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낭(Penang)에서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로
어제 저녁 늦게 천둥번개가 치면서 요란한 비가 쏟아졌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화창하다.
오늘은 동남아의 마지막 목적지,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로 간다. 이번 세계여행에서 동남아 여행의 마감과 새로운 여행의 준비를 위한 곳이기도 하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남의 가족 여행에는 끼는 것이 아니다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설 휴가로 가족들과 여행 오는 대학 동기와 만나기로 했다. 내가 세계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이미 말레이시아 여행 예약을 한 친구가 이왕이면 내 여정에 쿠알라룸푸르를 넣어서 보자고 했다. 여행 여정에 넣으면서도 과연 시간을 맞추어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시간을 맞춰 떠난다. 친구 가족은 내일 쿠알라룸푸르에 들어온다.
어제 쿠알라룸푸르의 숙소를 예약했다. 친구 숙소 근처로 잡았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다. 저녁에 만나서 술 한 잔 하기 좋은 곳. 친구 숙소가 시내 중심가인지라 호스텔 가격도 세다. 지금까지 묵었던 도미토리 숙소 중 가장 비싸다. 친구는 숙소가 에어비앤비(AirBnB)로 얻은 아파트라 자기 숙소에서 묵어도 된다 하지만 어디 그럴 수 있나.
혼자 여행하다 보면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서 잠시 일행이 되곤 한다. 이들 중 일행이 되기 어려운 부류가 있는데 그 중의 제일이 가족 여행이다. 좀 나쁘게 말하면 가장 배타적인 여행 그룹이 가족이다. 사실 가족은 그 자체가 완벽한 그룹인지라 가족끼리 볶아대느라 정신이 없다.
부부가 모두 친한 친구이거나 부인을 예전부터 잘 알고 있는 사이라면 조금 괜찮긴 하지만 그래도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대개 가족은 여행의 일정과 편의가 아이들 중심으로 돌아가서 끼어 봐야 별반 재미도 없는데, 아이들이 어릴수록 더욱 심해서 베이비시터 되기 딱 좋다.
아침 일찍 움직인다
쿠알라룸푸르는 가깝기도 하고, 차편도 많아서 굳이 예약 같은 것은 안 했다. 차로 4시간 정도의 거리이기는 하지만 하도 오래 버스를 타곤 해서 3, 4 시간 정도는 그냥 이웃 마을 마실가는 기분이다.
그래도 아침 일찍 움직인다. 새로운 곳을 갈 때는 일찍 움직이는 것이 최선이다. 가는 길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낯선 곳에 되도록 일찍 도착하는 것이 여러 모로 좋기 때문이다.
오전 8시 20분에 숙소를 나선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걸어서 페리 선착장까지 간다. 배낭 메고 30분 정도는 걸어 줘야지. 섬에서 나갈 때는 표를 사는 곳이 없다. 내릴 때라도 요금을 내는 곳이 있나 싶었는데 없다. 들어올 때 산 표가 왕복인가 보다.
육지에서 페낭 섬까지가 한 2km 정도 된다고 하는데 배로는 15분 정도 걸린다. 아침이라 그런지 페리는 한가하다. 그런데 들어오는 배를 보니 그렇지도 않다. 오전에는 섬에 들어오는 사람이 많고, 오후에는 섬에서 나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관광객들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출퇴근 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어제 숙소 사장에게 쿠알라룸푸르에 가는 차편을 물으니 기차를 추천했다. 버스도 나쁘지는 않지만 쿠알라룸푸르 주변부터 차가 많이 막히기 때문에 때론 서너 시간 더 걸릴 수도 있단다.
기차역은 페리를 타는 종합터미널 바로 옆 건물이다. 바로 기차역에 가서 기차표를 확인하니 아쉽게도 저녁 마지막 기차만 자리가 있다. 역시 기차는 어디나 빨리 마감한다. 버스와 달리 쿠알라룸푸르까지 가는 기차편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도 페리 터미널과 버스 터미널이 같은 건물이다. 게다가 페낭에서보다 이곳에 쿠알라룸푸르 가는 버스가 더 자주 있다고 한다. 배낭 짊어지고 왔다갔다만 했다. 이래서 일찍 움직이는 것이 좋다. 그나마 이곳은 버스 터미널이 가까우니 다행이지만 만일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기차역과 버스 터미널 왔다 갔다 하는 시간만 해도 엄청 까먹었을 터이다.
10시 표를 끊었지만 버스는 10시 30분에 출발한다. 늦게 타는 승객이 있는 것으로 봐서 예약한 승객을 기다린 모양이다. 버스는 새 버스로 보인다. 외국에서는 처음 타 보는, 한국과 같은 3열의 우등버스다. 요금도 30링킷으로 대략 9천원 꼴이니 비싸지는 않다.
중간에 휴게소를 들린다. 처음으로 정상적인 휴게소를 만난다. 잘 정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화장실도 깨끗하고 무엇보다도 무료다. 정보통신 인프라만 뺀다면 말레이시아도 꽤 괜찮은 나라다.
터미널을 잘못 내렸다.
오후 2시 30분에 쿠알라룸푸르의 터미널에 내린다.
그런데 목적했던 KL 센트럴 터미널이 아니다. 버스가 떠난 다음에야 알았다.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다른 터미널에도 들리나 보다. 외곽에 있는 터미널이다. 어쩐지 안 내리고 꾸물대는 사람들이 있더라니. 마지막까지 구글 지도를 확인했어야 했는데 쿠알라룸푸르 시내까지 들어온 것을 보고 더 이상 확인을 안 했다.
구글 지도로 확인하니 예약한 숙소까지는 한 7.5km 정도 떨어져 있다. 먼 것은 아닌데 문제는 이곳에서 가는 대중교통 편이 없다. 물어보니 택시 아니면 그랩을 이용해야 한단다. 버스를 타려면 이곳에서 한 3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고. 세상에 대중교통 하나 없는 곳에 버스 터미널이라니. 원래 내리려고 했던 KL 터미널은 지하철과 연결되는 곳이라 그곳에서 지하철 몇 정거장만 가면 바로 숙소다.
버스를 타려고 해도 3km는 걸어가야 한다니 그냥 숙소까지 7.5km를 걸어가기로 한다.
10분 정도 걸었으려나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심상치 않다. 7km 정도 걷는 것은 문제가 아니나 배낭을 맨 채로 비 맞는 것이 문제다. 열대 지방의 스콜은 장난이 아니다. 삽시간에 흠뻑 젖는다. 더욱이 작은 배낭에는 노트북, 카메라, 외장하드 등 전자 제품도 많다.
택시는 싫고 그랩(Grab)을 부르기로 한다. 작년에 베트남에서 한 달 정도 그랩을 이용하고 이번 여행에서는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다. 유심을 바꾸었기 때문에 다시 가입을 해야 한다. 어플은 깔려 있기에 다시 가입을 하고 그랩을 부른다. 26링킷이 나온다. 페낭에서 쿠알라룸푸르까지의 버스비가 30링킷이니 잠깐의 실수로 비슷한 돈을 날린다.
이래저래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호스텔에 도착한다.
아침 8시 반에 숙소를 나섰는데도 버터워스(Butterworth)에서 기차역 갔다 허탕치고, 쿠알라룸푸르에서는 터미널을 잘못 내리면서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이래서 이동할 때는 일찍 움직여야 한다.
가격이 비싸서 그런지 호스텔의 시설은 좋다. 지금까지 호스텔 중 최고다. 특히 도미토리 방의 침대와 침대 공간이 무척이나 넓다. 공용 공간에는 커피 머신도 있다. 식사 시간에는 무료고 그 이후에는 1링킷을 넣어달라고 한다. 샤워실이나 화장실 등 여타 부대시설도 잘 갖추어 있다. 호스텔 계의 오성급이라 할 만하다.
하루 숙박비는 57.5링킷이다. 부킹닷컴에서 할인받은 가격이다. 한화로 거의 17,000원 꼴이니 태국 람빵(Lampang)에서 묵었던 호텔의 개인실 가격이다. 하지만 조식이 나오고 공용 공간이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작업할 때 카페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 보인다. 커피머신의 커피도 괜찮아서 이래저래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 있으니 마냥 비싸다고 할 수는 없다.
말레이시아에서 와이파이가 되고 에어컨 나오는 카페의 커피 한 잔 가격은 대략 10링킷 전후다.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지금까지의 여행 정리와 새로운 여행지의 준비에 그 의미가 있기 때문에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실내 작업이 많다.
쿠알라룸푸르의 랜드마크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Petronas Twin Tower
짐만 대충 정리해 놓고 바로 나간다.
하루 종일 먹은 게 없기 때문에 무언가 배를 채워야 한다. 지도를 보니 쿠알라룸푸르의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Petronas Twin Tower)가 근처다. 일단 거기를 목적지로 삼아서 가는 길에 밥 먹을 만한 곳이 있으면 들어가 먹기로 한다.
걷다 보니 어느덧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다.
숙소에서 정말이지 한 15분 거리다. 트윈 타워까지는 마땅한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고급 레스토랑은 보이지만 저렴한 로컬 식당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중심가는 중심가인가 보다.
트윈 타워에는 두 건물을 연결하는 하단에 수리아(Sulia) 쇼핑몰이 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파빌리온(Pavilion) 쇼핑몰과 쌍벽을 이루는 고급 쇼핑몰이다. 그곳에서 푸드 코트를 찾기로 한다. 일단 건물 안에 들어서니 시원해서 좋다. 쇼핑몰을 천천히 구경하면서 3층에 올라서니 푸드 코트가 바로 보인다. 철판볶음을 14링킷에 먹었는데 조금 비싼 것 같지만 양과 질을 고려한다면 페낭 쇼핑몰의 푸드 코트와 가격은 비슷해 보인다.
지하에 대형 마트가 있다. 간단한 먹거리를 사가려고 들어가 보는데 고급 쇼핑몰의 일본계 마트인지라 가격대가 높다. 돌아오는 길에도 찾아보는데 편의점은 있으니 마트는 없다. 중심가는 중심가다.
오자마자 쿠알라룸푸르 최고의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도 다녀오고 할 건 다한 기분이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