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토리 숙소의 조건
숙소를 옮긴다.
지금 있는 숙소가 나쁜 것은 아니다. 시설이나 직원 친절도, 그리고 위치 등은 바꾼 숙소보다 훨씬 좋다. 아니, 압도적으로 좋다.
다만 두 가지 점에서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하나는 가격이 좀 비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용공간이 너무 협소하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공용공간의 협소다.
2주 가까이 지냈던 아르메니아 예레반의 숙소도 가격이 싼 숙소는 아니었다. 하지만 널찍한 공용공간과 도미토리 방이 좋았다. 답답하지도 않고 숙소에서 무언가 다른 일을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 반면에 트빌리시의 첫 숙소는 너무 좁은 방과 공용공간 때문에 숙소에서는 잠 자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기가 어려웠다. 답답하기도 하고, 마치 시설 좋은 닭장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좀 넓은 공간으로 옮기기로 한 것이다. 이왕이면 가격도 싼 곳으로. 시설은 좀 떨어지고 지리적 위치는 중심에서 더 멀지만 방이나 공용공간이 훨씬 넓어서 답답하지도 않고 숙소에서 글작업 등을 하기에도 훨씬 좋았다.
이번에 여행을 오래 하면서 내가 숙소, 특히 도미토리 숙소를 선택함에 있어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전에는 남들처럼 숙소의 시설, 청결, 위치, 가격 등을 여러모로 따졌다면, 지금은 이전에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공용공간을 먼저 따져보게 되었다.
특히, 장기체류를 할 때에는 무엇보다도 공용공간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야 숙소에서 쉬든, 책을 보든, 작업을 하든, 멍들 때리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도미토리 방에서는 다른 일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공용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면 그 숙소는 잠만 자는 공간에 불과하다. 이런 숙소는 하루, 이틀 정도 짧게 머무르다 가는 곳이지 결코 오래 있을 수 있는 숙소는 아니다.
이번에 옮긴 숙소도 그렇게 공용공간과 방이 넒은 것은 아니지만 이전 숙소보다는 확실히 넓다. 여기에 가격은 반값 정도고.
숙소에 가니 한국인 여자 여행객 한 분이 계셨다. 벌써 1년 반 정도 여행을 하고 계시다고 하는데 부엌에서 음식을 요리하고 계셨다. 덕분에 식사와 커피도 얻어먹고 수다도 한참을 털었다. 점심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나가지도 않고 간만에 한국말로 수다를 떤 것 같다.
이분은 건강 상의 문제도 있어서 여행 중에 거의 외식을 하지 않고 직접 해서 드신다고 한다. 이분에게서 전자레인지에서 밥하는 법도 배웠다. 예전에 호주에 있을 때 전자레인지로 라면은 끓여 먹었었는데 밥도 할 수 있는지는 오늘 처음 알았다. 술과 담배도 안하고 밥도 거의 해먹다 보니 유럽을 한참 여행했음에도 1년 반 여행 경비가 일 평균 2만원대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주로 나가는 돈은 숙소와 교통비라고.
배울 건 배워야지. 개인적으로 식사를 해먹는 것은 거의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전자레인지로 밥을 할 수 있다면 간단한 밥 정도는 해서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경비 절감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고. 일단, 그 분이 가지고 다니는 전자레인지용 밥 짓는 그릇을 구해야겠다. 그런 그릇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 닫고 열 수 있는 구멍이 있는 전자레인지용 플라스틱 그릇이면 된다. 가지고 다니기도 편하고 일반 용기를 사용하는 것보다 밥하기도 훨씬 수월하단다.
간만에 숙소에서 수다를 떨면서 하루를 보냈다. 한국어로.
by 경계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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