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한 도시의 화려한 꽃 축제 in 치앙라이(Chiang Rai)
이틀은 묵을 수 있으니 일단 짐은 푼다.
짐을 푸니 빨래 생각이 간절하다.
호스텔에 있는 세탁기로 묵은 빨래부터 한다. 당장 해놔야 넉넉히 마를 테니까. 세탁기 한 번 이용 요금이 20밧. 우리 돈 7백 원. 싸다. 빨래를 한 바탕 하고나니 개운해진다. 오후에 드니 다행히 해가 나와서 빨래 마르기에도 좋다.
느지막이 본격적으로 치앙라이(Chiang Rai) 시내 산책에 나선다.
태국 북부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라면 역시 치앙마이(Chiang Mai). 북부 최고의 관광지이기도 하다. 치앙라이는 치앙마이 바로 위에 있다. 라오스 국경 도시인 훼이싸이(Huay Xai)와는 100여 km, 치앙마이와는 200여 km 거리에 있다.
태국 최북단의 주(州) 치앙라이 주의 주도(州都)라지만 치앙라이는 무척 작은 도시다. 도시라기보다는 타운에 가깝다. 시가지는 쉬엄쉬엄 2~3시간이면 충분하다.
시가지가 작기도 하지만 볼거리도 거의 없다. 무료하다 싶을 정도로 한가한 도시. 햇살 아래 터벅터벅 걷다가 이곳에 왜 왔나 싶을 무렵 눈앞에 꽃 천지가 펼쳐진다.
치앙라이 꽃 페스티벌
(Chiang Rai Flower Festival)
중심가 한 공원에서 꽃축제를 하고 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꽃을 한 눈에 보기는 처음이다.
크지 않은 공원이지만 그 공원 안을 가지각색의 화려한 꽃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꽃의 바다. 꽃의 숲. 꽃의 정글. 뭐라 부르든 꽃의 향연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싶다. 더 이상 꽂을 수 없을 정도로 빽빽이 채워진 꽃밭 위로 밟고 올라설 수 있을 것 같다.
이름을 알고 있는 꽃은 몇 안 된다. 이름 모를 꽃들이 지천이다.
모양도 모양이지만 색깔이 너무 다채롭다.
빨간, 보라, 노랑, 하얀 등등. 같은 빨강색 계열도 빨강, 자주, 주황, 분홍, 살구 등등. 그 색깔을 표현할 단어가 부족하다.
하나의 꽃에도 다양한 색깔이 피어난다.
꽃으로 장식한 마네킹 인형들이 있다.
자세히 보면 옷결 하나하나, 머리장식 하나하나가 꽃이다. 꽃에 둘러싸였는지 나비에 둘러싸였는지 모르겠다. 하얀 원피스의 신부 모습도, 졸업 가운을 입은 여학생의 모습도 이채롭다.
작지만 꽃의 다양함과 풍성함은 어느 커다란 꽃박람회장보다 나았다.
치앙라이도 꽃의 도시인가 보다.
이렇게 예쁜 꽃들을 보는 날에는 어김없이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생각이 난다.
숙소 옆 버스 터미널 바로 위가 야시장이다.
시장을 둘러보다 보니 시장 안에 커다란 먹자 광장이 나온다. 광장 둘레로는 먹거리 부스들이 둘러싸고 있고, 앞으로는 무대가 있다. 공연도 하나 보다.
조금은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다. 한가할 때 튀김과 꼬치를 사서 맥주와 같이 먹는다. 튀김 한 바구니가 50밧, 커다란 꼬치 하나가 15밧. 그런데 맥주 한 병이 110밧. 태국은 술이 너무 비싸다. 이슬람 국가도 아니고. 나 같은 술꾼들에게 참 안 좋은 곳이다. 이런 훌륭한 안주에 맥주를 아껴 마셔야 하다니.
조금 있으니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조용하던 광장은 금세 도떼기시장으로 변한다.
동남아의 모기
해가 지니 모기들도 슬슬 내 다리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모기에 잘 물리는 사람에게는 한여름의 동남아가 더 나을 수가 있다.
한여름 우기의 동남아에 모기가 더 많을 것 같지만 오히려 거의 없다. 왜냐고? 너무 더우니까. 모기도 더위를 탄다. 모기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온도가 20도 초중반이다. 30도가 넘으면 모기들도 활동성을 잃고 여름잠을 잔다고 한다.
경험적으로도 사실이다. 한여름의 동남아에서는 오히려 모기 보기가 힘들다. 한여름 동남아에서 보기를 보려면 지대가 높아서 선선한 베트남의 사파(Sapa)나 달랏(Da Lat), 태국의 빠이(Pai) 같은 곳이다.
지금은 동남아의 겨울이자 건기. 어둠이 깔리면서 선선해지면 그 만큼 모기도 깔린다. 모기에 잘 물리는 나 같은 사람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주변에 볼거리가 많은 치앙라이
오후 한 때를 둘러보고 나니 치앙라이 시내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시내 안에 사원 몇 개, 작은 공원 한 두 곳, 황금 시계탑과 야시장 정도가 시내에 있는 가볼 만한 곳의 전부다. 많이 심심한 도시다. 개인적으로 아지트나 단골로 삼을 만한, 맘에 드는 식당이나 카페도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작은 도시 치앙라이는 성수기에 사람들로 너무 붐빈다. 성수기에 도시 자체만 보러 치앙라이에 온다면 많이 실망할 것 같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건 치앙라이 시가지만 말할 때다.
치앙라이는 빠이(Pai) 같은 곳이다. 도시 자체보다는 그 주변에 볼거리가 많다는 뜻이다.
치앙라이 근교에는 백색 사원(White Temple)으로 불리는 왓롱쿤(Wat Rong Khun), 블랙 뮤지엄으로 불리는 반담박물관(Baan Dam Museum), 추이퐁(Choui Pong) 차 농장 등 볼거리가 풍부하고 그 가는 길의 풍경도 아름답다고 한다.
그 외에도 차밭과 커피 농장, 그리고 아름다운 카페들이 근교 곳곳에 있어서 혼자라면 빠이처럼 오토바이 한 대 빌려서 이곳저곳 돌아다니기에 딱 좋은 곳이다. 반면에 도시에만 있다면 무료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짧게 여행을 왔다거나 이곳만 온 사람이라면 꼭 오토바이나 차를 대절해서 주변을 둘러보길 바란다. 그렇지 않고는 이곳을 제대로 알 수 없다.
그걸 알면서도 오토바이를 빌릴 생각은 하지 않는다.
숙소를 또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조금 붕 뜨게 만든다. 어딘가 정착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정감을 주질 못한다. 배낭도 제대로 풀지를 못했다. 치앙라이에 더 머물지, 아니면 숙소를 옮기는 김에 아예 도시를 옮길지도 아직 정하지 못했다.
숙소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야시장의 먹거리 광장에서 공연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시끄럽다고 생각했는데 현지 음악을 감상한다고 생각하니 금세 좋아진다. 정말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나저나 내일 모레 어떻게 해야 하지?
여행은 선택의 연속이다.
성수기 난민은 더욱.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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