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성수기의 여행 난민 in 태국
아침에 식사도 할 겸 동네 한 바퀴를 한다.
이른 아침은 아니고 9시쯤.
날씨가 흐려서 늦은 아침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치앙라이(Chiang Rai) 시내는 작아서 숙소를 중심으로 한 바퀴를 돌고 나니 대충 감이 잡힌다.
시내 중앙에 있는 황금시계탑 근처의 한 카페 겸 식당에서 아메리카노 커피에 덮밥으로 여유로운 아침을 한다. 덮밥이 60밧에 커피가 40밧. 루앙프라방(Luang Prabang)보다는 확실히 저렴하다. 맥주 가격만 빼면 전반적으로 루앙프라방보다 싸다.
루앙프라방에서 만났던 베트남 친구들이 루앙프라방 물가가 너무 비싸다고 투덜댔었다. 생활 수준이나 GNP 등 전반적인 경제력이 베트남보다 낮은 라오스가 왜 베트남보다 물가가 비싼지 모르겠다고들 했다.
사실 루앙프라방, 왕위앙(Vang Vieng, 방비엥), 비엔티안(Vientiane) 정도만 물가가 비싸다. 이들 지역은 라오스 최고의 관광지. 그 중에서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루앙프라방 구시가지의 가게들은 주로 외국 관광객들만 상대하는 곳이다. 관광지역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물가가 확 떨어진다.
건기의 동남아 태국. 그것도 연말연시. 최고의 성수기다.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나의 여유로움은 끝났다.
10시 반쯤 숙소에 돌아와서 연장을 한다고 했더니 만실이란다. 어제 연장한다는 것을 깜박 했는데 생각해보니 어제 했다고 해서 침대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성수기의 저주가 교통편에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보통 숙소 예약은 하루만 한다. 사이트에서는 숙소를 제대로 알 수 없으니 하루 정도 묵어보고 결정한다. 맘에 들면 연장 하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곳으로 간다. 다만 이 방식은 비성수기에 유효하다. 성수기에 유명한 숙소는 연장이 안 되는 사태가 많이 발생한다.
지금이 극성수기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느림의 도시 루앙프라방의 후유증이다. 곧 체크아웃 시간인데 짐도 싸지 않았다. 대충 샤워를 하고 부리나케 짐을 정리한다. 그나마 조금 서둘러서 들어오길 망정이지 카페에서 마냥 여유부리고 있었다면 체크아웃을 넘길 뻔 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공용 공간으로 나와서 다른 숙소를 알아본다.
이곳과 같이 평이 좋고 저렴한 숙소는 방이 없다. 겨우 잡은 곳은 터미널 1 근처의 새로 생긴 호스텔이다. 가격이 이곳보다 100밧 정도 비싼 320밧이다. 시설이 깔끔하다고 해서 그곳으로 정했다.
그래도 인터넷을 통해서 편하게 예약을 하면서 움직일 수 있으니 다행이다. 예전에는 배낭 메고 온 동네를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묻고 다녀야 했다.
배낭을 메고 예약한 숙소를 찾아간다. 하루만에 다시 배낭을 맸다. 숙소는 터미널에서 한 30, 4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다. 터미널에서 이렇게 가까운 숙소를 잡기도 처음이다.
숙소는 새로 생긴 대로 깨끗했고 인테리어도 마치 한국의 펜션 같이 고급스러웠다. 여성 친화적인 인테리어라고 할까. 여성 전문 호스텔로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인테리어는 좋으나 다음이 문제다. 1층 베드가 없어서 2층 베드를 써야 한다. 여기에 4인실 방이 좁아도 너무 좁다. 방에 배낭을 눕혀서 짐을 풀기도 어렵다. 짜증이 나서 대충 필요한 짐만 꺼내 놓는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와서 공용공간에서 마시면서 다른 숙소를 찾는다. 좁은 방의 2층 베드는 너무 답답해서 아무래도 다시 숙소를 옮겨야 할 것 같다. 이곳도 일단 하루만 예약했었다. 숙소를 찾아보다가 무언가 찜찜해서 여기 숙소 예약을 확인해보니 내가 예약한 방은 4인실이 아니라 6인실이었다. 예약 사이트에 나온 방 사진도 6인실이 4인실보다 훨씬 넓다. 역시나 좁은 방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내가 이런 방을 예약했을 리가 없다.
리셉션에 가서 예약했던 방 사진을 보여주며 6인실을 예약했는데 왜 4인실을 주었냐고 물었다. 여직원 답이 업그레이드를 시켜준 것이란다. 6인실을 원한다면 옮겨주겠단다. 6인실에서는 1층 베드도 가능하다고 한다.
다시 짐을 챙겨 방을 옮긴다.
6인실은 확실히 넓다. 막혔던 속이 풀리는 기분이다.
도미토리 방의 함정:
다인실일수록 가격은 더 싸면서도 공간은 더 넓다
도미토리 방은 보통 침대가 적은 방일수록 가격이 비싸다. 6인실보다는 4인실이 싸고, 6인실보다는 8인실이 싸다.
언뜻 생각하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4인실, 6인실, 8인실의 방 넓이가 모두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같은 넓이의 방을 8명, 6명, 4명이 쓰는 것이라면 그만큼 가격이 비싼 것이 당연하지만 현실은 보통 8인실보다는 6인실이, 6인실보다는 4인실이 훨씬 좁은 경우가 태반이다.
절대적 공간뿐만 아니리 때론 인당 공간도 좁은 경우가 허다하다. 가격은 비싼데 오히려 공간은 비슷하거나 좁으니, 수용 인원이 적은 방일수록 방의 공용공간도 좁아서 무척 답답하다.
방이 만실이라면 다인실일수록 더 혼잡하겠지만 성수기를 제외하고 도미토리 방이 만실인 경우가 흔치 않다. 그러니 침대가 많은 방이 당연히 공간을 훨씬 넓게 사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침대가 많은 방이 보통 더 늦게 차는 경우도 많다.
이래서 난 다인실을 선호한다. 가격도 싸지만 무엇보다도 공간이 넓다. 방 안의 공용공간이라고 해야 할까. 침대가 많다 보니 공용공간이 넓을 수밖에 없다.
이 숙소도 연장이 안 된단다.
옮긴 6인실 방이 맘에 들어 연장을 하려하니 하루밖에 연장이 안 된다고 한다.
싫든 좋든 내일모레는 다시 배낭을 싸야 한다.
순간 다시 짜증이 밀려온다. 이럴 때는 고민을 나중으로 미는 게 상책이다.
다른 숙소를 예약할지 도시를 옮길지.
태국의 치앙라이에서 난민 신세다.
이래서 성수기에는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돈은 돈대로 쓰고 대우는 대우대로 못 받고.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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