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실과 다(多)인실의 함수(函數)
이곳에서도 2인 1실이란다!!
학생 기숙사들 사이로 우리가 묵을 기숙사 건물이 보인다. 대충 10층 정도는 되어 보인다. 옥상 간판에 호텔이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건물 안에 들어서니 황량하다 못해 황폐하다. 적어도 몇 년간은 사용한 흔적이 없어 보인다. 역시나 이 건물에 우리만 묵는단다. 우리가 묵는 3층만 보수와 청소를 한 모양이다. 이곳에서 2주 동안 묵으면서 현지 교육을 받는다.
방 배정을 기다리는데 2인 1실이란다.
하노이에서도 6주간 2인 1실을 사용했다. 하노이에서 PMC 관계자에게 이곳에서는 되도록 1인실을 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건의를 했는데도 전혀 반영이 안 된 모양이다. 가타부타 말이라도 해주지 원. 하노이에서의 교육은 코이카 베트남 사무소에서 담당했다면 이곳에서는 PMC라는, 코이카로부터 사업 관리를 위탁받은 대행회사에서 맡는다. 일종의 아웃소싱(outsourcing)인 셈이다. 코이카 현지 사무소의 인력이 부족해서 일 수도 있고, 코이카 본부 차원에서 주요 사업을 제외한 사업 부문을 전반적인 위탁 체계로 가기 위해서 일 수도 있다.
하노이에 있으면서 기숙사를 2인 1실로 사용했다.
며칠도 아니고 6주간을 2인 1실로 사용하다보니 많이 불편하고 피곤했다. 특히 수컷들은 영역의 동물인지라 이렇게 붙여두면 갈등도 생기게 마련이고,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서 서로 조심하다보면 피곤함도 더해진다. 여자들이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다. 여자들이 관계의 동물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인간이다. 남자보다는 좀 덜 할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는 마찬가지일 게다.
원래 하노이 현지교육 기간에도 1인 1실이 원칙이었다고 한다.
베트남 하노이 사무소 말로는 원래 하노이 교육 기간 중에 1인 1실을 제공한다고 한다. 다만 이번에는 프로젝트팀 인원이 많은 관계로 대학 기숙사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2인 1실로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부임지의 교육에서는 후에(Hue) 팀이 빠진 관계로 당연히 1인 1실이지 않을까 기대했던 게다. 더욱이 이렇게 건물 전체가 우리밖에 없는 곳이라면 방이 없다는 이유도 댈 수가 없다. 하노이 현지교육 기간에도 1인 1실이 원칙이었다면 분명 이곳에서도 1인 1실이 가능한 비용이 책정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봉사하러 간 사람들이 무슨 1인 1실이냐고?
놀러간 것도 아니고 세금 가지고 자원봉사를 간 사람들이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돈 조금 아끼려다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
배낭여행을 할 때면 난 주로 도미토리(다인실)에서 잔다.
많은 친구들이 자유롭게 여행 다니는 나를 부러워하지만 막상 내 여행 이야기를 듣다보면 손사래를 친다. 한, 두 달도 아니고 1, 2년을 주로 도미토리에서 자면서 다닌다는 대목에서는 ‘그게 고행이지 여행이냐!’고까지 한다. 숱한 배낭여행, 특히 최근 2년 가까운 기간 동안 세계여행을 하면서 적게는 4인실에서 많게는 20~30인실의 도미토리 숙소에서도 숱하게 잠을 자왔지만 이게 또 다르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들과 방을 공유하는 게 심리적으로 훨씬 편하다.
기본적인 규칙만 지키면 다른 사람들을 특별히 배려하거나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덜 피곤하다는 말이지 피곤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한 방에서 다른 사람들과 오래 생활하다보면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사실 그 ‘기본적인 규칙’이라는 것도 만만한 게 아니다. 그래서 도미토리 생활을 하다가도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거나 숙박비가 저렴한 곳에서는 선제적으로 1인실에서 숙박을 하곤 한다. 그렇게 다만 며칠이라도 1인실이 가져다주는 해방감과 편안함을 느끼다보면 다시 생기가 돋는다. 그러면 다시 다인실의 재미를 즐기려 한다.
여행이 이럴 진데 일은 어떨까?
한동안 일을 같이 해야 하는 동료로, 연령이나 경험 역시 천차만별인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생활하다보면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을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한 친구나 동료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로 쌩 깔 수 있는 남도 아니고 참 애매한 관계라 더욱 그렇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해야한다는 생각에 아무래도 더 조심하게 되고 그만큼 신경이 많이 쓰일 수밖에 없다. 또 상대방의 생활 리듬에 맞추다 보면 자신의 생활 리듬이 깨지기도 한다. 그렇게 6주간을 지내다 보면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피로감이 누적되고 때론 없던 갈등도 생긴다.
더욱이 생활환경이 전혀 다른 외국이라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외국에 나오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우리 몸은 긴장을 한다. 그걸 여실히 보여주는 게 변비다. 내 경우도 한동안은 외국에 나오면 처음 며칠간은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변비라는 단어를 모르고 사는 사람임에도 그렇다. 여자들의 경우 외국에 나오면 변비 때문에 엄청 고생을 하는 것을 많이 본다. 이게 몸이 긴장하고 있다는 징후다. 즉, 낯선 환경에 들어서면 우리 몸은 무의식적으로 긴장하면서 생리조절을 한다. 긴장은 곧 스트레스다. 짧은 기간이라면 큰 무리를 주지 않지만 이게 장기간 지속되면 당연히 몸에 문제가 생긴다. 여기에 2인 1실이 주는 부담과 신경은 스트레스를 더할 수 있다.
6주간의 하노이 생활에서 대부분의 단원들이 크건 작건 병원 신세를 졌다.
나이와 상관이 없었다.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저 6주간 어학연수와 현지교육을 받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코이카 하노이 사무소가 올해 병원비로 책정한 예산을 진즉 소진할 정도로 환자가 많이 발생했다. 여기에는 분명 2인 1실의 영향도 크지 않았을까 싶다. 난 병원 신세를 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녔던 나 역시 2인 1실에 피곤함을 느꼈을 정도니 해외생활에 경험이 적은 여타 단원들은 말할 것도 없을 터다.
코이카에도 자원봉사자는 현지에 부임하면 혼자만의 숙소를 구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만일 같은 부임지로 2명의 자원봉사자가 간다하더라도 2명이 같이 거주할 수 없다. 그런데 이 규정이 꽤 엄격하다. 정말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예외가 잘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런 것일까? 2명이 같이 거주하면 거주비도 줄고 안전도 높일 수 있다. 거주비는 코이카에서 직접 현지인 집주인에게 송금하게 때문에 2명이 같이 거주하면 확실히 세금을 아낄 수 있다. 그럼에도 개별적으로 주거지를 구할 것을 규정하는 이유가 무얼까? 코이카에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다년간의 해외생활 경험으로 보건데 이게 맞다. 같이 생활하다보면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고 이게 봉사활동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코이카의 숱한 경험 속에서 마련한 규정이 아닐까 싶다.
사실 여행이라고 다를 건 없다.
혹 여행을 친한 사람들과 해본 적이 있는가? 친구가 되었건 가족이 되었건. 그렇다면 다들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친한 사람들이라도 같이 붙어 있으면 싸움이 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난 형하고도 배낭여행을 해봤다. 그때마다 어찌나 싸웠던지.
지금은 친한 사람들과 장기간 여행을 하게 되면 꼭 해 두는 말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같이 여행을 한다고 해서 온전히 24시간 붙어 다녀야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마다 관심이 다르고 스타일이 다르고, 생활리듬도 다르다. 누군 아침 일찍부터, 누군 느지막이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정적인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동적인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서로 다른 여행 스타일을 포기하고 누군가에게 맞추다보면 자연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 특별한 일정이 아니라면 서로의 여행 스타일을 존중해준다. 즉 혼자만의 시간을 서로 많이 갖는다.
세계여행을 하다보면 부부 세계여행자들을 자주 본다. 이제 막 시작하는 부부 여행자들이라면 꼭 붙어 다니지만 여행 경륜이 좀 있다 싶으면 많이들 서로 떨어져서 다닌다. 예전에 이집트 다합(Dahab)에서의 일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 부부 여행객은 한동안 부부인지도 몰랐다. 물론 사이가 안 좋은 부부가 아니었다. 이들도 처음에는 붙어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아내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산책하고, 풍경 좋은 곳에서 커피와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정적인 여행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반면에 남편은 늦잠을 자지만 레저나 스포츠 등의 동적인 것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부부라곤 하지만 서로 다른 여행 스타일이 하루 종일 붙어 다니려고 하니 싸움도 많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점차 서로의 여행 스타일을 존중해서 중요한 전체 일정은 같이 하지만 일상의 소소한 시간들은 자기 스타일에 맞춰 따로 하기로 했단다. 나중엔 아예 그걸 즐기게 되어서 다른 여행객들하고 있으면 부부가 같이 있더라도 부부 티를 안 낸다고 한다. 그게 다른 여행객들과 친해지는 데도 좋더란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서로 감정이 나빠진다 싶으면 잠시 떨어져서 각자만의 여행을 하라는 것이다. 아예 며칠이고 따로 지내며 자신만의 여행을 하는 게다. 당연히 숙소도 일정도 서로 달라진다. 나중에 다시 만날 시간과 장소만 정해둔다. 그렇게 잠시나마 따로 여행을 하다가 다시 만나면 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같은 논리에서 2인 1실도 마찬가지다.
세금으로 놀고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돈 조금 아끼려다 활동 시작도 전에 갈등만 생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코이카 하노이 사무소의 기록적인 병원비 지출이 보여 주었듯이 알게 모르게 피로가 누적되어 건강에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누누이 말하지만 역마살 때문에 오랜 기간 떠돌이 생활을 해온 내가 피곤할 정도면 다른 일반 단원들이 가질 스트레스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게다.
그렇다고 1인실만 좋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인실은 다인실이 주는 재미와 효과가 있다. 사람을 사귀고 교류하는데 다인실 만한 공간도 없다. 문제는 하나만 고집하는 데에 있다. 두 가지 방식을 적절히 잘 섞어서 활용해야 단원들의 건강과 일의 효율을 모두 높일 수 있다. 함께 하는 시간과 개인만의 시간을 적절히 잘 배치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걸 잘 하는 게 경험이고 능력이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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