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안성벽(西安城牆) 위를 걸으며..., 바닷길을 버린 중국
시안성벽(西安城牆)을 걷는다.
예전에 왔을 때는 보기만 했지 걸어보지는 못했다. 표를 살 때 다른 중국인이 물어보는 것을 들어보니 성 둘레가 13.7km로 한 바퀴 걸어서 도는데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숙소에서 가까운 남문에서 성을 오른다.
밑에서 보는 성의 규모도 대단한데 위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더욱 웅장하다.



성벽의 너비도 장난 아니다.
대충 폭이 15m 정도 됨직한데 넉넉히 4차선 도로를 만들 수 있다.


시안의 원래 이름은 장안(長安)이다.
베이징의 천안문 앞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 길이 바로 장안가(長安街)다. 여기서 딴 이름이리라. 서울 광화문 앞 세종로가 그렇듯 중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기원전 11세기부터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하니 3천 년이 넘는 고도(古都)다. 서주(西周), 진(秦), 전한(前漢)의 수도였다가 후한(後漢) 때 수도가 뤄양(洛陽)으로 이전하면서 잠시 쇠락했다. 이후 수(隋: 581~618)와 당(唐: 618~907)의 수도가 되면서 다시 번성한다.

장안성의 위치가 모두 같았던 것은 아니다.
서주, 진, 한 그리고 수와 당 모두 장한성의 위치는 달랐다. 지금 밟고 있는 시안성벽은 당나라 때 지은 장안황성(長安皇城)을 기초로, 14세기 중엽 명나라 때 재건했다가 그나마도 1983년부터 20년에 걸쳐 복원한 것이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 보니까 산시성(陝西省)에는 산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시안에 들어서면 주변에 산이 보이질 않는다. 드넓은 관중평원(關中平原) 한가운데 장안을 세웠다. 성 위에 올라가니 주변이 평지라 시야가 확 트인다. 30~40m 너비의 해자가 성벽을 둘러싼다. 성이 평원에 있으니 해자의 중요성은 매우 높았으리라. 거대하고 웅장한 성이다. 만리장성을 만든 나라의 성답다.


성벽 위를 터벅터벅 걷는다.
음악도 들으면서 되도록 천천히 걷는다.
하지만 성벽 위를 걷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지루하다. 그만큼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기도 좋다.


햇살 하나 피할 곳 없는 성벽 위는 초겨울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작렬하는 햇살이 따갑다.
한여름에 이곳을 걷는다면 거의 초죽음이 될지도 모른다. 시안이 베이징(北京)이나 칭다오(青岛)보다 더 추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내륙 깊숙이 있는 곳이라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시안에 도착하니 이곳이 가장 따뜻하다. 바람도 거의 불지 않는다. 예전에 베이징에서 만났던 산시성 친구가 시안이나 베이징이나 기후는 비슷하다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내륙의 시안이라고 해서 더 추울 것이라는 나의 생각이 잘못이었다.
지금 한국을 덮치고 있는 중국 발 황사바람이 여기라고 피해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심한 것은 아닌데 조금만 멀리 바라봐도 뿌옇다.

성벽 위를 걸으면서 3천 년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다.
현대에 새로 복원된 것이라 옛 것에 묻어 있을 법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몇 군데 성문은 명, 청 시대의 것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는 하는데 굳이 찾아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시안성벽을 기준으로 성 안은 구시가지이고 성 밖은 신시가지다.
성벽 안의 구시가지는 발전이 정체되어 있다.
반면에 성벽 밖의 신시가지는 쭉쭉 솟은 고층빌딩들이 성벽을 둘러싸고 있다.





덕분에 성벽 위를 걷는 것이 마치 빌딩 가로수 길을 걷는 것 같다. 빌딩들이 높다 보니 마치 성 안을 굽어보면서 위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시간은 흘러서 옛 중심은 주변이 되고 옛 주변은 중심이 되었다
당나라의 수도로써 최전성기를 누렸던 시안은 이후 역사의 뒤안길에 남았다.
그럼에도 시안은 오랫동안 전 세계의 물품이 모여드는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다. 서역과의 교역 길, 실크로드(Silk Road)의 시작과 끝이 바로 고대 중국의 수도였던 시안이다. 비단, 도자기 등 중국의 상품들이 여기에서 시작해 타클라마칸 사막(Takla Makan Desert)과 파미르 고원(Pamir Mountains)을 넘어서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거쳐 유럽에 전해졌고, 역으로 유럽과 중동의 물품들이 이곳 시안에 들어왔다.
넓은 해안을 가지고 있는 중국이지만 예로부터 중국은 바닷길을 개척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닷길을 막고 육로 위주로 외교와 무역을 해왔다. 유럽 국가들이 바닷길을 통해 중국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무역과 경제의 중심지가 동부 해안가의 도시들로 이동했다. 이로 인해 시안은 점차 그 경제적 의미를 상실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진작 바닷길을 개척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말은 시안이 진작 그 경제적, 군사적 중요성을 상실했어야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이 1492년의 일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유럽이 나머지 세계와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유럽이 본격적으로 바닷길을 개척하기 시작한 15, 16세기에만 하더라도 중국의 항해나 선박 기술은 유럽을 압도했다.
명나라의 환관이자 장수였던 정화(鄭和)는 황제 영락제의 명령에 따라 1405년에서 1433년까지 7차례 걸쳐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대항해를 한다. 7차례의 대항해 동안 정화의 함대는 동남아시아, 인도,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아프리카까지 닿았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이 1492년이고, 포르투갈의 항해가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인도 항로를 개척한 것이 1497년이니 유럽의 대항해보다 90년 가까이를 앞섰다.
선단의 규모를 보면 더욱 놀랍다.
1405년 첫 원정 당시 정화의 함대는 함선 62척, 작은 배 200여 척에 2만 7,800명의 선원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전장이 137m에 폭이 56m에 이르는 대형 선박도 있었다고 한다. 이 선박의 규모는 배수량 8천 톤급에 해당한다고 한다. 90여년 후에 인도 항로를 개척한 바스쿠 다 가마의 함대가 120톤급 3척에 승무원 170명, 콜럼버스의 함대가 250톤급 3척에 승무원 88명이였으니 정화의 함대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정화의 대항해로 중국은 동남아시아는 물론 중동과 아프리카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의 항로를 개척하고 교역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화의 사후 명과 청은 조공무역을 제외한 바닷길 무역을 원천적으로 막는 해금정책을 부활했다.
민간인들의 사적인 출항조차도 금지했다. 해금정책의 직접적인 원인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나 기본적으로 여기에는 자국 시장에 안주했던 중국이 굳이 스스로 외국과의 교역하고, 바닷길을 개척할 필요도 의지도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육로 교통과 교역의 중심인 시안은 상업적 중요성을 유지했지만 중국은 새로운 발전의 기반을 상실했다. 중국은 스스로 고립을 자초했고, 유럽은 바다를 제 맘대로 헤집으며 15세기 이래 유럽 중심의 세계사를 썼다.
중국이 바닷길을 막지 않고 해상무역을 장려했다면 중국과 세계의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중국이 먼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수도 있고, 유럽이 진출하기 전에 인도, 서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도 영향력을 확대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유럽의 부흥은 없었거나 있었다 하더라도 한참 후의 일이었을지 모른다. 시안은 진작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로서의 기능이 약화되었어야 했다.

지금 중국은 21세기 가장 중요한 바다에서 또 다시 해금정책을 취하고 있다.
21세기 정보와 문화의 바다에서 중국은 스스로 높은 장벽을 쌓으면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이 바다에서 민간인들의 사적 교류조차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21세기 들어 중국이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육상과 해상의 신(新) 실크로드 계획이다. 그러나 육상과 해상의 물리적 지리는 21세기 이전의 과거의 길이다.
반면에 세계는 새로운 바다를 향해 치열한 대항해를 시작했다.
정화 이후의 중국이 오버랩 된다. 시진핑(習近平)의 중국은 새로운 도약을 기약하며 ‘중국의 꿈(中國夢)’을 이야기하지만 아무래도 그 도약은 천정에 부딪쳐 날개가 부러질 것 같다. 시안성벽에서 바라보는 뿌연 하늘처럼 중국의 미래도 뿌옇다.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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