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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말레이시아(Malaysia)

D+075, 말레이시아 페낭 3-2: 말레이시아 다문화의 반전 (20190128)

경계넘기 2021. 7. 6. 12:19

 

말레이시아 다문화의 반전

 

 

오후 5시가 넘은 시각 지금 페낭의 한 카페에 있다.

 

 

 

야외 테이블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쌍의 젊은 처자 둘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한 친구는 인도계, 한 친구는 중국계로 보이는데 무척 친해 보인다. 여느 친한 친구들 사이의 모습인데 보고 있는 내 마음이 흐뭇해진다.

 

아까 점심을 먹었던 한국 식당에서는 히잡을 둘러쓴 이슬람 처자들과 중국계로 보이는 처자들이 함께 신나게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을 보고 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일까?

 

페낭(Penang 또는 피낭(Pinang))은 다민족, 다문화 사회다. 페낭섬의 도시 조지타운(Gorge Town)은 영국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조지타운을 건설한 영국의 동인도 회사를 따라 영국인과 인도인이 들어왔고, 이곳이 상업적으로 번창하자 돈을 찾아 많은 화교들이 줄지어 이민을 왔다. 그네들이 주로 믿는 종교조차 다르다. 유럽계는 기독교, 중국계는 불교, 인도계는 힌두교 그리고 말레이계는 이슬람이다. 페낭에 유럽, 인도, 중국 그리고 말레이 문화가 공존하는 이유다.

 

말레이시아의 독립과 함께 유럽인들은 떠났지만 지금도 중국계, 인도계, 말레인들이 어울려 살고 있다. 조지타운의 중심가에는 한 거리 안에 성당, 불교 사원, 힌두 사원, 이슬람 사원 그리고 도교 사원이 함께 자리하기도 한다. 차이나타운과 그 한 블록 위에 있는 리틀 인디아(little India) 그리고 유럽 거리가 조지타운의 구시가지 중심을 형성한다. 과거에서 시작해서 현재까지 말레이시아 페낭은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페낭의 모습은 말레이시아의 다문화를 대표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스쳐 지나가는 한 이방인에게 페낭은 다민족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페낭에서 보는 말레이시아의 다문화는 여타 소수 민족들을 지배 민족인 한족의 문화로 통합하려는 중국과는 달리 캐나다처럼 각자의 민족과 인종이 각자 고유의 문화와 종교를 유지하면서 공존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

 

 

 

 

말레이시아 다문화의 반전, 부미푸트라(Bumiputera)
말레이계 우대 정책이자 중국계와 인도계 차별 정책

 

 

 

페낭, 즉 말레이시아는 진정 다문화의 좋은 모델을 보여주고 있을까?

 

아쉽게도 말레이시아는 그렇지 못하다.

 

말레이시아의 다문화를 검색하다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단어가 나온다. 부미푸트라(Bumiputera). 원래 말레이 원주민, 즉 말레이인을 지칭하는 단어지만 말레이계 우대 정책인 부미푸트라 정책(Bumiputera Policy)을 약칭해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부미푸트라 정책은 말라이계에게 교육에서 취업, 주택에 이르는 다양한 부문에서 우대를 해주는 정책이다. 당연히 중국계, 인도계 등 여타 민족들은 이 혜택에서 배제된다. 교육을 예로 든다면 말레이계에게 대학 입시에서 가산점을 주고, 쿼터를 훨씬 더 많이 배정하며 장학금 혜택도 더 많이 준다. 말레이계에게는 우대 정책이지만 중국계나 인도계 등 여타 민족들에게는 명백한 차별 정책이다.

 

 

 

부미푸트라 정책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부미푸트라가 나온 배경을 보면 말레이시아가 결코 화목한 다문화 국가가 아님을 명확히 알 수 있다. 부미푸트라가 나온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19695월 수도인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에서 일어난 폭동이다. 이 폭동은 당시 말레이시아 전체 인구의 55%을 차지하는 말레이계가 인구의 30%에 불과하면서 말레이시아 경제의 대부분을 장악하는 중국계에 반발해서 일어났다. 이 폭동으로 수백 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자 분노한 말레이계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말레이시아 정부가 1971년 내 놓은 정책이 바로 부미푸트라 정책이다.

 

이는 지금 페낭의 겉모습과는 달리 말레이시아가 다민족이 평화롭게 공존해온 사회가 아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특히 말레이계와 중국계 간에 깊은 불신과 갈등이 있음을 말해 준다.

 

일시적인 정책으로 시작했던 부미푸트라 정책은 50년이 지난 현재까지 존재한다. 여전히 같은 말레이시아 국민이지만 어느 민족은 우대를 받고 어느 민족은 차별을 받는다. 민족 간 차별과 갈등이 현재에도 깊이 잠재되어 있는 사회가 말레이시아다.

 

 

 

 

카페와 식당에서 본 젊은이들이 이 나라의 주역이 될 때에는 지금의 모습처럼 다정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길 기대해본다. 민족과 인종을 떠나 진정한 하나의 말레이시아인으로서.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서 다정하게 웃고 떠들고 있는 처자들을 보다가 이런 무거운 주제까지 꺼내 든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