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낭의 골목길 산책 1 - 근대의 풍경 속으로
군산이나 대구의 구시가지 골목길을 좋아한다.
두 도시의 구시가지 골목길을 걷다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한국 근대사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을 받는다. 두 도시의 구시가지 골목길에는 구한말부터 일제 식민지까지 한국 근대사의 풍경이 나름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군산에는 일본인의 적산 가옥까지 보존되어 있다.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온 천지를 밀어서 직사각형 아파트로 깔아버리고, 수백 년 역사를 가진 종로의 뒷골목 피맛골까지 깨끗이(?) 정비하여 푸드코트를 만들어버린 서울의 단순무식에 비하면 군산과 대구는 그나마 한국 근대사의 향취가 남아 있는 도시들이다.
예전에 베트남 하롱 베이(Halong Bay)의 선상에서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던 한 미국인 여대생을 만났다. 한국의 부산에서부터 대구, 대전을 거쳐 서울까지 종주를 했다는 말에 한국에서 무엇이 가장 인상 깊었냐고 물었다. 나의 질문에 그녀는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대답했다.
“아파트(apartments)!” 그리고 조용히 한 마디를 더 붙였다.
“너무 많아(too many)!”
한참 후의 이야기지만 아제르바이잔의 바쿠(Baku)에서도 한국을 한 달 정도 여행했다는 러시아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그 친구도 역시 간결한 한 마디를 던졌다.
“현대적 빌딩들(modern buildings)!”
러시아 친구는 대답과 함께 바로 되물었다.
“한국은 천 년이 넘는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로 아는데 왜 도시에 한국적 특색이 없지? 그냥 미국의 시카고나 뉴욕 같아. 미국을 너무 따라 해서 그런가?”
뭐라고 한참 설명을 한 것은 같은데 정확히 뭐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원래 답변이 궁색할수록 말이 많아지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 누군가 나에게 페낭 조지타운(Gorge Town)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간결하게 대답할 수 있다,
“골목길!”
페낭(Penang 또는 피낭(Pinang))의 멋은 단연 조지타운 구시가지의 골목길 산책이다. 페낭의 주도(州都) 조지타운(Gorge Town)의 구시가지 골목길에는 다문화의 향취, 근대의 풍경 그리고 골목길 예술(Street Art)이 있다. 조지타운은 구시가지 전체가 근현대 역사의 숨결 속에 있다. 아마 이것이 유네스코가 조지타운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조지타운의 골목길을 걸을까?
그냥 정처 없이 걸으면 된다. 손에 냉커피 한 잔 들고 걷다가, 지치면 맘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 지친 발과 더위를 식히고, 그리고 또 걸으면 된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걸어도 좋다.
구시가지 골목길 하나하나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여기에 더해 서양과 동양의 과거와 현재가 서로 얽혀있다.
걷다보면 어느 덧 어느 게 서양이고 동양인지, 어느 게 근대고 현대인지 조차 헷갈려 진다. 하나의 골목에 서양과 동양,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물 하나하나에도 세월의 흐름이 서려 있다.
무심코 들어간 상점이나 카페 건물이 족히 100년의 역사를 가진 건물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건물의 모양이나 색깔도 가지가지다. 일반적인 살색부터 하늘색, 분홍색, 노랑색 때론 하나의 건물에 마치 무지개처럼 색깔을 칠한 건물들까지 골목길마다 제각각 자신의 색깔을 뽐내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맘에 드는 색깔은 세월이 만든 무채색의 회색빛이다.
부두 창고, 공장 건물, 상거 건물 등의 외벽에 바른, 지금은 세월에 얼룩진 회색의 싸구려 시멘트 또는 석회 벽면이 오히려 예스러운 멋을 더한다. 마치 곰팡이가 핀 모습인데도 말이다.
때론 무채색의 회벽 또는 시멘트벽과 빨간 벽돌의 벽면은 함께 어울려 거리 예술가들의 멋진 도화지가 된다.
문 하나 창문 하나에도 세월과 문화 그리고 해학이 어려있다.
조지타운의 골목길 산책은 동남아 근대사 산책이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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