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의 꿈, 보헤미안의 삶

세상의 모든 경계를 넘어 보다 자유로운 미래를 그린다

미얀마의 민주화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기원하며...

노가다 19

노가다 이야기 23: 마지막 출근(20221209)

마지막 출근 “오늘은 작업 안할 겁니다!” 아침 TBM(아침 조회)을 마치고 작업지휘자가 한 말이다. 어제 하다 만 작업이 있어서 오전에 그 작업을 마무리 지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하지 않겠단다. 그렇다면 남은 자재와 물품들을 정리해서 창고로 보내면 모든 일이 끝난다. 마지막 날까지 바쁘리라 생각했는데 다행이다. 오늘이 마지막 출근 날이다. 우리 팀 전체가 오늘을 마지막으로 청주 하이닉스에서 철수한다. 이 날이 올까 싶었는데 시간이 가긴 간다. 오전에 쉬엄쉬엄 샵장에서 자재와 물품을 화물 엘리베이터 앞으로 모아 놨다. 화물 엘리베이터 사용은 시간이 정해져 있는 관계로 오후에나 사용이 가능하단다. 그럼 그때까지 무얼 할까! 뭐하긴 짱 박혀서 그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거다. 5월 말부터 시작했던 노가다 일이 끝..

노가다 이야기 22: 내일이면 M15도 마지막이다(20221208)

내일이면 M15도 마지막이다 어둠이 깔린 퇴근 길 M15에서 보는 달이 휘황찬란하다. 달력을 보니 보름이다. 보름달. 어두운 저녁 하늘, 구름마저 모두 사라졌는지 눈이 부실 정도로 달이 크고 밝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반달이었는데 어느새 커다랗고 덩그런 보름달이 되었다. M15의 하루하루는 길었던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너무 빠르고 짧다. 내일이면 M15의 노가다 생활도 끝난다. 원래는 10월 말까지였는데 11월 말로 연장되더니, 2일이 연장되어 12월 2일까지였다가 아예 일주일이 더 연장되어 내일까지가 되었다. 다음주부터는 다른 일정이 있으니 다시 연장을 한다하더라도 나는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오늘이 M15 마침의 전야제다. 휘황찬란한 달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마냥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노가다 이야기 21: 눈 오는 날의 출근, 설중(雪中) 출근(20221206)

눈 오는 날의 출근 설중(雪中) 출근이라! 어두운 새벽 출근길 자전거 페달을 밟고 달리는데 뺨에 무언가가 날라 온다. 이 차가운 기운은....... ‘눈’이다. 어두워서 제대로 확인은 못하지만 눈이 내리고 있음이 틀림없다. 가로등이 밝혀진 길을 지나니 하얀 눈이 거리를 덮고 있음이 확연히 들어난다. 아직은 싸락눈. 하지만 점점 굵어지면서 금세 옷과 모자를 하얗게 덮는다. 동이 트니 눈은 더욱 굵어진다. M15가 가까워지니 거리가 밝아진다. 완연히 내리는 눈발이 보인다. 눈발은 점점 굵어진다. 이제 완연한 함박눈이다. 짬짬이 신호를 기다리는 중에 옷을 털어보지만 이내 눈이 다시 옷을 덮는다. 바람이 없어 가볍게 내리 앉는 눈이지만 자전거를 달리니 눈은 내 얼굴을 때린다. 눈이 안경을 덮기도 하지만 자전거 ..

노가다 이야기 20: 자가용 출근의 역설!(20221123)

자가용 출근의 역설! “주차위반 과태료 청구서가 5장이나 날라 왔어!!” 같이 일하는 유도원 친구가 입이 댓 발 나와서 하는 말이다. “주차위반 딱지가 5장이라니 무슨 말이야?” “2, 3주 전인가, 하이닉스 현장 주변에 불법주차 단속 강화한다는 공지 있었잖아요” “그랬지, 뭐 가끔 잊을 만 하면 나오는 정례행사잖아요” “근데 이번에는 주구장창 했나 보네요. 자그마치 5장이 날라 왔네요” 한 장도 아니고 5장이라니. 이번에는 작심하고 단속을 했나 보다. 10월 말에 있었던 이태원 참사 이후 공사 현장에 공지가 내려왔었다. 청주경찰서와 청주시가 합동으로 하이닉스 현장 주변의 불법주차 단속을 강화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이태원 참사에 불법주차도 일말의 책임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가끔 나오는 공지라 ..

노가다 이야기 19: 공수는 많을수록 좋은 것일까? (20221118)

공수는 많을수록 좋은 것일까? 다음주부터 연장이 사라진다! 11월도 중반에 들어서니 슬슬 작업자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에는 사람이 몰려서 제대로 그걸 느낄 수 없다지만 점심시간에 식당의 줄을 보면서 확연히 느낀다. M15 공정도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달 들어 토요일에 작업이 없어서 주말 이틀을 온전히 쉴 수 있었다. 그런데 다음주부터는 주중에도 아예 연장이 없어진단다. 노가다 은어로 ‘맨대가리’만 쳐야 한다. 일할 의욕이 좀 사라진다. 지난달은 일요일과 국경일 빼고는 모두 일을 했다. 주중에는 모두 연장이었고 토요일도 모두 일했다. 만근을 한 덕분에 공수는 최고를 찍었지만 솔직히 힘이 많이 들었다. 머리만 대면 10초만에 바로 잠이 들 정도. 쉬지 않고 일한 6개월간 ..

노가다 이야기 18: 건설 현장의 여성들(20221027)

건설 현장의 여성들 어느 때부터 원톱(one top)이 보이지 않는다. 원톱, 탑 오브 탑(top of top). 하이닉스 M15 최고의 미녀가 보이질 않는다. 나와 같은 유도원 일을 하던 처자였다.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M15 건설 현장뿐만 아니라 어딜 내놔도 손색없는 미모의 친구였다. 우리 팀이 M15 전반을 휘젓고 다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자신할 수 있다. 젊은 팀원들 모두 인정하는 바다. 그 친구가 유도원 일을 나보다 먼저 시작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빠지는 일 없이 나오던 친구였는데 9월인가 10월인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우리 팀이 M15 이곳저곳을 다니는 반면에 그 친구는 5층에서만 일을 했었다. 우리가 자주 옮겨 다녀서 못 본 줄 알았는데 그만 둔 모양이다. 숱한 남정네들의 가슴이 휑하..

노가다 이야기 17: 가장 출근하기 싫은 날은?...... 우중(雨中) 출근( 20221025)

가장 출근하기 싫은 날은?...... 우중(雨中) 출근 오늘 아침도 무척이나 쌀쌀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불어오는 찬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든다. 장갑을 낀 손가락도 시리다. 10월에 초겨울 날씨라니. 해마저 짧아져 아침길이 어두운 새벽길 같다. 땀을 내기 위해서 자전거 페달을 더 힘차게 밟는다. 이런 날은 방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 하고 싶다. 음악을 들으면서. 아니다. 이불 속에서 늘어지게 늦잠을 즐기고 싶다. 노가다가 출근이 반이라면 가장 출근하기 싫은 날은 언제일까?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부동의 1위가 있다. 비 오는 날의 출근 즉, 우중(雨中) 출근이다. 5개월 가까이 이 일을 하면서 겨울을 제외한 봄, 여름, 가을을 거쳤다. 지금까지의 경험만으로도 우중 출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태풍 치..

노가다 이야기 16: 노가다는 출근이 반이다(20221021)

노가다는 출근이 반이다. 노가다는 출근이 반이라더니....... 정말 그렇다. 일단 출근만 하면 어찌되었든 하루가 간다! 아침마다 머릿속은 전쟁이다. 오늘 하루만 제칠까? 날씨가 쌀쌀해지다보니 더해진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나오기가 죽기보다 싫다. 하지만 오늘 하루 제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루 쉬면 더 쉬고 싶고, 그러다 보면 다시 못 나갈 것 같다. 노가다에서 출근이 반이라고 하는 이유가 무얼까? 어느 직장이든 출근하기 싫은 것은 마찬가지일 터다. 그럼에도 특별히 노가다에서 출근이 반이라고 하는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몸으로 직접 겪어 보니 알 것 같다. 첫째는 육체노동이 주된 일이다 보니 아무래도 몸이 고되다. 유도원의 경우에도 하루 종일 걷고 서 있어야 하니 많이 피곤하다. 내..

노가다 이야기 15: A급 클린 룸, 완벽한 방진 복장을 입었다 (20221017)

A급 클린 룸, 완벽한 방진 복장을 입었다 방진화와 방진복이 끝인 줄 알았는데....... 방진화를 신은 건 제법 되었다. 들어온 지 몇 주 안 되어 방진화가 지급되었으니 네댓 달 너머 되었다. 방진화는 발바닥이 무척 아프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는 버틸 만 했다. 작업장이 자주 바뀌다 보니 신었다 안 신었다 해서 그나마 적응이 쉬었다. 물론 안전화보다는 바닥이 딱딱해서 오래 신고 있으면 발바닥이 아프다.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유도원에게는 더 치명적이다. 솔직히 방진화 신다 안전화 신으면 이건 뭐 운동화 신은 기분이다. 그러다 2주 전인가 방진복이 지급되었다. 6층과 7층이 B급 클린 룸이 되었다고 한다. B급 클린 룸이 되면 방진화에 방진복도 입어야 한단다. 지난주 말에야 클린 룸이 ..

노가다 이야기 14: 팀 추노라고 들어는 봤나? (20221005)

팀 추노라고 들어는 봤나? 바뀌어도 너무 자주 바뀐다. 뭐가? 사람 말이다. 일을 간 첫날의 이야기다. 팀에 새로운 사람들이 왔는데도 다른 작업자들에게 소개시켜 주는 그런 절차 따위는 없었다. 어떻게 내 소개를 할까 잠시나마 고민했던 내 자신이 쑥스러울 정도.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주거나 관심을 가져주는 이도 물론 없었다. 그저 데면데면 바라볼 뿐이다. 개가 지나가도 이러지 않을 듯싶었다. 먼저 인사를 건네야 마지못해 인사를 했다. 인사를 먼저 건네면 이 사람이 왜 이러나 하는 표정들이다. 참, 무안하고 난감했다. 꿋꿋하게 3~4일 정도 먼저 인사를 건네니 눈이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긴 했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데면데면 했다. 지금이야 웃고 장난치고 하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그런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