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ica 이야기 19: 좀 더 구체적이었으면 합니다....., 민망한 프로젝트 회의
Koica 이야기 19: 좀 더 구체적이었으면 합니다....., 민망한 프로젝트 회의 (20230510-1)
좀 더 구체적이었으면 합니다....., 민망한 프로젝트 회의 민망함은 나만의 느낌일까? 오후에 대학 담당자들과의 프로젝트 회의가 있었다. 우리가 제안한 프로젝트 기획안에 대한 회의다. 연
beyondtheboundaries.tistory.com
모르면 용감하다......!,
용감한(?) 프로젝트 기획서
프로젝트 기획서를 보질 않았다.
프로젝트 제안서는 이미 지난주 말에 대학 측에 보냈었다. 보내기 전에 담당했던 단원 쌤이 모든 단원들에게 확인을 부탁하고, 혹 수정사항이 있다면 알려달라고 했지만 볼 생각을 아예 안 했다.
사실 볼 필요도 없었다.
이 분야 선수라도 회의 달랑 한번 하고 하루만에 기획서를 써 낼 수는 없다. 원래 같이 일을 하던 팀이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일을 담당해야 할 팀원들의 수준이나 능력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각각의 팀원들이 그리고 팀 전체가 어떤 프로그램을 소화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파악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쓴다고 하더라도 제안서를 제대로 마무리하려면 꼬박 2주 가까이는 걸렸을 터다. 당연히 담당 쌤들과의 회의도 수시로 했을 것이고.
대학 측은 계속 우리의 프로젝트 기획안을 요청했다. 이에 4월 말까지 말미를 달라고 했다. 제안서 제출 시기를 묻는 대학 측에게 4월 말이라고 답한 것 나였다. 너무 준비가 안 된 모습만 보인 관계로 4월 말의 제안서는 제대로 들어가야만 했었다. 2주 정도면 얼추 어느 정도 수준의 제안서는 나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대략적인 초안을 잡아서 커뮤니티 담당 쌤에게 넘겼다.
2주 간의 PMC 교육이 끝나자마자 대략적인 초안을 잡아서 커뮤니티 담당 단원 쌤에게 넘겼다. 커뮤니티 쌤이 초안 작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불가피한 집안일로 1주 정도 한국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부분은 빼고 전체적인 초안을 잡아서 넘겨주었다. 커뮤니티 쌤이 커뮤니티 관련 내용을 넣어주면 내가 전체적으로 재조합하고 다듬어서 최종 기획서를 대학 측에 넘길 계획이었다.
그런데 커뮤니티 담당 쌤으로부터 기획서가 넘어오질 않았다.
회의를 하자는 이야기도 없었다. 아무래도 커뮤니티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들이 잡히지 않는 듯했다. 그럴수록 더 회의를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재촉을 해볼까도 했다가 이내 접었다. 나름 고민하고 있을 터인데 스트레스만 줄 것 같아서다. 기다려 보기로 했다.
마침 두 명의 단원 쌤들이 대학 팀에 재배치되었다.
원래 고등학교 팀에 배치되었던 두 분의 여자 단원 쌤이다. 대학 기숙사에 추가로 생활하기로 했던 바로 그 쌤들이다. 두 쌤 다 30대에 어느 정도 사회 경험도 있으니 커뮤니티를 담당하는, 아직 대학생인, 막내 쌤에게는 천군마마가 되리라 싶었다. 더욱이 한 분은 기존 우리 대학 팀에 없었던 홍보 담당이다. 이 두 쌤들을 위해서 대학팀의 프로젝트 진행 상황과 내용에 대한 프레젠테이션까지 했다. 아울러 커뮤니티 쌤을 도와서 홍보와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부탁했다. 여자 쌤들이기도 하고, 나이 차가 별로 나지 않는 쌤들이라 같이 일하는 게 편하리라 생각했다.
연휴 며칠 전에야 회의를 했다.
회의도 늦었지만 그나마도 회의의 대부분이 지극히 지엽적인 내용들로 채워졌다. 회의라기보다는 사랑방모임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회의를 끝내려는 쌤들을 붙잡고 프로젝트를 구체화시키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사항을 급하게 쏟아냈다. 말을 하면서 표정을 살피니 무슨 말인지 의미를 모르는 것 같았다. 쌤들에게 이런 부탁을 하곤 있었지만 이미 나는 4월 말의 제안서 제출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대학 측에 양해를 구할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기획서 작성을 끝마쳤다고 확인을 부탁한다는 카톡이 왔다.
수정 사항이 없으면 영어로 번역해서 바로 대학 측에 보내겠다는 내용과 함께. 회의를 하자는 연락도 아니고 기획서를 다 썼단다!!
‘모르면 용감하다!’
이런 기획서를 하루만에 보냈다는 것은 세 가지를 의미한다.
프로 중에 프로거나, 반대로 프로젝트 사업이나 제안서 작성에 대한 경험 즉 감이 전혀 없거나, 아예 일 하기가 싫거나. 첫째와 셋째는 아닌 듯하니 두 번째가 분명하다. 아직 대학생인 막내 쌤이야 그러려니 했지만, 회의 때도 보니 두 단원 쌤들도 프로젝트 사업이나 기획서 작성에 대한 감은 없어 보였다.
지난주 회의 말에 급하게 부탁한 말 중에 하나가 “대충이나마 세부 예산 내역을 뽑을 수 있을 정도로 잡아 주세요”였다. 제안서나 기획서를 써본 사람이라면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금방 안다. 사업이 구체화되어야, 즉 디테일이 잡혀야 세부 예산을 뽑을 수 있다. 세부 예산을 뽑을 수 있을 정도로 잡아 달라는 말은 초안에서 쳐낼 것은 쳐내면서 보다 구체화시켜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프로그램이 늘었다!
초안이 그럴듯해 보였을지도 모른다. 제안서 작업 경험이 없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초안을 넘길 때 파워포인트 작업을 해서 기본적인 제안서의 틀을 모두 갖추어 보냈다. 사업의 배경과 의의, 사업 목적과 목표, 전략과 전술, 주요 사업 내용, 사업 세부 내용, 일정표 등. 예산서만 제외하고는 모두 갖추었다.
‘악마와 천사 모두 디테일에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초안은 초안이다. 제안서나 기획서의 핵심은 역시 ‘디테일(detail)’에 있다. 아무리 형식을 그럴 듯하게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안서나 기획서를 써본 경험이 있다면 이게 초안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기본적인 형식에 여러 프로그램들을 대충 나열식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테일’을 잡기 위해서는 먼저 초안에 제시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 중에서 쳐낼 것은 쳐내고 핵심적인 프로그램들만 남기는 단순화 작업을 한다. 이후 프로그램의 세부 내용들을 잡게 되는데, 이렇게 단순화시키고 나면 세부 내용 즉, 디테일이 보인다. 하지만 쌤들의 생각은 내 초안에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더해서 제안서의 프로그램을 보다 풍성하게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왜 제안서에 대한 코멘트를 안 주셨어요?”
연휴 기간 하노이에서 놀다 온 우리 막내 쌤이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뭐, 알아서 잘 했겠지요.”라고 에둘러 답했다. 제안서를 지난주에 봤다면 수정사항을 말했을 수도 있었다. 그때 제안서를 보내면서 우리 막내 쌤이 카톡에 이렇게 썼었다. “냉철한 평가 부탁드립니다!”라고. 그 메시지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나왔었다. “역시 모르면 용감하군!” 냉철한 평가를 했다면 아마도 우리 막내 쌤은 황금연휴에 하노이 가는 것을 포기했거나, 노트북을 들고 하노이에 갔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해서라도 나아질 수 있는 문제라면 그렇게 했겠지만, 그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놀 땐 맘 편하게 놀아야 한다. 같은 의미에서 제안서를 안 보는 게 연휴 기간 동안에 내 정신 건강에도 좋고.
“모르면 용감한” 이유에는 “아는 만큼 최선을 다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회의가 끝난 지금 다른 쌤들의 표정은 밝다.
무언가 큰 걸 마무리했다는 표정들이다. 아마도 “좀 더 구체적이었으면 싶습니다.”는 말을 “지금도 좋은데 좀 더 구체화시키면 더 좋을 듯합니다.”로 해석했을 수도 있다. 풀 죽은 모습보다는 해맑은 모습이 좋다. 우리 쌤들이 해맑은 이유는 아는 만큼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어쩌지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다음 글에 이어서......
Koica 이야기 21: 우리의 상황이 그렇게 녹녹치가 않다......, 나의 포지셔닝
Koica 이야기 21: 우리의 상황이 그렇게 녹녹치가 않다......, 나의 포지셔닝 (20230510-3)
우리의 상황이 그렇게 녹녹치가 않다 이전 글에서 용감한(?) 기획서의 탄생 과정을 읊었다. 기획서의 책임을 다른 단원 쌤들의 탓으로 돌리려고 하는 것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beyondtheboundaries.tistory.com
'살아보기(해외) > Thai Nguyen in Vietnam(베트남 타이응우옌)' 카테고리의 다른 글
Koica 이야기 22: 특성 하나, 커뮤니티는 일반 봉사와 접근 방법이 확연히 다르다 (20230510-4) (0) | 2024.05.23 |
---|---|
Koica 이야기 21: 우리의 상황이 그렇게 녹녹치가 않다......, 나의 포지셔닝 (20230510-3) (0) | 2024.05.22 |
Koica 이야기 19: 좀 더 구체적이었으면 합니다....., 민망한 프로젝트 회의 (20230510-1) (0) | 2024.05.18 |
Koica 이야기 18: 한국어 수업 스케치 (20230504) (0) | 2024.05.17 |
타이응우옌 살이 6: 바퀴벌레와의 전쟁 in Vietnam (20230502) (0) | 2024.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