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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이야기 14: 팀 추노라고 들어는 봤나? (20221005)

경계넘기 2022. 10. 25. 22:12

 

 

팀 추노라고 들어는 봤나?

 

 

바뀌어도 너무 자주 바뀐다.

 

뭐가?

사람 말이다.

 

일을 간 첫날의 이야기다. 팀에 새로운 사람들이 왔는데도 다른 작업자들에게 소개시켜 주는 그런 절차 따위는 없었다. 어떻게 내 소개를 할까 잠시나마 고민했던 내 자신이 쑥스러울 정도.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주거나 관심을 가져주는 이도 물론 없었다. 그저 데면데면 바라볼 뿐이다. 개가 지나가도 이러지 않을 듯싶었다.

 

먼저 인사를 건네야 마지못해 인사를 했다.

 

인사를 먼저 건네면 이 사람이 왜 이러나 하는 표정들이다. , 무안하고 난감했다. 꿋꿋하게 3~4일 정도 먼저 인사를 건네니 눈이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긴 했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데면데면 했다. 지금이야 웃고 장난치고 하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들이 들락거리니 새로운 사람들에게 관심 둘 여지나 필요가 점점 없어진다. 나의 의지하고 상관없다. 곧 그만둘지도 모르는데 이들에게 관심을 준다는 자체가 오히려 그네들에게 부담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데면데면 해질 수밖에 없다. 그게 나에게도 그네들에게도 편할 수 있다.

 

노가다 바닥을 조금이나마 안다면 추노라는 말을 들어 봤을 게다.

 

추노(推奴)는 조선시대에 도망간 노비를 잡아오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도망간 노비를 전문적으로 추적하는 사람을 추노꾼이라고 부른다. 장혁이 추노꾼으로 분했던, 2010년의 인기 드라마 추노로 친숙한 단어가 되었다. 이 추노라는 단어가 노가다 판에서도 사용된다. 다만 단어의 의미가 정반대다. 도망간 노비를 잡아오는 일이 아니라 노비가 몰래 도망치듯 아무 말 없이 갑자기 일을 그만 두고 사라지는 것을 일컬어 이곳 노가다 판에서는 추노라고 한다.

 

조금 일하다 사라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추노다.

 

이름 좀 기억하게 되었다 싶으면 그만 두는 경우도 많고, 나온 다음 날이나 심지어 당일 날 사라지는 사람들도 종종 나온다. 사전에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개 아무 연락 없이 나오지 않는다. 하루 이틀 연락 없이 나오지 않으면 그만 두었거니 생각한다. 물론 바로 알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숙소 생활을 할 경우 숙소의 짐이 사라졌다거나, 팀 카톡방에서 나가는 사람이 생기면 누군가가 그만 두었다는 사실을 바로 인지한다.

 

 

 

그런데 혹시 팀 추노라고 들어는 봤는가?

 

일을 시작한 지 두어 달 정도 되었을 7월의 어느 날이다. 아침 TBM(일종의 조회) 시간이 가까워졌을 무렵 팀장이 다른 팀의 팀원들을 봤냐고 물었다. 우리 포설 팀은 내가 속한 팀의 팀장을 총괄 팀장으로 해서 두 팀이 하나의 포설 팀을 이루고 있었다. 그 다른 하나의 팀원들을 봤냐는 것이다. 그제야 나도 그 팀의 팀원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오늘 아무도 못 봤다고 대답했다.

 

팀장이 급하게 이곳저곳 전화를 넣기 시작했다.

 

그러곤 허한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오늘 그 팀 전원이 그만 두었다고. 사전에 가타부타 말도 없이. TBM을 하고 있을 무렵에 그 팀은 숙소에서 늘어지게 지고 자고 있었단다. 어제 저녁 회식을 하고 말이다. 그 팀은 그날 오후 사무실에 나와서 출입증을 반납하고 퇴사를 했다. 나중에 듣자니 그 팀은 보수를 더 준다는 다른 지역의 현장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팀 저팀 나뉘긴 했지만 거의 한팀처럼 친했던 터라 아쉬움이 컸다.

 

그날 우리는 팀장과 나 둘이서 TBM을 가졌다. 우리 팀 팀원들마저 그날 양중(자재를 나르는 것)을 위해서 아침에 창고로 미리 보냈기 때문이다. TBM은 몇 개 회사가 모여서 원청 관리자 주재로 하는 것이라 티가 별로 나지는 않았지만 TBM이 끝나자마자 얼른 자리를 옮겼다. 그날 우리 팀원들이 오기 전까지 팀장은 흡연장에서 멍하니 담배만 피어댔다. 팀이 이렇게 일언반구도 없이 추노한다니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었다.

 

팀이 갑자기 붕괴되기도 한다.

 

이후에도 팀은 여러 번 바뀌었다. 앞서의 추노 팀처럼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붕괴되기도 한다. 두 번째 온 팀이 바로 그 팀이다. 처음에 올 때는 10명 남짓의 팀이었는데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면서 한, 두 명씩 그만두더니 급기야 한 달이 지날 무렵 팀장만 남겨두고 모두 사라졌다. 팀장의 성격이 지랄 맞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해도 고함을 치며 쌍소리를 해대니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그 밑에서 일 하겠는가? 내가 속한 업체의 현장소장이 꽂은 팀이라고 하는데 소장도 참 계면쩍었을 듯싶다.

 

지금은 포설 팀에 세 팀이 있다. 붕괴된 팀 이후에 새 팀이 들어왔고 최근에 공기가 급해져서 다른 팀을 더 추가했다. 하지만 세 번째 온 팀도 이번 달(10)만 하고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하니 이 생활 5개월 만에 팀마저 네 번이 바뀌는 셈이다.

 

개인은 물론이고 팀마저 주구장창 바뀌니 관심을 둘레야 둘 수가 없다.

 

일을 금방 그만두는 사람들 중에는 이런 데면데면한 관계가 힘들어서 그만 둔다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이런 일을 처음 시작하는 나 같은 사람들 중에서 이런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금만 꾹 참고 진득하게 일하다 보면 친해지고 정도 쌓인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