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프라방(Luang Prabang) 메콩(Mekong) 강변에서 아지트 찾기
메콩강변에서 생각지 않은 곳을 발견했다.
전망은 말할 곳도 없고 가격도 착하지만 맛도 좋은 곳이다.
지금 발 아래 메콩강을 두고,
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라오 맥주 옆에 끼고 이글을 쓰고 있다.
조금 전에 동네 한 바퀴, 메콩강변을 거닐다가 발견한 곳이다.
오전 내내 숙소에서 게으름을 피웠다.
베트남 하노이(Hanoi)에서 라오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까지
1박 2일, 28시간의 버스 이동으로 쌓인 피로를 풀어낸다.
짬을 내서 숙소에 빨래도 맡겼다.
세탁비가 저렴하기도 하지만 빈대를 박멸하기 위함이다. 하노이(Hanoi)의 숙소에 빈대가 있었다. 짐 속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빈대의 숙주가 될 수는 없다. 입고 있는 옷가지만 빼고 다 맡겼다.
뜨거운 물로 세탁하거나 삶지 않은 이상 빈대가 죽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최고의 살균제가 있다. 동남아의 뜨거운 햇살이다. 햇살 아래 단 몇 시간만 말려도 빈대는 도망을 치든, 죽든 할 게다.
급하냐고 묻기에 전혀 안 급하다고 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햇살에 말려 주시길.
배낭도 탈탈 털어서 햇살에 말려 둔다.
해가 중천에 떴다. 슬슬 배가 고파진다.
아지트 삼을 만한 식당이나 카페를 찾을 시간이다.
새로운 곳에 발을 디디면 하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다.
동네를 산책하듯 가볍게 한 바퀴 둘러보면서 지형지물을 익히고, 괜찮은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물색한다. 카페 겸 레스토랑이 최고의 사냥감. 식사도 하고, 음료도 하면서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저렴해야함은 기본이다.
이런 곳을 발견하면 그곳은 곧 나의 아지트가 된다.
식당이나 카페를 찾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현지인들이 주로 사는 곳에서 그곳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을 찾는 것이다. 현지인들이 줄을 서 있는 곳이라면 잠시의 망설임도 필요 없다. 바가지? 현지인들도 줄서서 먹는 곳에 외국인들에게 바가지 씌울 정신이 없다.
다만 약간의 푸대접은 각오해야 한다. 영어를 하는 직원이나 영어 메뉴판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곳일수록 몇 번 가게 되면 금방 단골이 되어 버린다. 외국인인지라 두, 세 번만 가도 내가 좋아하는 자리, 음식 등을 기억해 준다.
하지만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루앙프라방의 중심.
메콩강변에 있는 유네스코 유적지 한복판에서 그런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소박한 나의 아지트를 찾는다. 전망도 좋다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
숙소에서 메콩강은 3분 거리. 바로 메콩강변을 걷는다. 강변에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많지만 너나없이 그 가격을 자랑하다. 역시나 루앙프라방은 라오스 최고의 관광지다.
여행자 거리에서 그나마 먼 상류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빅트리 카페(Big Tree Cafe)와 샤프란 카페(Saffron Coffee)도 지난다. 유명세를 자랑하는 레스토랑이나 카페들은 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상인지라 가격도 비싸지만 그리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역시나 한국인 여사장이 운영하는 빅트리 카페에는 한국인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조금 더 강변을 따라 걸어 올라오니 한 허름한 강변 식당이 보인다. 강변에 지붕도 없이 어설프게 만든 테라스 식당의 전망이 기가 막힌다. 지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야자수가 바로 지붕이다. 테라스 아래는 바로 메콩강. 인테리어나 시설은 딱 로컬이지만 전망은 최고다.
가격도 나쁘지 않다. 볶음밥과 국수 종류가 모두 2만 낍(Kip). 한 끼 식사가 우리 돈으로 2,800원 꼴이다. 관광지에다 이런 전망을 갖춘 곳이 이 정도의 가격이라면 비싸다고 할 수 없다. 라오 맥주도 큰 병 하나 1만 3천 낍. 숙소에서도 만 낍에 판다.
식당의 사장님은 옆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신이 직접 그린 메콩강 풍경 그림을 판다. 그림 그리다 주문도 받고 한다. 하지만 식당일은 주로 여사장님이 한다. 두 분 다 젊은 분으로 무엇보다도 인상이 좋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라오스인답게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메콩강을 마주 보며 앉아서 해물볶음밥과 라오 맥주 한 병을 시킨다. 강변에 테라스를 만들어 테이블을 놓고 요리는 길 건너 집에서 만들어 온다. 음식도 맛있다. 라오스 고추가 우리네 청량 고추 못지않게 맵다. 매운 맛이 그간의 느끼함을 확 날려버린다.
딱 좋다.
강이 바로 앞이라 좋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좋고, 조용해서 좋다.
개미들이 가끔 귀찮게 하지만.
기분 좋은 여유로움.
문득 예전 라오스의 중부 도시 사반나케트(Savannakhet)가 생각난다.
메콩강에서 기분 좋은 여유로움을 즐겼던 곳이다. 사반나케트는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태국과 마주하고 있는 도시다. 사반나케트의 한 메콩강변 레스토랑에서 맥주와 식사를 즐기곤 했다. 여름이고 비수기라 사람들이 거의 없는 곳에서 나 혼자 메콩강변을 한없이 바라보며 라오 맥주와 여유로움을 즐겼다. 메콩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마주 보이는 강 건너가 태국이었다.
이곳이 또 하나의 그런 곳이 될 것 같다.
새로운 곳에 와서 마음에 드는 아지트를 발견하면 여행의 반을 한 느낌이 든다.
강변의 여유로움을 즐기는데 한가하던 식당이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하다. 분명히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에 이곳에 들어왔는데. 오히려 오후 2시가 훌쩍 넘은 이 시간에 사람들로 만원이다.
날씨가 흐려지면서 강변에서 부는 바람마저 조금 쌀쌀하게 느껴진다. 추운 것은 아니고 기분 좋은 선선함이다. 긴팔 하나 입었다면 딱 좋을 듯. 하지만 모든 빨래를 맡기는 바람에 지금 옷이 없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