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치앙라이(Chiang Rai)
버스는 11시 5분에 치앙라이(Chiang Rai) 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예정보다는 1시간 늦춰져 17시간 걸렸다.
버스에서 내리니 막막하다.
비가 더욱 거칠어졌다. 버스에서 짐을 꺼낼 대 짐이 젖을 것을 염려한 기사가 버스를 다시 빼서 최대한 지붕 안으로 들어가게 주차해서 짐을 꺼내 줄 정도다.
치앙라이에는 버스 터미널이 2개가 있다. 터미널 1과 터미널 2. 터미널 1이 구터미널로 시내에 있고, 터미널 2는 신터미널로 도시 외곽에 있다. 방콕 등 먼 거리로 가는 장거리 버스와 국제 버스 등은 터미널 2에서 내린다. 터미널 2는 도심에서 10여 km 떨어져있다.
이 빗속을 뚫고 도심까지 가는 게 문제다.
어느 블로그에서 터미널 2에서 터미널 1까지 왕복 운행한다는 썽태우 셔틀에 관한 글을 읽은 것 같다. 요금은 20밧이라고 했다. 예약한 숙소에서 보내 준 글에는 터미널 2에서 숙소까지 택시 요금이 한 100밧 정도 든다고 했다. 물론 바가지를 안 당했을 때 이야기다. 그러니 썽태우 셔틀의 20밧은 아주 훌륭한 가격이다. 숙소는 시내로 터미널 1에서 가깝다.
나에게는 배낭여행자의 묘한 자존심이 있다.
새로운 여정지에서 택시를 잘 타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한, 두 시간 거리라도 걷는다. 처음부터 택시를 이용하면 끝까지 택시만 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비가 온다고 택시를 타는 것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물론 배낭여행이 아니라 캐리어를 들고 가는 관광이거나 출장인 경우는 무조건 택시부터다.
숙소는 시내의 터미널 1에서도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라고 한다. 이 비에는 10분이 아니라 단 1분만 걸어도 흠뻑 젖는다. 하지만 일단 터미널 1까지 가고 나서 고민할 문제다.
다행이 오프라인에서 구글맵이 작동 한다.
오프라인에서도 구글맵은 나의 GPS 위치를 추적해서 보여준다. 안 될 때도 많은데 오늘은 작동을 한다. 오프라인에서 구글맵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오프라인 맵을 미리 저장해두어야 한다.
세계 모든 지역을 저장해두려면 저장 공간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하니 그때그때 필요한 지역을 저장하고 필요 없어진 지역은 삭제해야 한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전에 와이파이가 가능한 곳에서 다음 여정지의 지도를 저장해 두는 것도 중요한 이동 준비다. 내 경우 구글맵과 함께 맵스미(Maps.me)도 함께 사용한다. 맵스미도 미리미리 다운로드 받아두어야 오프라인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구글맵이 작동하니 구글맵을 켜고 툭툭을 타고 가다가 혹시 숙소 근처로 지나가게 된다면 바로 내릴 수도 있다. 이 빗속에서는 단 100미터만 줄여도 엄청난 것이다.
터미널을 둘러보니 블로그 말대로 터미널 1로 가는 툭툭이 있다. 빨간 안내판에 치앙라이 버스 터미널 1이라고 써 있다. 사람들이 타고 있어서 나도 얼른 자리를 잡는다.
툭툭이 움직이자 구글맵을 켜고 이동 동선을 확인한다. 마침 숙소 근처에 있는 한 병원에 썽태우가 선다. 터미널 1에서보다는 훨씬 가까운 거리다. 사람들이 내릴 때 나도 내린다. 구글맵으로 확인하니 여기서 숙소까지는 400미터 거리다. 다행히 비가 조금 잦아들어서 걸어볼 만하다.
만만의 준비를 한다. 방수가 되는 아웃도어로 외투를 갈아입고, 방수 케이스가 없는 작은 가방은 버스에서 신발 담을 때 주었던 비닐을 챙겨 와서 대충 덮었다. 큰 배낭은 이미 방수 케이스로 쌌다. 비가 조금 소강상태인지라 구글맵이 중국에서의 바이두맵처럼 엉뚱한 곳만 가리키지 않는다면 400미터 정도의 거리는 크게 젖지 않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큰 길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는데 비포장 길이 나온다. 그런데 비포장 길 곳곳이 물웅덩이로 홍건하다. 샌들로 바꿔 신을 걸 그 생각까지는 못했다. 얕은 곳을 찾아 디디면서 전진하다보니 호스텔이 나온다.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공터에 호스텔만 덩그러니 있다.
빗속을 뚫고 대중교통 편으로 성공적으로 호스텔에 도착했다. 이럴 때 나름의 성취감이 밀려온다. 처음 한번 고생 하면 이후는 자신감이 붙어서 뭐를 해도 맘이 편하다. 처음부터 편하게 하면 이후 계속 편한 것만 찾는다. 자꾸 어렵게만 느껴지고.
예약한 호스텔은 Mercy Hostel. 일박에 225밧. 평점이 높은 곳이라 시설도 나쁘지 않다. 공용공간도 넓고, 물이나 차, 더욱이 원두커피도 제공해 준다. 다만 규모가 있어서 직원들이 상당히 사무적이다. 대체로 투숙객이 많은 규모가 큰 호스텔들은 이러는 경우가 많다.
비가 오는 중이라 사람들이 나가지 못하고 호스텔 안에만 있다.
한낮임에도 숙소가 북적이고 공용공간에는 마땅히 앉을 자리도 없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샤워를 하고 나니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한다.
긴장이 풀리고 안도감이 밀려오는 게다.
드디어 이번 여행 4번째 국가, 9번째 도시에 안착했다.
치앙라이는 처음 와보는 도시이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와보는 도시는 치앙라이가 최초다.
한국에서 중국 칭다오(靑島)로 들어가서 지금까지 육로로 5,919km를 달려 이곳에 왔다. 여기에 서울에서 칭다오까지 항공 이동거리 610km를 합하면 6,529km다. 6천km를 달리면서 육로로 3번의 국경을 통과했다.
쉬엄쉬엄 어느새 꽤 많이 달렸다. 이제 시작이지만.
어제 점심 이후로 아직까지 아무것도 먹질 못했다는 생각이 난다.
숙소 주변에는 아무 것도 없다. 좀 걸어 나가야 식당이든 가게든 있을 것 같다. 호스텔에서는 식당을 운영하지 않는 관계로 먹을 게 없다. 맥주도 안 판다. 맥주를 팔지 않는 호스텔은 이번 여행 중에 처음이다.
좀 쉬다가 비가 잦아드는 것 같아서 나가보기로 한다.
동네 한 바퀴 돌면서 돈도 인출하고, 식사도 하고, 장도 좀 볼 생각이다.
리셉션에서 은행 위치를 묻고, 숙소를 나서려는데 다행히 비가 멎었다.
처음 와 보는 도시답게 낯설다. 하루 종일 비가 온 뒤라 도시가 많이 칙칙해보인다.
그래도 가는 길에 한국 식당을 발견하니 반갑다. 이름이 아리랑이다. 가격도 나쁘지 않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류가 120밧. 우리 돈으로 4천원 정도. 라오스 루앙프라방의 반 가격이다. 돈을 인출하고 마땅한 식당을 찾다가 배도 많이 고프고 해서 그냥 한국 식당가서 먹기로 한다. 반찬이 나오니 양도 더 많을 게고.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이라 손님은 두 테이블밖에 없다. 그런데 두 테이블 손님들이 모두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다. 한 테이블은 한국인, 다른 한 테이블은 현지인. 두 테이블밖에 안 되지만 그 냄새는 온 식당 안에 가득 찬다. 당연히 먹고 싶지. 내 바로 옆 테이블에 혼자 앉으신 중년의 태국 여사님은 삼겹살에 소주를 시켜놓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음식 블로거인지 나름 이리저리 세팅도 해가면서 찍느라 고기가 타는 줄도 모른다.
음..... 삼겹살에 소주라.
6천km를 달렸다지만 이제 겨우 여행 초입. 벌써 소주를 찾을 수는 없다. 비 내리고 흐린 날씨라 소주 먹기 딱 좋은 날이기는 하다만.
김치찌개에 창(Chang) 맥주로 위안을 삼는다. 태국에 왔으니 태국의 맥주를. 가격이 싸니 당연히 루앙프라방의 한국 식당만은 못하지만 나쁘지는 않다. 반찬도 6가지 정도 나오고. 공깃밥을 하나 더 시켜서 반찬까지 싹싹 먹는다. 만 하루 가까이 굶은 배에 포만감이 든다.
외국여행하면서 새 여정지에 도착하자마자 한국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은 처음이다.
평상시 같으면 치앙라이 시내를 둘러보면서 동네 파악을 할 터인데 언제 다시 비가 쏟아질지 모르는 날씨인지라 편의점만 들려서 서둘러 숙소로 향한다.
태국은 한국만큼 편의점이 잘 되어 있다. 특히 세븐일레븐. 세븐일레븐에 들려서 맥주 캔 하나와 생수, 과자와 빵 몇 가지를 산다.
생존 키트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나가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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