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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이야기 22: 내일이면 M15도 마지막이다(20221208)

경계넘기 2022. 12. 29. 07:34

 

 

내일이면 M15도 마지막이다

 

 

어둠이 깔린 퇴근 길 M15에서 보는 달이 휘황찬란하다.

 

달력을 보니 보름이다. 보름달. 어두운 저녁 하늘, 구름마저 모두 사라졌는지 눈이 부실 정도로 달이 크고 밝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반달이었는데 어느새 커다랗고 덩그런 보름달이 되었다. M15의 하루하루는 길었던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너무 빠르고 짧다.

 

내일이면 M15의 노가다 생활도 끝난다.

 

원래는 10월 말까지였는데 11월 말로 연장되더니, 2일이 연장되어 122일까지였다가 아예 일주일이 더 연장되어 내일까지가 되었다. 다음주부터는 다른 일정이 있으니 다시 연장을 한다하더라도 나는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오늘이 M15 마침의 전야제다.

 

휘황찬란한 달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마냥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일까?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이 있는 것일까? 처음 해보는 일을 무사히 끝냈다는 아쉬움일지도 모르고, 힘들었지만 정들었던 작업장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같이 일했던 두 작업자가 오늘 떠났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내일 마지막 쫑파티를 갖자고 약속을 잡았는데 오늘 작업지휘자와 싸우고 그 길로 현장을 떠났다. 나보다 먼저 팀에 있던 원년 멤버였는데 끝내 작업지휘자 이 친구는 이들마저 떠나보낸다. 하루만 더 참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무던히도 많이들 참았다는 생각에 그런 생각마저 미안해진다. 그래도 같이 쫑파티를 했으면 좋았을 걸. 아마도 정들었던 이 친구들을 전야에 떠나보내 더 싱숭생숭한지 모르겠다.

 

새로운 길에 대한 긴장감도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청주 M15를 뒤로하고 바로 한국을 떠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역마살 깃든 유목민의 기질이라 어쩔 수 없나 보다. 다음 달에 베트남으로 갈 예정이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봉사단으로 간다. 1년 예정이니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당장 다음주 월요일부터 교육이다. 2주간의 교육이 끝나면 바로 파견이다. M15를 마침과 동시에 청주 아니 한국을 정리하고 다시 외국으로 나간다.

 

지금 보름달을 바라보는 내 심정이 곧 청주를,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도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터다. 어쩌면 내년까지 이번 보름달이 한국에서 보는 마지막 보름달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싱숭생숭할 수밖에.

 

 

 

여하튼 목표로 했던 5개월을 훌쩍 넘었다.

 

내일이면 건강하게 7개월 가까운 시간을 마무리한다. 매일같이 출근하기 싫은 마음과의 전쟁이었지만 지나고 나니 대견하다. 그렇다고 마냥 힘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유도원이다 보니 다리가 아파서 그렇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맘 편히 쉬기도 어려운 건설 현장에서 7개월 내내 하루 12시간 가까이를 보내는 일 자체가 쉬울 수가 없다.

 

그 짬짬이 좋은 친구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서 좋았다. 작업지휘자가 영 개떡 같아서 그렇지 작업자들 대개는 모두 좋았다. 작업지휘자도 본래 성격은 착하다. 다만 화를 다루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같이 마지막을 보내고 술 한 잔 깃들이고 떠났다면 정말 좋았을 터인데 그게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아쉽다.

 

오늘은 유난히 따뜻하다.

 

그간 좀 추웠는데 오늘부터 날씨가 완연히 풀리나 보다. 자전거길이 전혀 춥지가 않다. 손조차 시리지 않고. 마음도 싱숭생숭하니 이런 저런 지나온 생각을 하며 달리다보니 어느새 집이다. 내일은 진짜 마지막 날이니 더 가볍겠지.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