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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이야기 20: 자가용 출근의 역설!(20221123)

경계넘기 2022. 12. 29. 07:17

 

 

자가용 출근의 역설!

 

 

주차위반 과태료 청구서가 5장이나 날라 왔어!!”

 

같이 일하는 유도원 친구가 입이 댓 발 나와서 하는 말이다.

 

주차위반 딱지가 5장이라니 무슨 말이야?”

“2, 3주 전인가, 하이닉스 현장 주변에 불법주차 단속 강화한다는 공지 있었잖아요

그랬지, 뭐 가끔 잊을 만 하면 나오는 정례행사잖아요

근데 이번에는 주구장창 했나 보네요. 자그마치 5장이 날라 왔네요

 

한 장도 아니고 5장이라니. 이번에는 작심하고 단속을 했나 보다. 10월 말에 있었던 이태원 참사 이후 공사 현장에 공지가 내려왔었다. 청주경찰서와 청주시가 합동으로 하이닉스 현장 주변의 불법주차 단속을 강화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이태원 참사에 불법주차도 일말의 책임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가끔 나오는 공지라 한, 두 번 하고 말겠지 싶었다.

 

요즘은 사람이 직접 스티커를 끊는 게 아니라 차에 실린 단속 카메라로 불법주차 차량을 찍는다. 그러니 자신의 차가 찍혔는지 아닌지는 청구서가 날라 와야만 알 수 있다. 단속 시점과 청구서 날라 오는 시간 사이의 간격이 있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다. 예전처럼 차 유리창에 딱지를 붙였다면 5장을 한꺼번에 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터다.

 

반도체 건설 현장의 주변 도로는 불법주차가 판친다.

 

근처는 물론이고, 걸어서 15~20분 거리의 도로변에도 불법주차로 넘쳐난다. 주차장이 멀어서 가까운 근처에 불법주차 하는 얌체들도 있긴 하겠지만 대개는 주차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다.

 

하이닉스 M15에도 꽤 넓은 주차장이 있다. 그럼에도 현장 근로자들의 모든 차량을 주차하기에는 한참 역부족이다. 하이닉스는 건설 노동자들을 위한 통근 버스도 없고, 현장 주변으로 오는 버스도 거의 없기 때문에 자가용 아니면 오토바이나 자전거, 퀵보드를 타고 다닐 수밖에 없다. 덕분에 주차장에서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20여 분을 걸어오는 사람들도 꽤 있다.

 

 

 

자가용 출근의 역설이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 자가용 출근은 대중교통을 이용한 출근보다 더 빠르고 편하다. 하지만 반도체 건설 현장에서만은 통하지 않는다. 주차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보니 주차장에 차를 대려면 새벽 같이 나와야 한다. 새벽 4, 5시에 출근해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에서 잠을 자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좀 늦게 집에서 나오려면 어쩔 수 없이 불법주차를 해야 하는데 현장 근처는 주차장만큼 빨리 주차공간이 사라지니 걸어서 20~25분 거리의 도로에 주차하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숙소가 현장이랑 가까워도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 경우 집에서 현장까지 자전거로 30분 정도 걸린다. 그것도 쉬엄쉬엄 오는 시간이다. 불법주차하고 걸어오는 시간과 얼핏 비슷하다. 사실 주차장도 가깝지 않다. 현장 입구에서 걸어서 15분 거리다. 사거리 신호등도 두 번을 건너야 한다. 그러니 자가용 통근자보다 자전거 통근자인 내가 더 빠르다.

 

자전거 출근자인 나는 출근 시간에 딱 맞추어 온다. 일찍 올 필요가 없다. 일찍 온다고 있을 곳도 없다. 하지만 자가용 출근자들은 주차장에 주차를 하든, 불법주차를 하든 일찍 와야만 그나마 차를 주차할 수 있다. 여기에 새벽 같이 나오는 사람들도 많으니 자가용 출근이 오히려 시간에 쫓긴다.

 

퇴근 시간은 더 전쟁이다.

 

출근이야 시간이 분산된다고 하지만 퇴근 시간은 동시에 몰리니 현장 인근 도로가 난리다. 주차장을 빠져 나오는 데도 시간이 엄청 걸릴 뿐만 아니라 주차장을 나온 차량들이 대부분 시내 쪽으로 유턴을 해야 하다 보니 유턴을 하는 데도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린다. 퇴근에는 자전거 출근자인 내가 훨씬 더 빠르다.

 

나도 처음에는 작업자들의 차를 타고 일주일 정도 출근한 적이 있었다. 집에서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같은 팀 작업자들의 숙소가 있었다. 자전거로 숙소로 가서 그곳에 자전거를 주차하고 같이 차를 타고 현장에 왔었다. 편하긴 하지만 시간이 너무 걸려서 곧 그만두고 그냥 자전거로 출근을 했다.

 

청주 하이닉스가 이정도면 평택 삼성은 말해 뭐할까!

 

평택 삼성은 규모가 청주 하이닉스의 5~6배가 넘는다고 한다. 당연히 작업자들도 그 만큼 있다. 그야말로 출퇴근 전쟁이다. 평택은 주변 전철역에서 통근 버스가 현장까지 수시로 오가지만 그 통근 버스마저도 타려면 30여 분 줄을 서야 한다고 한다. 내가 평택에 가지 않고 청주에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장 규모가 큰 반도체 공장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주변에 공간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수 천, 수만 대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을 만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대중교통 편을 늘릴 수도 없다. 현장이 있는 곳은 대부분 외진 곳이라 건설 근로자들을 빼면 대중교통 수요자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토바이나 퀵보드가 좋긴 한데 너무 위험하다.

 

퀵보드는 내가 일을 하는 동안에도 사망 사고가 있었다. 건설 현장에서는 정작 사망 사고가 없었는데 현장 주변의 도로에서 사망 사고가 일어났다. 크고 작은 오토바이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하이닉스나 업체에서는 되도록 오토바이나 퀵보드 출근을 자제해달고 하지만 대안이 없으니 말로만 끝난다.

 

자가용 출근이야 말로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교통수단이다. 적어도 반도체 건설 현장에서는 말이다.

 

ps. 며칠 후에 불법주차 과태료 통지서가 한 장 더 날라 왔단다. 6장이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