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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조지아(Georgia)

D+125, 조지아 트빌리시 5: 트빌리시에서 흥미를 잃다(20190319)

경계넘기 2019. 4. 7. 14:58

다채로운 트빌리시 전경

 

트빌리시에서 흥미를 잃다

 

 

숙소 호스트가 어제 내 방에 들어와서 한 말이 있다.

 

트빌리시 오기 전에 어디에 있었나요?”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넘어 왔습니다. 생각지 않게 아르메니아도 이것저것 볼 게 많더라고요

그렇죠. 근데...... 조지아는 아르메니아보다 뭐든 훨씬 더 풍부(rich)합니다

 

조지아가 문화든 예술든 역사든 아르메니아보다 조금 더 풍부하다는 말은 사실로 보인다. 트빌리시에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많은 면에서, 조지아가 앞섰다기보다는, 호스트의 표현대로 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것 같다.

 

트빌리시만 하더라도 훨씬 더 사람도 많고, 규모도 크고 다양하다. 그만큼 여행자에게 볼거리도 더 많다는 것일 것이다.

 

 

트빌리시 올드시티(old city) 전경

 

그런데 내가 지금 트빌리시에 대해서 그다지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주요한 원인이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그리고 조지아 3국이 많이 비슷하다는 것. 차이도 분명 있지만 외국인에게 보이는 코카서스 3국은 차이보다는 유사점이 많아 보인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를 거쳐서 조지아에 들어왔기에 그 흥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조지아를 먼저 여행했다면 분명 달랐을 것이다.

 

외국 여행객이 한국, 중국,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도 비슷하겠구나 싶어진다.

 

우린 분명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제3국 사람들이 한국, 중국, 일본을 여행하면서 세 나라 사이의 큰 차이를 발견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한중일 3국 간의 차이보다는 그들과의 차이가 훨씬 더 크기 때문이리라.

 

지금 내 심정이 딱 그렇다.

 

분명 머리로는 코카서스 3국이 다른 나라이지만, 사람들도 구분하기 어렵고 언어도 구분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딱히 문화도 많이 다른 것 같지도 않다. 특히, 사회적 제도나 방식은 정말 유사한데 다 같이 구소련 연방에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나마 확 구분되는 것이 있다면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국가라 모스크가 많고,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는 기독교 국가라 성당이 많다는 것 정도. 사실 이것도 아제르바이잔이 가장 개방적인 이슬람국가인지라 히잡을 쓰는 여성도 거의 없고 술도 자유로히 마시기 때문에 모스크와 성당 외에는 딱히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한다.  

 

또 하나가 있다면 트빌리시의 크고 다양함이 나에게 대도시의 번잡함으로 느껴지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번잡한 도시 중 하나인 서울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나에게 대도시의 번잡함과 복잡함은 피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다.

 

여하튼 지금 난 트빌리시에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다. 아직 가보지 않은, 트빌리시의 추천 여행지는 많이 남았는데 발걸음이 향하질 않는다. 그냥 좀 쉬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어제와 그제 나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셨던 한국인 여행자분은 오늘 아침에 예레반으로 갔다. 원래 계획이 없었다가 내가 예레반 이야기를 했더니만 가신단다. 마침 숙소를 옮길 생각이었다는데 그냥 예레반 갔다가 다시 트빌리시로 온다고.

 

여행자분을 보내고 나도 슬슬 숙소를 나섰지만 딱히 가고 싶은 곳이 없다. 그래도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트빌리시의 거리를 걷다가 조지아 국립박물관(Georgian National Museum)을 가보기로 한다.

 

트빌리시에 조금은 익숙해졌나보다 거리의 소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조지아 국립박물관은 아제르바이잔이나 아르메니아보다 볼거리도 더 많고 더 잘 정리되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여기서도 그리 흥미가 생기질 않는다. 특히, 조지아의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데 내가 종교에 별로 관심이 없는지라 더 그런지도 모른다. 내가 아르메니아의 역사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르메니아의 종교가 아니라 그들이 가졌던 비극적 역사에 있었다. 너무도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인류의 비극.

 

 

 

조지아의 박물관은 말 그대로 조지아 기독교의 역사였다.

문화예술도 다분히 종교적이라 이미 성당과 성당예술에 질린 나에게는 흥미만 더욱 반감시키고 있다.

 

 

 

박물관을 나와서 보니 맞은편에 있는 조지아 의사당 앞에 눈에 익은 풍경이 보인다. 천막 농성 중인가 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우리 경험으론 저건 분명 농성현장이다.

 

 

 

박물관을 나와서 박물관 근처에 있다는 까르프를 간다. 사실은 전자레인지용 밥짓기 용기를 찾아보려고 갔는데 적당한 것이 없다. 그래도 컵으로라도 해보려고 쌀과 구운 치킨을 좀 사서 돌아왔다.

 

마침 숙소 부엌에 사람이 없길래 머그컵을 이용해서 전자레인지로 밥을 해보았다. 좀 설익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그래도 전용그릇이 없으니 많이 불편하다. 치킨도 좀 데펴서 간만에 밥에다 치킨을 먹었다. 이렇게 하니 급한 대로 밥을 해먹을 수가 있다.

 

인도 이후로는 밥 구경하기가 힘들어진다. 일부러 한국이나 일본, 중국 식당을 찾아가지 않는 한 밥이 나오는 음식을 찾기가 어렵다. 한 동안 매일 빵으로 때우다 보니 그냥 맨밥만 먹어도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예전 워킹홀러데이 비자로 호주에 갔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도 전자레인지로 라면 끊이는 법을 알고 나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