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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이야기 21: 눈 오는 날의 출근, 설중(雪中) 출근(20221206)

경계넘기 2022. 12. 29. 07:17

 

 

눈 오는 날의 출근

 

 

설중(雪中) 출근이라!

 

어두운 새벽 출근길 자전거 페달을 밟고 달리는데 뺨에 무언가가 날라 온다. 이 차가운 기운은....... ‘이다. 어두워서 제대로 확인은 못하지만 눈이 내리고 있음이 틀림없다. 가로등이 밝혀진 길을 지나니 하얀 눈이 거리를 덮고 있음이 확연히 들어난다. 아직은 싸락눈. 하지만 점점 굵어지면서 금세 옷과 모자를 하얗게 덮는다.

 

동이 트니 눈은 더욱 굵어진다.

 

M15가 가까워지니 거리가 밝아진다. 완연히 내리는 눈발이 보인다. 눈발은 점점 굵어진다. 이제 완연한 함박눈이다. 짬짬이 신호를 기다리는 중에 옷을 털어보지만 이내 눈이 다시 옷을 덮는다. 바람이 없어 가볍게 내리 앉는 눈이지만 자전거를 달리니 눈은 내 얼굴을 때린다. 눈이 안경을 덮기도 하지만 자전거 타이어도 많이 닳아서 혹여 눈길에 미끄러질까봐 속도를 더욱 줄인다.

 

우중(雨中) 출근에 이어 설중(雪中) 출근이라!

 

비 오는 날의 우중 출근은 출근하기 가장 싫은 날이지만 설중 출근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운치가 있다. 눈 오는 날은 따뜻하다고 했나. 추위도 조금 꺾인 듯하다. 현장도 비 오는 날에 비하면 한결 여유가 있다. 엘리베이터나 호이스트를 기다리는 줄도 길지 않다.

 

M15 건설 현장에서 4계절을 맞이한다.

 

눈까지 맞으니 이제 확실히 4계절을 보낸다. 노가다 7개월 차. 꽃 피는 봄에 시작해서 눈 내리는 겨울에 일을 마감한다. , 꽃 피는 봄이라니까 한 동료가 언제 시작했냐고 묻는다. 5월 중순이라 하니 에이, 꽃 피는 봄은 아니네!”란다. “그려, 꽃 지는 봄이다. 그래도 봄은 봄이잖아

 

봄의 끝자락에 시작해서 긴긴 장마와 무더운 여름, 시원하지만 짧은 가을을 지나 이제 눈 내리는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시간이 언제 가나 싶었는데 계획했던 5개월을 훌쩍 넘어 7개월째 접어들고 있으니 나름 잘 버텼다.

 

 

 

오늘 옥상 작업 못합니다!”

 

TBM 시간에 팀장이 하는 말이다. 원래 오늘 옥상 작업이 잡혀 있었다. 눈 내리는 날은 야외 작업이 미끄러워서 할 수 없단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것은 아니니 할 수 있지 않겠냐는 한 작업자의 말에 플랜트나 일반 현장도 이런 날은 작업 안 해요. 덕트나 트레이가 얼마나 미끄러운데요라며 팀장이 답한다. 나야 감사할 따름이다. 유도원이 덕트 위를 올라갈 이유는 없으나 어찌되었건 추운 날이니까 야외 작업은 사양이다.

 

잠시 뒤 갑자기 말이 바뀐다.

 

옥상 상황을 확인하러 올라갔던 작업지휘자가 우리가 작업할 구간은 비계로 완전히 덮여 있어서 눈하고 전혀 상관없단다. 망할. 옥상에 올라가니 눈발은 그쳤는데 바람이 많이 분다. 춥긴 하지만 옥상에서 바라보는 청주의 설경이 나쁘지 않다. 잠시 쉬는 시간에 바람을 맞으며 넋 놓고 풍경을 바라본다. M15에서의 일이 곧 끝난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자주 보던 풍경에도 감정이 실린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