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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이야기 15: A급 클린 룸, 완벽한 방진 복장을 입었다 (20221017)

경계넘기 2022. 10. 30. 10:27

 

 

A급 클린 룸, 완벽한 방진 복장을 입었다

 

 

방진화와 방진복이 끝인 줄 알았는데.......

 

방진화를 신은 건 제법 되었다.

 

들어온 지 몇 주 안 되어 방진화가 지급되었으니 네댓 달 너머 되었다. 방진화는 발바닥이 무척 아프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는 버틸 만 했다. 작업장이 자주 바뀌다 보니 신었다 안 신었다 해서 그나마 적응이 쉬었다. 물론 안전화보다는 바닥이 딱딱해서 오래 신고 있으면 발바닥이 아프다.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유도원에게는 더 치명적이다. 솔직히 방진화 신다 안전화 신으면 이건 뭐 운동화 신은 기분이다.

 

그러다 2주 전인가 방진복이 지급되었다.

 

6층과 7층이 B급 클린 룸이 되었다고 한다. B급 클린 룸이 되면 방진화에 방진복도 입어야 한단다. 지난주 말에야 클린 룸이 된 6층에 들어가면서 처음 방진복을 입었다. 걱정을 했는데 날씨가 제법 선선해져서 그런지 방진복도 입을 만 했다. 방진복으로 갈아입는 게 시간 걸리고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지만. 유도원인 내 경우는 가만히 서 있다 보니 딱히 더운지 몰랐는데 작업자들, 특히 천장에서 작업하는 작업자들은 더워서 힘들어 한다. 어쨌든 그때까지만 해도 방진화에 방진복이 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지난주 말에 오늘부터 6, 7층의 클린 룸은 A급 클린 룸으로 격상되어 비닐로 만든 방진 또는 제전(制電) 가방만 허용되고 일반 가방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고지가 나왔다. 뭐 가방은 예상을 했다. 이미 많은 작업자들이 클린 룸용 방진 가방을 메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7층에 가기 위해 스막 룸(smock room)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스막 룸은 방진복을 갈아입는 탈의실을 말하는데, 이곳에 두건 같은 모자와 라텍스 장갑이 비치되어 있었다. 클린 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여러 명의 직원들이 모자와 장갑을 끼지 않은 사람들을 잡아내고 있었다.

 

방진 모자가 장난 아니다.

 

방진 모자는 정말 얼굴만 남겨두고 모든 곳을 감쌌다. 여기에 마스크를 쓰니 정말이지 눈만 남았다. 방진복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방진 모자를 입으니 순간 답답함이 훅 밀려왔다. 단순히 모자 하나 쓰는 게 아니었다. 몸 안의 열이 확 막히는 느낌이랄까. 여기에 안전모를 다시 쓰니 더욱 그렇다. 나만 그런가 싶어 물어보니 모든 사람들이 다들 그렇다고 한다. 더욱이 귀까지 덮으니 먹먹해서 더욱 답답해진다. 같이 일하는 유도원 여사님은 그렇지 않아도 아침 먹은 게 약간 체했는데 멀미기까지 생긴다고 한다. 이걸 입고 그냥 서 있는 것도 답답하고 더운데 작업자들은 어떻게 일할까 싶다.

 

일단 너무 덥다.

 

열기가 나갈 곳이 전혀 없다. 모든 열기가 머리로 몰리는데 두건으로 덮여 있으니 이게 방출되지 못하고 쌓이는 느낌이다. 모자와 옷의 목을 감싸는 부분을 가능한 최대한 헐렁하게 하고, 사람이 좀 떨어져 있는 곳에서는 마스크를 내려서 코로 숨을 쉬니 그나마 살만하다. 귀가 덮여 먹먹하니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는 느낌이다. 방진화의 발바닥도 더 아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옷 갈아입는 시간도 덩달아 늘어난다.

 

모자와 장갑 정도 추가되었는데 방진복만 입을 때보다 시간이 더 늘어날 게 뭐냐 싶겠지만 이게 그게 아니다. 방진복만 입었을 때는 그리 더운 줄 몰랐는데 모자와 장갑마저 끼니 덥고 답답해졌다. 그러다 보니 입고 있던 옷을 벗고 최대한 가벼운 옷차림으로 방진복을 입게 된다. 고덕의 삼성에서 일했던 한 작업자 말로는 A급 클린 룸에 들어갈 때 삼성은 위, 아래 가벼운 이너웨어를 준다고 한다. 즉 팬티만 남겨 놓고 모든 옷을 벗고 거기에 가벼운 이너웨어를 입은 다음에 방진복을 입는다는 것이다. 그래야 덜 덥다고. 하이닉스에서는 그런 게 지급되지는 않지만 최대한 위, 아래 가벼운 옷만 남기고 방진복을 입다보니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방진복을 벗을 때는 벗어놨던 옷을 다시 차려입어야 한다. 이래저래 시간이 엄청 늘어날 수밖에 없다.

 

쉬는 시간이 사라졌다.

 

쉬는 시간은 있다. 하지만 옷 갈아입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화장실 한 번, 담배 한 대 피러 가기도 만만치 않다. 크린 룸에 들어가는 경우는 옷 갈아입는 시간을 감아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을 더 주어야 하지만 그런 일은 없다. 우리 팀은 중간에 쉬는 시간을 없애고 대신 일을 빨리 끝내주겠다고 하지만 일은 일대로 시키고 쉬는 시간만 날리는 듯하다. 덕분에 오후 작업 시간에 작업자들은 연장까지 5~6시간을 화장실 한 번 못가고 꼼짝없이 일을 해야 한다. 이거 완전히 노동법과 인권법에 저촉되는 것 같은데........

 

방진복 입기 전에 도망친다는 말을 오늘에야 실감한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