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앙프라방(Luang Prabang)에서 태국 치앙라이(Chiang Rai)로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에서 태국 치앙라이(Chiang Rai) 가는 길
새벽 2시가 조금 넘었을까.
차장이 루앙남타를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에서 치앙라이(Chiang Rai)로 가는 국제버스 안이다. 루앙남타(Louang Namtha). 중국 윈난성(雲南省)의 시솽반나 다이족 자치주(西双版纳傣族自治州)의 도시 징훙(景洪)에서 라오스로 바로 들어왔다면 이곳에서 1박을 했을 것이다.
징훙을 안 거치고 쿤밍에서 바로 베트남 하노이로 건너가서 하노이에서 루앙프라방으로 온 이유가 루앙남타로 오면 이처럼 루앙프라방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중국 윈난성에서 라오스로 넘어오는 루트는 이번 여행을 시작하기 이전 한국에서부터 생각했던 길이라 일정이 바뀌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루앙남타는 항상 기억에 있던 지명이었다.
바로 이 루앙남타가 나에게 구세주로 나타났다.
이곳에서 버스를 채웠던 일단의 중국인 자전거 여행족들이 모두 내렸기 때문이다. 거의 열 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갑자기 빠지니 좌석이 널널해진다. 내 좌석 바로 뒤도 자전거 여행족이었다.
자리를 옮기는 나를 보고 내 옆자리의 이탈리아인 파올로가 묻는다.
“It’s free. Are you sure”
그거 빈자리인거 확실하냐는 질문이다. 당연하지.
중국인들 내릴 때 보니 자전거 헬멧과 가방을 모두 들고 내렸다. 휴게실에 잠시 들린 경우라면 자전거 헬멧까지 가지고 내리지는 않겠지. 창밖을 보니 짐칸에 실었던 자전거를 차장들이 꺼내고 있다.
루앙남타는 중국 국경에서 20km 남짓 떨어져 있다. 루앙남타 자체도 산악자전거로 유명하지만 이 정도 거리라면 자전거를 타고 중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루앙프라방에서 오후 6시에 출발했으니 8시간 정도 달렸다. 그래도 아직 반 이상이 남았다. 이제부터는 편히 갈 수가 있다. 운이 완전히 나쁘지는 않다. 지난번 하노이에서 루앙프라방까지의 버스도 그렇고, 고생은 했지만 경험도 했다. 이런 버스를 탔다 하더라도 진짜 둘이 타고 가는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이 버스를 제대로 탔다고 할 수 있을까?
루앙프라방에서 치앙라이로 가는 국제 버스는 2열의 침대 버스다. 보통 침대 버스는 3열이다. 그만큼 넓은 것이 아니라 1좌석에 두 명이 누워간다. 중간에 좌석 분리대도 없다. 좁은 좌석에서 둘이 살을 맞대고 누워가야 한다. 차가 꼬불꼬불 길을 달리면 이리저리 몸이 움직이면서 두 몸은 더욱 밀착한다. 이것을 피하려면 온몸에 힘을 주고 버텨야 한다.
모르는 남녀가 같이 누우면 정말 난감할 게다.
여자도 여자지만 남자도 성추행 범으로 오해 안 받으려면 사력을 다해야 한다.
파올로도 편히 가게 되어서 기분이 좋은가 보다. 세상 편한 자세를 취한다. 이 자리가 진짜 빈자리이길 파올로도 나만큼 기대했을 것이다. 파올로와는 이후에도 휴게소나 입, 출국장에서 눈이 마주치며 서로 빙긋이 웃었다. 치앙마이까지 가는 파올로 보다 내가 먼저 내릴 때에도 우린 서로의 무운을 비는 인사를 했다. 같이 살을 맞대고 생고생한 전우다.
혼자 누워서 가니 세상 편하다. 흔들거릴 때에도 그냥 몸을 맡길 뿐이다. 신경 쓸 것이 없으니 잠도 잘 온다.
새벽 6시 30분에 버스는 훼이싸이(Huay Xai) 터미널에 도착했다. 훼이싸이는 태국과 메콩강(Mekong River)을 사이에 두고 있는 라오스의 국경 도시다. 루앙프라방에서 버스로 이곳까지 오기도 하지만 메콩강을 따라 보트로 오기도 한다. 1박 2일 걸리는 슬로우 보트도 있고, 당일에 오는 스피드 보트도 있다.
웬일인지 구글맵 오프라인 모드가 잘 작동한다. 구글맵은 인터넷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에도 GPS를 따라 내 위치를 잡아준다. 하지만 항상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번 하노이에서 루앙프라방으로 올 때는 이게 작동하지 않아서 내 위치를 확인할 수가 없어 무척 답답했다.
훼이싸이에서 메콩강을 건너면 태국의 치앙콩(Chiangkhong)이다. 한 시간 정도 이곳에 정차한다는 차장의 말로 보건대 이번에도 국경 문이 열릴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는 것으로 보인다.
갑자기 차에 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 차창 밖으로 비가 내린다. 사정없이 억수로 내린다. 열대의 비답다.
이번 여행에서 국경을 넘을 때마다 비가 내렸다. 중국에게 베트남으로 넘을 때도, 베트남에서 라오스로 넘어올 때에도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특히 베트남에서 라오스로 넘어 올 때는 지금처럼 국경에서 비가 내렸다.
지난번은 살짝 내리다 말았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내린다. 점점 비의 강도가 세지고 있다. 이번에도 목적지에 도착하면 비가 멈추려나? 살짝 기대해 본다.
7시 45분에 버스가 터미널을 나선다. 훼이싸이 도심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외곽으로 빠진다. 훼이싸이 도심에서 국경을 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지도를 자세히 보니 도심에서는 배로 국경을 넘는 것 같고, 다리는 조금 외곽에 있는 있다.
8시 10분에 국경에 도착한다.
비는 더욱 거세게 내린다. 걸어서 국경을 건너야 할 터인데 비 제대로 맞는 것 아닌가 싶다. 일단 라오스 출국 심사를 한다. 간단히 끝난다. 출국장을 나와서 라오스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칠 비가 아니다. 그저 멍하니 태국 쪽만 바라보고 있는데 우리 버스가 온다.
걸어서 넘어 가는 것이 아니라 버스로 가는 모양이다. 지금까지 모든 국경들은 국제버스를 탔더라도 걸어서 넘었다. 출국심사를 마치고 걸어서 국경을 넘어 입국심사를 마치면 버스가 오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비가 오기 때문에 일부러 버스를 태우고 가나 싶었는데 라오스 국경 검문소에서 태국 국경 검문소까지 꽤 거리가 있다. 생각해보니 넓은 메콩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다. 걸어가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싶다.
태국 입국 시에는 다른 국경과 달리 모든 개인 짐을 버스에서 내려서 들고 가야한다. 짐 검사를 하려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다. 개인 짐을 모두 들고 심사를 받으니 버스는 따로 짐 검사를 받지 않아서 항상 버스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태국 입국심사도 금방 끝난다.
한국은 태국에서 무비자로 3개월이다. 비자를 보니 4월까지다. 그냥 4월까지 태국에 있다가 바로 터키로 넘어갈까 싶기도 하다.
한국 여권은 대단하다.
지난번 루앙프라방에서 만났던 한국계 미국인에 의하면 미국도 태국은 무비자 30일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베트남이나 라오스는 무비자가 아니라 입국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베트남이나 라오스는 사회주의 국가라 그렇다고 하지만 태국은 왜 그러는지 궁금하다.
8시 50분에 입출국 절차가 모두 끝났다.
모든 입출국 심사가 40분만에 끝났다. 지난번 베트남에서 라오스로 넘어오는 남칸(Nan Can) 국경에서는 우리 버스가 맨 처음이었음에도 출입국 심사만으로 3시간 가까이 걸렸었다.
버스는 9시 정각에 국경 검문소를 떠난다.
이제 태국이다.
중국, 베트남, 라오스에 이어 이번 여행 4번째 국가.
치앙라이는 거쳐 가는 9번째 도시가 된다.
이번 여행에서 지금까지 모두 3번의 국경을 넘었다.
그 중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부드럽게 심사가 진행되었다. 시간도 금세 끝났다. 그건 태국 쪽의 운영 시스템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태국이 많은 나라에 무비자 혜택을 주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니었다면 버스에서 입국비자를 받느라고 정신없는 서양 친구들을 한참 기다리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여기서 치앙라이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태국에 진입하니 차의 진동도 거의 사라지고, 버스가 제 속도를 낸다. 확실히 도로 사정이 좋다. 잠시 치앙콩 시내로 들어갔던 버스는 다시 나와서 치앙라이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여전히 밖에는 비가 굵게 내린다. 치앙라이에 도착할 때쯤이면 이전처럼 비가 그치기를 기원해 본다.
차창 밖으로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니 좋다.
한 잔의 커피만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래도 음악이 있다. ‘가질 수 없는 너’를 듣는다. 빗속에 듣기에는 딱이다. 원곡은 뱅크가 불렀지만 내가 듣고 있는 음원은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삽입곡으로 하이니가 부른 노래다.
이 노래는 3년 전 태국의 빠이(Pai)라는 작은 산골 도시에 갔을 때 매일 오토바이를 타면서 들었던 노래다. 그때가 우기라 빠이에서는 비가 자주 내렸다. 비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면서 정말 많이 들었다. 오토바이를 타면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 위험해서 핸드폰을 비옷 안 상의 주머니에 넣고 그냥 핸드폰의 스피커로 음악을 들었었다. 빗소리와 오토바이 소리가 시끄럽긴 해도 비옷과 내 몸 안에서 울리는 노랫소리는 선명하게 내 귀를 울렸다.
그래서 비만 오면 이 노래가 듣고 싶어진다.
더욱이 지금은 태국이 아닌가!
딱이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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