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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아제르바이잔(Azerbaijan)

D+095, 아제르바이잔 바쿠 5: 헤이다르 알리예브 센터(Heydar Aliyev Center)(20190217)

경계넘기 2019. 11. 17. 16:39

 

 

헤이다르 알리예브 센터(Heydar Aliyev Center)

 

 

 

오늘도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언제부터 내린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제 저녁에도 내렸으니까. 비가 세차게 내리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하루 종일 후줄근하게 내린다. 뭐랄까 지루한 장마철 같다고 할까. 으스스한 것이 몸살감기 걸리기 딱 좋은 그런 날씨의 연속이다.

 

바쿠(Baku)에 와서 맑은 하늘을 본적이 없다. 아예 해를 본적이 없다. 바쿠 공항에 내린 첫날과 올드시티(old city)를 둘러본 둘째 날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흐린 날이 계속 되는 바쿠에 있으니 중국 쓰촨성의 청두(成都)가 생각난다. 하도 흐린 날이 많아서 어느 날 해라도 나오면 놀란 강아지가 짖어댄다는 곳, 해가 잘 나지 않는 덕에 우유빛깔 피부의 미녀가 많다는 곳이다.

 

겨울의 바쿠가 꼭 청두의 날씨와 비슷해 보인다. 이번에 청두를 여행할 때에는 하루 정도 기적과 같은 맑은 날을 봤었는데 바쿠에서는 어쩔지 모르겠다. 끝까지 바쿠의 수줍은 해가 구름 뒤에 숨어서 나올지 안 나올지 궁금하다.

 

정오가 한참 넘어서 밖을 보니 비가 그친 듯하다. 그래도 하늘에는 먹구름이 두껍게 껴서 언제 다시 비가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날이다. 두바이(Dubai)에서 우산 사길 잘했다. 그러고 보니 두바이에서도 비를 봤다.

 

오늘은 헤이다르 알리예브 센터를 갈 생각이다.

 

여기서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어제 간 불꽃 타워(Flame Tower)가 내 숙소 즉, 중심가에서 서쪽에 있다면 헤이다르 알리예브 센터는 중심가에서 동쪽에 있다. 그 중간에 28 May 기차역이 있다. 기차역 거쳐서 이번에는 바쿠의 동편을 구경하는 셈이다.

 

기차역에서는 다음 목적지인 조지아 트빌리시(Tbilisi) 기차 시간도 확인할 겸 들어가 봤다. 트빌리시 가는 기차가 매일 저녁 840분에 있다. 모스크바 가는 기차도 있다. 거의 50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나온다. 모스크바도 한 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저 기차를 타고.

 

 

 

기차역 나와서 센터 가는 길은 좀 칙칙한 길이다. 한국이나 외국이나 역 주변의 길은 이런가 보다.

 

가는 길에 청과 시장을 봤다. 큰 시장인데 일반 재래시장은 아니고 새로 지은 건물 안에 있는 시장이다. 가락동 시장 같은데 도매는 아니고 소매시장이다. 여기 흥미로운 것이 사과든 토마도든 하나하나 매우 정성스럽게 쌓아서 진열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비싼 마트나 백화점 과일 코너에서처럼 말이다. 손과 시간이 많이 들 것 같은데 대단한 정성이다. 그렇다고 비싸 보이지도 않는다. 숙소에서 가깝다면 가는 길에 이것저것 과일을 사가지고 가고 싶지만 숙소에서 꽤 먼 거리다.

 

 

 

기차역 윗길에서는 직선거리인지라 멀리 센터 건물이 보인다.

바쿠는 웬만한 볼거리가 걸을 수 있는 거리에 있어서 정말 좋다.

 

헤이다르 알리예브 센터는 회의나 세미나를 위한 컨벤션 센터로 알고 있다. 건물을 보고 있자면 서울 동대문에 있는 DDP 건물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동대문 DDP 건물을 디자인한 이라크 출신의 영국 건축가 자하 하다드(Zaha Hadid)가 만든 건물이기 때문이다.

 

 

 

이 건축가는 정말이지 곡선미를 좋아하는 사람 같다.

 

동대문 DDP도 헤이다르 얄리에브 센터도 그 곡선미가 독특하다. 비정형적인 선형으로 보는 위치에 따라 그 모습이 전혀 다르다.

 

 

 

특히, 건물의 외벽과 바닥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서 바닥인지 외벽인지 구분이 안 가게 만든 것은 아주 독특하다.

 

분명 바닥을 걷고 있는데 마치 외벽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들 뿐 아니라, 그 곡선이 마치 사막의 사구 같아서 사막 위를 걷는 느낌도 든다.

 

 

 

헤이다르 얄리에프 센터의 앞 광장 잔디밭 곳곳에는 달팽이 조각상들이 많이 있다. 사이사이 토끼도 있긴 하지만 달팽이가 압도적으로 많다. 처음에는 왜 그런가 했는데 달팽이와 건물을 같이 보고 있자니 그 건물의 곡선이 바로 달팽이의 그 곡선과 많이 닮았다. 위로 솟은 건물의 모양은 달팽이집과 그 모습이 유사하다.

 

아마 건축가가 달팽이에서 힌트를 얻지 않았나 싶다. 달팽이를 걸고 건물을 바라보면, 그 곡선의 흐림과 각도가 딱 겹친다.

 

 

 

우리네 옛 건축물의 지붕선과 처마선은 산의 능선을 닮았다. 옛 건물의 지붕을 앞에 두고 뒤에 있는 산을 바라보면 산의 능선과 처마선이 딱 겹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우리네 건축이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것인데 이 건축가의 곡선도 자연 속에서 나왔나 보다.

 

물론 내 개인의 주관적 감상이다. 난 건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뿐만 아니라 이 건물을 만든 건축가에 대해서는 더 모른다.

 

어찌 되었든 하나의 건축물을 예술작품이자 도시의 랜드마크로 만든 또 하나의 사례다.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트위 타워(Petronas Twin Tower),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처럼 말이다. 바쿠에는 이 건물과 함께 어제 간 불꽃타워(Flame Tower)도 있다.

 

근데 우리는 왜 이런 건물이 없지?

 

잠실에 만든 롯데타워도 그렇고, 동대문 DDP도 서울의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은 약한 것 같다. 우리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외국인들의 눈에는 훌륭하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 정말이지 그랬으면 싶으나 서울을 말할 때 특정 랜드마크를 말하는 외국인은 아직 본적이 없다.

 

건물이 언덕에 있어서 그런지 바람이 세다. 더욱 추울 수밖에 없다. 찬바람 맞으며 둘러봤더니 정신이 없다.

 

센터 건물 아래에 카페가 있다. 이 광장 유일한 카페로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다. 찬바람에 몸도 얼었고, 또 이런 곳에서 커피 한 잔 하는 것도 의미가 있어서 들어가 봤다. 가격이 생각보다 높지는 않다. 들어가 보니 카페라기보다는 레스토랑이다. 하지만 3시가 넘은 시각이라 식사시간은 아니니 그리 실례는 아닐 듯 보인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  창밖으로 헤이다르 얄리에프 센터가 바로 보인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고 있는데 하늘이 점점 짙어졌다. 다시 비라도 내릴 것 같은 마음에 서둘러 숙소 가는 길을 재촉했다.

 

하얀색 건물이라 맑은 날 보면 더욱 좋을 것 같은데 그럴 기회가 다시 올지는 모르겠다.

 

왔던 길을 다시 가는 것은 재미없다. 돌아갈 때에는 바닷가 쪽 길로 해서 숙소에 간다. 바다에 가까운 길은 훨씬 더 화려하고 잘 정비되어 있다. 아까 기차역 윗길이 서울역 주변길이라면 이쪽은 강남길이다. 신시가지 맛이 확 난다. 고급 레지던스도 있고.

 

 

 

바쿠 도심 걷는 일은 무척이나 재미있다.

 

서양과 동양이 공존한다. 동양적 특성이 확연히 드러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슬람권이다 보니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문화적 특성이 서양의 그것과 섞여 있다. 서양의 대리석 건물 사이로 보이는 이슬람 사원, 그리고 그 서양의 대리석 건물에도 이슬람 문양이 가미되어 있다. 문화와 예술을 조금 더 안다면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

 

 

 

중심가를 대충 다 둘러봤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곳이 숨어 있었다. 곳곳에 잘 가꿔진 정원 같은 공원이 있다. 오늘은 그 공원에서 기차놀이 같은 것을 하고 있는 이곳의 청년들을 봤다. 20여 명의 친구들인데 길게 손을 잡고 늘어서 있다가 맨 끝에서부터 다음 사람의 팔 사이로 넘어가기를 계속 한다. 그러다가 손을 놓치면 게임이 끝나는 모양이다. 참 건전하게 논다는 생각이 든다.

 

 

 

오면서 되네르(doner) 케밥을 알았다.

 

어느 블로그에서 길에서 자주 되네르를 사먹었다고 해서 그게 무언가 했는데 알고 보니 한국에서 흔히 케밥이라고 먹는 샌드위치 같은 것이었다. 되네르라고 쓰여 있는 곳이 있어서 하나 사서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가격도 2마나트로 저렴했다. 치킨은 2마나트, 소고기는 2.5마나트. 대체로 되네르 가격은 비슷하다. 2개면 충분히 한 끼 식사가 가능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되네르를 알고 나니 곳곳에 되네르 가게다. 길에 자그마한 창구를 만들어 놓고 음식을 파는 곳은 대부분 되네르 가게다. 이걸 모르고 배고플 때마다 비싼 레스토랑을 기웃거렸다. 슬슬 바쿠의 일상을 익혀 간다.

 

빗속의 바쿠지만 나름 재미있다. 하나하나 이 새로운 도시를 익혀가는 재미가 솔솔하다.

 

펍도 좀 가보고 싶은데 혼자라 좀 그렇다.

 

펍에 혼자 않아 술 마시는 것이 청승맞아서다. 밖이 보이는 펍이라면 창밖이나 보면서 술 한 잔 하겠는데 이슬람국가라 그런지 펍은 주로 지하에 있거나 지상이더라도 안이나 밖이 보이지 않도록 되어 있다. 메뉴판을 보면 생맥주도 저렴한 것 같은데 아쉽다. 아마 날씨가 흐리고 쌀쌀해서 더욱 안 갔을지도 모른다. 더운 날씨였다면 시원한 생맥주 생각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들어갔을 게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