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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을 밀어낸 태국 커피, 마약에 밀리는 콜롬비아 커피

경계넘기 2021. 6. 3. 16:47

 

 

마약을 밀어낸 태국 커피, 마약에 밀리는 콜롬비아 커피

 

 

커피와 마약, 마약과 커피.

천사와 타락천사 같다고 할까.

 

커피나무 그리고 마약의 주 원료가 되는 양귀비와 코카나무는 서식지가 같다.

커피나무가 잘 자라는 곳에서 양귀비와 코카나무도 잘 자라고,

양귀비와 코카나무가 잘 자라는 곳에서 커피나무도 잘 자란다.

 

커피에 적합한 기후와 토양을 가진 지역은 적도를 중심으로 대략 북위 25, 남위 25도 지역이다. 이를 커피존(Coffee Zone) 또는 커피벨트(Coffee Belt)라고 부른다. 커피는 강수량 1500~2000mm에 평균기온 20도 안팎에서 잘 자란다. 평균기온이 20도라고 하더라도 5도 이하로 내려가거나 30도 이상 올라가지 않아야 한다.

 

 

커피벨트 (출처: 위키백과)

 

커피벨트 지역에서도 고산지대에서 고급 품종인 아라비카가 나온다.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나 케냐, 남미의 브라질, 콜롬비아, 중남미의 파나마, 과테말라, 자메이카, 코스타리카, 아시아의 인도네시아, 태국 등 커피 주산지가 모두 이런 지역들이다.

 

이들 커피 주산지들이 아편과 히로뽕의 재료인 양귀비나 코카인의 재료인 코카나무가 잘 자라는 지역들이기도 있다. 남미의 북서부 안데스 지역, 중남미의 국가들 그리고 아시아의 태국·라오스·미얀마의 3국 접경지역 등이 커피와 마약이 중첩하는 지역들이다.

 

 

마약을 밀어낸 태국 커피

 

 

 

태국이 커피로도 유명하다는 사실에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을 게다. 여타 유명한 커피 산지들에 비해 역사가 짧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아주 좋은 품질의 아라비카 커피(Arabica Coffee)를 생산한다.

 

그 중에 하나가 도이창 커피(Doi Chaang Coffee).

 

태국의 유명한 커피 브랜드로 태국의 최북단 치앙라이(Chiang Rai)의 도이창(Doi Chaang)이라는 고산지대에서 생산되는 커피다. 태국 왕실에서 직접 관리하며 세계 커피 품평회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으면서 유명해졌다.

 

 

 

치앙라이의 도이창 지역이 그 유명한 골든 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이다.

 

골든 트라이앵글은 태국, 미얀마, 라오스 3국이 국경을 맞대면서 한때 전 세계 아편의 70% 이상을 생산했던, 메콩강 유역의 황금삼각지대를 말한다. 치앙라이 주()가 골든 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에 속하는 태국 측 지역이다.

 

 

골든 트라이앵글

 

골든 트라이앵글에서는 예부터 산간 지역의 소수 민족들이 소규모로 아편을 재배해왔었다. 소규모로 생산되던 아편이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 배경은 아이러니하게도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군에 밀려 쫓겨난 국민당군 잔당에 의해서다. 중국 윈난성(雲南省)에 주둔하던 국민당군이 이곳으로 밀려와 아편을 그들의 활동 자금원으로 삼은 것이다.

 

여기에는 또 냉전의 복잡한 국제정치적 배경이 얽힌다.

 

우선 미국이 중국 공산세력의 동남아시아 확산을 우려하여 이 지역에 잔류하던 국민당군을 방패막이로 삼기 위해서 아편 생산을 눈감아 주었다. 미얀마는 소수 민족 반군과 버마공산당의 토벌에 지역 군벌이 참여하는 대가로 역시 아편 생산을 눈감아 주었다. 미얀마의 소수 민족 반군은 반군대로 미얀마 정부군에 대응하기 위한 자금원으로 아편을 생산했다. 태국 역시 역사적으로 앙숙인 미얀마를 견제하고 공산세력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국경의 소수 민족들을 일종의 완충지대로 삼았는데, 이를 위해서 국경 주변 소수 민족들의 아편 생산을 눈감아 주었다.

 

각국의 복잡한 셈법이 얽히면서 골든 트라이앵글이 세계 최대의 마약 생산지가 되었다.

 

이곳에서 마약왕 쿤사(Khun Sa)의 활동을 빼놓을 수 없다.

 

쿤사는 국민당군을 밀어내고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이곳을 세계 최대의 마약 생산지로 만들어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중국계 아버지와 미얀마 소수 민족인 샨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쿤사는 전 세계에 마약을 공급하면서 한때 2만여 명의 병력에 미사일까지 보유했다고 한다.

 

 

쿤사 (출처: nusadaily)

 

냉전이 끝나고 이곳에도 변화가 일었다.

그 시작이 태국이다.

 

1980년대 들어 경제성장이 높아지고 공산국가인 미얀마와 라오스와의 관계도 좋아지면서 태국은 치앙라이 국경 지역의 양귀비 생산을 대대적으로 단속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간지역 소수 민족들의 주 수입원이었던 양귀비를 대체할 새로운 수입원을 개발하지 못하면 단속은 실효를 얻지 못할 것이었다.

 

고민 끝에 태국 왕실이 찾은 것이 바로 커피 재배다. 태국 왕실이 국책사업으로 산간 고지의 소수 민족들에게 양귀비 대신 커피를 재배하도록 장려하면서 태국의 커피 생산이 시작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도이창 커피다. 1983년 푸미폰(Phumiphon) 국왕이 도이창이라는 산골 마을의 소수 민족 아카(Ahka)족에게 양귀비 대신 커피를 재배하도록 권고해서 나온 커피다. 2006년과 2008년 유럽커피전문협회(SCAE)의 품평회에서 높은 점수를 얻으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물론 높은 농가 수입을 올리고 있다.

 

세계 최대 마약 산지에서 마약을 밀어낸 진짜 입지전적인 커피다.

 

 

 

 

마약에 밀리는 콜롬비아 커피

 

 

 

콜롬비아는 브라질, 베트남에 이어 세계 3위의 커피 생산국. 고급 커피인 아라비카 커피만을 고려한다면 브라질에 이어 세계 2위로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8~9%를 차지한다.

 

콜롬비아의 커피 역사는 오래 되었다.

 

커피가 처음 콜롬비아에 들어온 것은 18세기 말이다. 19세기에 들어서는 상업적으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세한 커피 농장들에 의한 커피 재배는 이렇다 할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고 한다.

 

콜롬비아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27년 콜롬비아커피생산자연합회(FNC)를 설립하면서부터이다. FNC는 소규모 커피 농장들에 대한 지원과 함께 커피의 질을 높이고 마케팅 강화에 주력하면서 콜롬비아 커피를 고급 커피의 대명사로 만들어냈다.

 

 

브라질 커피의 상징, 후안 발레스(Juan Valdez)
후안 발데스 카페 (출처: Forbes)

 

 

커피와 마약이 경쟁하는 콜롬비아

 

 

콜롬비아는 세계적인 마약 생산국으로도 악명이 높다.

세계 최대의 코카인 생산국으로 전 세계 코카인의 70%를 생산한다.

 

코카인은 코카나무 잎에서 추출한다. 코카나무는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등 남아메리카 북서부 안데스 산맥에서 주로 자생하고 재배도 많이 한다. 예로부터 고산병이나 두통 완화 등에 효과가 좋아서 지금도 이들 지역의 원주민들은 차로 마시거나 껌처럼 씹는다.

 

예전 페루의 쿠스코(Cuzco)에서 마추픽추(Machu Picchu)에 가기 위해 잉카 트레일(Inca trail, 잉카의 길)을 따라 트레킹을 했다. 그때 볼리비아 원주민 출신인 가이드가 검은 비닐 주머니에 담아 가지고 다니며 항상 씹던 것이 코카나무 잎이었다. 고산증에 좋다고 나에게도 권해서 씹어본 적도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콜롬비아에 마약 카르텔들이 생기고 미국을 그들의 코카인 시장으로 개척하면서 콜롬비아에서의 코카인 생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본격적으로 커피나무가 뽑히고 코카나무가 심어지기 시작했다.

 

아시아의 골든 트라이앵글에 쿤사가 있다면,

남미의 콜롬비아에는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scobar)가 있다.

 

에스코바르는 세계 최대 마약 카르텔의 보스. 콜롬비아 제2의 도시 메데진(메데인, Medellín)을 근거지로 1976년 메데인 카르텔(Medellín Cartel)를 세우고 미국 내 마피아들과 결탁해서 어마어마한 양의 코카인을 미국에 수출하면서 급성장했다. 그가 이끌었던 마약 조직은 한때 미국 내 코카인 유통량의 80%, 전 세계 코카인 유통량의 35%를 장악했었다. 경제지 포브스에 의해 1980년대 후반에는 세계 7위의 부자로 추정되기도 했다.

 

에스코바르의 잔혹함은 플라타 오 프로모(Plata o Plomo)’ (뇌물)이냐 납(총알)’이냐는 그의 모토에서 잘 드러난다. 뇌물로 포섭되지 않는 인사들에 대해서는 잔혹한 보복을 일삼았다. 콜롬비아의 대통령 후보만 3명을 죽였으니 기타 정치인들과 검사, 판사, 경찰 등은 말해 뭐할까. 여기에 언론사나 정부 건물에 폭탄 테러를 일으켜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대통령 후보를 죽이기 위해 여객기를 폭파시키기도 했다.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가 그린 에스코바르의 죽음

 

그의 고향이자 본거지인 메데진은 커피로도 유명한 도시다.

 

그가 생존할 당시에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위험한 도시였지만 1993년 미국과 콜롬비아 특수부대에 의해 그가 사살된 이후 지금은 콜롬비아 최고의 관광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범죄의 온상이었던 메데진의 거대한 달동네조차 지금은 그라피티(graffiti)와 가난한 예술인들의 마을이 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

 

적어도 메데진에서는 커피가 코카인을 밀어낸 것처럼 보였다.

 

 

 

 

최근 콜롬비아에서 다시 코카인 생산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농부들이 다시 커피나무를 밀어내고 코카나무를 심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마약 퇴치를 위해서 콜롬비아에 100억 달러 이상의 원조를 제공하면서 마약퇴치 프로그램을 추진해왔다. 그럼에도 코카인 생산이 늘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되는 것이 원두 가격의 하락이다.

 

국제커피기구(ICO)의 조사에 의하면 20141파운드(0.45kg) 150.66센트였던 생두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다 2019(2월 기준)년에는 100.67센트로 떨어졌다. 콜롬비아 마일드만을 보면 2014190.16센트였던 생두 가격이 2019(2월 기준)년에는 127.93센트로 떨어졌다. 양쪽 다 33% 하락을 보이고 있다.

 

커피 가격이 하락하는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커피 생산 지역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란다. 특히 베트남, 태국, 중국 등의 아시아 지역에서 생산이 늘어나면서 원두 가격의 하락이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가격 구조의 왜곡이다.

 

미국 카페들에서 팔리는 5000원짜리 콜롬비아 커피에서 생두의 가격은 34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커피 한 잔의 1%도 안 되는 몫이 콜롬비아 농부에게 돌아간다. 이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스타벅스에서 파는 콜롬비아 원두 한 봉지(250g)는 1만 6000원. 그런데 콜롬비아 생두 250g 값은 799원이니까, 이건 아예 1%가 아니라 0.5% 수준이다(매일경제, 2019.3.5.).

 

 

이렇게 터무니없는 가격 구조가 생기는 이유는 커피 농장은 다수인 반면에 소수의 기업들이 전 세계 커피 유통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가져간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 현실이다.

 

커피 농부들이 돈을 훨씬 더 많이 버는 코카나무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하지만 커피나무와 코카나무의 주산지가 동일한 이상 이것이 콜롬비아만의 문제는 아니리라.

 

한쪽에서는 커피가 마약을 몰아내지만,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는 마약이 커피를 몰아내고 있다.

 

이렇듯 커피 한 잔에도 참 많은 것들이 담겨 있으니,

공정무역, 착한소비를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by 경계넘기.

 

 

D+057, 태국 치앙라이 3-1: 마약을 밀어낸 커피, 도이창 커피(Doi Chaang Coffee)

 

D+057, 태국 치앙라이 3-1: 마약을 밀어낸 커피, 도이창 커피(Doi Chaang Coffee) (20190110)

마약을 밀어낸 커피, 도이창 커피(Doi Chaang Coffee) 어제 봐두었던 도이창 카페(Doi Chaang Caffe)에 간다. 태국도 커피로 유명하다. 그 중에 하나가 도이창 커피(Doi Chaang Coffee). 태국의 유명한 커피 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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