실적으로 구심이 되는 공통어가 없다. 서양 친구들은 영어권 국가가 아니더라도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친구들이 많다. 알파벳 문명권이라 배우기도 쉽다. 바로 그 영어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뭉친다.

 

루앙프라방 터미널은 여행자 거리에서 좀 멀다. 배낭을 메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툭툭을 탈 수밖에 없는데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기사들의 바가지가 극성이다. 그렇다고 큰돈은 아니지만 뻔히 알면서 밥이 되는 것은 정말 싫다. 되도록 안 타려고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달리 방도가 없어 보인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같이 버스를 타고 왔던 베트남 친구들이다. 잠시 통역을 해주던 베트남 처자 외에 다른 친구들과는 이야기를 나눠 본 적도 없다. 그나마도 통역을 해주던 친구가 나를 부른 게 아니라 다른 친구가 불렀다. 툭툭 기사와 두당 1.5만 낍에 합의를 했는데 같이 타고 갈 생각이 있냐고 물어 준다.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다.

 

툭툭을 같이 탄 베트남 여행객들은 다섯. 여자 셋, 남자 둘. 한 쌍은 정말 커플, 다른 한 쌍은 그냥 친구, 그리고 통역을 해주었던 처자는 나와 같은 홀로 여행객. 모두 젊은 친구들이다.

 

한국어를 곧잘 하는 베트남 처자도 있다. 극구 ‘just friends’를 강조한 쌍으로 온 친구다. 베트남에서 유소년 축구팀에서 일한단다. 한국 부산에도 훈련 관계로 간 적이 있다고. 버스에서는 전혀 내색을 안 하니 알 수가 없다. 요즘은 한류가 퍼져서 한국말도 조심해야 한다. 특히 욕은. 이 친구가 나를 불러줬다. 다른 두 명의 처자들도 영어가 능숙했다. 반면에 남자 둘은 영어만 나오면 눈만 꿈뻑꿈뻑.

 

 

 

그냥 여행 친구로 온 쌍이 나와 같은 숙소다. 덕분에 한 팀을 내려주고 우리 숙소에 가자하니 말을 바꿔서 5천 낍을 더 달라고 떼를 쓰는 기사를 버려두고 걸어올 수 있었다.

 

숙소에 와서야 이들이 진짜 그냥 친구 사이라는 것을 안다. 각자 다른 도미토리에 묵기 때문이다. 원래는 남자 둘, 여자 하나 이렇게 여행을 오기로 했는데 오기 직전에 남자 한 놈이 펑크를 냈단다.

 

오버부킹으로 고생을 하긴 했지만 덕분에 이래저래 도움을 받는다. 버스에서 내가 기사나 차창들과 싸우고, 베트남인들을 무시하면서 못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해서 한국말로 욕을 했다면 결코 먼저 다가오진 않았을 게다. 버스에서 고생한 나를 보고 측은지심도 생겼을 터이고.

 

처음 조금 양보하고 이래저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개운하다. 이번 여행 세 번째 국가 라오스에 온 걸 환영하고, 긴 버스 여행도 자축할 겸 라오 맥주(Beerlao)를 안 마실 수가 없다. 나의 사랑, 라오 맥주.

 

늦은 시간이라 숙소에서 라오 맥주 한 병을 마시고 잠을 청한다. 생각해보니 3년 전 태국에서 이곳에 처음 왔을 때도 저녁 늦게 숙소를 잡고 숙소에서 라오 한 병을 마셨었다. 그때도 환전을 못해서 숙소에서 달러를 주고 잔돈을 낍으로 받았었다. 지금과 많이 비슷했던 옛 생각이 소록소록 난다.

 

이제 세 번째 국가 라오스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