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을 밀어낸 커피, 도이창 커피(Doi Chaang Coffee)
어제 봐두었던 도이창 카페(Doi Chaang Caffe)에 간다.
태국도 커피로 유명하다.
그 중에 하나가 도이창 커피(Doi Chaang Coffee). 태국의 유명한 커피 브랜드로 이곳 치앙라이의 도이창이라는 산지에서 나는 커피다. 세계 커피 품평회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서 유명해졌다.
도이창 커피의 탄생 배경은 매우 흥미롭다.
치앙라이(Chiang Rai) 북쪽, 메콩강 쪽으로 올라가면 영화나 만화의 주요 배경이 되는 아주 유명한 장소가 나온다. 바로 마약으로 유명한 황금삼각지대, 골든 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이다.
이곳은 태국, 미얀마, 라오스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메콩강 유역의 산악지대를 말한다. 세계 최대의 마약 산지였던 곳으로 1970년대 중반 이후 한때 전 세계 아편 공급의 70%를 장악했던 곳이다. 단속의 강화로 태국과 라오스에서는 생산이 급격히 줄었으나 정세가 불안한 미얀마 쪽에서는 현재도 많은 양의 마약이 생산되고 있다.
이곳을 무대로 활동했던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마약왕 쿤사(Khun Sa).
쿤사는 중국계 아버지와 미얀마 소수민족 샨족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쿤사는 원래 이 지역에서 활동하던 군벌이었다. 그는 1960년대부터 시작해서 미얀마 정부에 투항한 1996년까지 이곳을 세계 최대의 마약 생산지로 만들었다. 당시 전 세계에 마약을 공급했을 뿐만 아니라 2만여 명의 사단 급 병력에 미사일까지 보유했었다고 한다.
사실 골든 트라이앵글에서의 마약 생산은 쿤사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지역은 소수민족들이 오랜 세월 동안 소규모로 아편을 재배해왔었다. 아편을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군에 의해 쫓겨난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군 잔당들이 이곳까지 밀려오면서부터다. 국민당군이 아편을 주요 활동 자금원으로 인식하면서 아편의 생산과 유통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이후 쿤사도 마약에 손을 대면서 국민당군 조직들과 마약 패권을 두고 경쟁을 벌였다.
이곳이 최대의 마약산지로 번창할 수 있었던 데에는
많은 국제정치적 배경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중국 내륙의 국공내전은 차치하더라도, 공산세력의 침투를 저지하기 위해서 국민당군과 소수민족들의 마약 생산을 눈감아 주었던 미국 CIA, 소수민족 반군과 버마공산당의 토벌에 이용하기 위해 지역 군벌들에게 마약 생산을 대가로 준 미얀마 정부 그리고 미얀마 정부군에 대응하기 위해 아편을 재배한 소수민족 반군 등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이 지역이 국제적인 마약 생산의 거점이 되었다.
태국 역시 이 지역의 소수민족과 국민당군의 마약 생산을 눈감아 주면서 이들이 장악한 국경 지역을 공산세력 확장의 완충지대로 삼았다. 치앙라이 주는 미얀마와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국경에서도 가까운 지역. CIA와 마찬가지로 태국 정부 역시 중국, 미얀마, 라오스가 차례로 공산화되면서 치양라이 국경 지역으로의 공산세력 침투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마약을 판 돈으로 무장한 국민당군과 소수민족 반군들이 공산세력의 확장을 막는 1차 저지선의 역할을 한 셈이다.
태국의 치앙라이 주(州)가 바로 골든 트라이앵글의 태국 쪽 지역이다. 덕분에 치앙라이 주 곳곳에서 아편의 재료인 양귀비가 많이 재배되었다. 양귀비는 이곳 고산지역에 주로 사는 소수민족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일상의 흔한 커피가 복잡하게 얽힌 국제정치적, 역사적 실타래를 해결한 셈이다.
1980년대 초부터 태국 왕실이 본격적으로 치앙라이 지역의 양귀비 생산을 단속하는 한편 다른 수입원 개발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커피 재배다. 태국 왕실이 국책사업으로 양귀비 대신 커피 재배를 장려하면서 본격적으로 커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치앙마이 주 곳곳에서 재배하기 시작한 커피 중에서 도이창 커피는 도이창이라는 산골 마을에서 소수민족인 아카(Ahka)족이 양귀비 대신 재배한 커피를 말한다. 2006년과 2008년 유럽커피전문협회(SCAE)의 품평회에서 높은 점수를 얻으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현재는 생산된 원두의 대부분을 외국에 수출하면서 높은 농가 수입을 주고 있다고 한다.
지난번 중국 윈난성(雲南省) 다리(大理)에서 만났던 윈난 커피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다.
윈난성은 수천 년 전부터 차로 유명한 고장이다. 이곳에서 생산한 차와 티베트에서 자란 말을 교환하는 무역길이 바로 차마고도(茶馬古道)다. 윈난 커피는 최근 중국에서도 차 대신 커피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천, 수백 년 내려오던 차밭을 갈아엎고 커피를 재배하면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그때는 커피의 경제적 이익이 차의 역사와 문화를 지우는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았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의미가 이토록 크니 아니 마실 수가 없다.
도이창 카페에 들어서서 일단 가격을 살펴본다. 싸지 않다. 직원에게 가장 자신 있는 커피를 물어보니 아이스커피를 권한다. 아이스커피 한 잔 가격이 90밧. 우리 돈으로 3천 원이 넘는 돈이니 태국 일반 카페의 2배 정도 가격이다. 태국을 대표하는 커피 브랜드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카페는 한산하다. 아마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일 게다.
도이창 커피의 품평을 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커피 맛을 잘 모른다.
다만 산미가 강한 커피는 아닌 것 같다.
카페 입구에는 원두커피 매장도 있다.
4가지 종류의 원두커피를 판다. 한, 두 봉지 사고 싶지만 여행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그럴 수가 없다.
커피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굳이 도이창 커피를 살 필요는 없다.
도이창 커피는 너무 유명해져서 거의 산업적으로 재배되고 있다고 한다. 대량 생산되는 도이창 커피 말고도 치앙라이 주 곳곳에서 커피가 재배되고 있다. 커피를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커피 여행 겸해서 치앙라이 곳곳의 커피 생산지를 방문하여 커피 맛도 보고 자신에 맞는, 소량 생산하는 커피를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 치앙라이 여행을 더 의미 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더욱이 치앙라이 커피는 마약을 대체한 커피가 아닌가!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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