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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이야기 18: 건설 현장의 여성들(20221027)

경계넘기 2022. 12. 13. 06:20

 

 

건설 현장의 여성들

 

 

어느 때부터 원톱(one top)이 보이지 않는다.

 

원톱, 탑 오브 탑(top of top). 하이닉스 M15 최고의 미녀가 보이질 않는다. 나와 같은 유도원 일을 하던 처자였다.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M15 건설 현장뿐만 아니라 어딜 내놔도 손색없는 미모의 친구였다. 우리 팀이 M15 전반을 휘젓고 다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자신할 수 있다. 젊은 팀원들 모두 인정하는 바다.

 

그 친구가 유도원 일을 나보다 먼저 시작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빠지는 일 없이 나오던 친구였는데 9월인가 10월인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우리 팀이 M15 이곳저곳을 다니는 반면에 그 친구는 5층에서만 일을 했었다. 우리가 자주 옮겨 다녀서 못 본 줄 알았는데 그만 둔 모양이다. 숱한 남정네들의 가슴이 휑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녀가 근무하던 업체의 젊은 작업자들은 그녀의 퇴사 이후 많이 그만두었을 듯싶다. 힘든 출근길과 건설 현장의 삭막함을 그나마 가볍게 해주었던 친구였을 터다.

 

의외로 건설 현장에 여성들이 많다.

 

건설 현장에는 남자들만 있는 줄 알았다. 거의 군대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웬걸 여성들도 꽤 많다. 여성의 비율이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코 낮지 않다. 대학으로 치면 자연대 수준의 성별 구성비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중년 이상의 여성분들이 상대적으로 많긴 하다. 나와 같이 유도원이나 화재감시자 일을 하시는 분들이다. 여기서는 이모님 또는 여사님 등으로 불린다.

 

하지만 생각 외로 젊은 여성들도 꽤 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을 듯한 앳된 얼굴의 친구들부터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여성들도 자주 보인다. 젊은 여성들의 직군은 중년 여성들의 직군보다 더 다양하다. 유도원이나 화재감시자가 가장 많긴 하지만 작업지휘자나 안전관리자, 각 협력업체에서 파견된 직원들도 있다. 원래 작업지휘자나 안전관리자는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경력이 높기 때문에 일당이 셀 수밖에 없는데 규정상 작업지휘자나 안전관리자는 고소작업 등의 작업에 직접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비용이나 일적으로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규정상의 필요한 숫자를 채우면서 일의 효용도 높이기 위해서 편법으로 경력이 없는 일종의 바지 작업지위자를 종종 세운다. 이들 일이라는 것이 간단한 서류 작업과 서서 작업을 지켜보는 것이 주된 일이라 여성들이 많이 한다.

 

일반 작업자들 중에서도 젊은 여성들이 종종 보인다.

 

생각 외로 꽤 있다. 이들 중에는 유도원이나 작업지휘자로 들어와서 일반 작업자로 전향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우리 회사 덕트 팀에도 그런 친구가 있다. 작고 여린 체격의 친구가 요즘은 TL(고소작업대)까지 능숙하게 몰고 다니는데 보고 있으면 참 대견해 보인다. 덩치 좋은 젊은 남자들도 며칠 하다 추노하는 경우가 허다한 곳에서 말이다.

 

건설 현장에서 젊은 여성들의 비율을 대학으로 치자면 공대의 성별 구성비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 중에서도 확실히 건축학과의 성별 구성비와 비슷해 보인다. 건축학과에 은근히 여학생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었는데 그때의 느낌 그대로다. 노가다라고 부릴 정도로 3D 업종 중에서도 업무 환경이 열악한 건설 현장이고 보면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없는 비율이다.

 

 

 

미모의 여성들도 꽤 있다.

 

직업이 외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지만 현실에서는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을 가졌었다. 억센 건설 현장에 미모의 젊은 여성들이 일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질 못했다. 그럼에도 앞서의 원톱처럼 건설 현장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미모의 친구들도 종종 있으니 편견이었던 셈이다. 하긴 돌이켜보니 공대 여학생들 중에서 특히 건축학과에 예쁜 친구들이 있었던 거로 기억난다.

 

같은 회사의 덕트 팀에 미모의 작업지휘자 또는 안전관리자가 3명이나 있다. 그 중 한 명이 일반 작업자로 전환했고, 2명은 그대로 작업지휘자로 남아 있는 것 같다. 누가 봐도 귀엽고 예쁘게 생겼는데 거의 쉬는 날 없이 열심히 출근하고 있다. 우리 팀 젊은 친구들에게는 청량제 같은 친구들이다. 직접 가서 말이나 한번 붙여보라고 푸쉬를 해보지만 감히 엄두를 못 낸다. 내가 한번 자리를 만들어 볼까도 생각하지만 원체 숙맥들이라 자리를 만들어도 먼 산만 쳐다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의외로 성격도 여성스런 분들이 많다.

 

남자들 사이에서도 거친 일에 속하는 건설 현장에는 여성들 중에서도 다소 거칠고 억센 톰보이(말괄량이)스런 여성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와서 보니 이것도 편견이었다. 오히려 무척이나 여성스런 분들이 많다. 이건 이모님들이나 여사님들도 마찬가지. 오히려 거친 성격보다는 부드러운 성격의 여성들이 더 오래 버티는 것 같기도 하다. 강풍에 단단한 나무보다 부드러운 갈대나 억새가 더 잘 버티는 이치가 아닐까 싶다.

 

갑자기 요즘 젊은 여성 작업자들이 부척 늘었다.

 

원톱이 사라졌다고 아쉬워할 무렵 갑자기 미모의 젊은 여성 작업자들이 부쩍 많이 나타났다. 작업 공정이 막바지에 들어서면서 설비 직발 팀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이들 중에 젊은 작업자들이 많다. 나이대도 마치 대학 실습생들처럼 보이는 젊은 친구들이 많아서 대학 휴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많이 하나 싶다. 게다가 예쁜 친구들도 많아서 면접 보고 뽑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 무척이나 아쉬운 점은 이들 직발 팀들과는 출퇴근 시간도 다소 다르고 같이 작업하는 접점도 거의 없어서 현장에서 스쳐 지나가는 정도가 전부라는 사실이다.

 

쉬는 시간에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우리 팀 일 끝나면 이번엔 직발 팀으로 옮길 생각이야. 이제는 여자들이 많은 곳에서 일을 좀 해야될 것 같다.”라고 했더니,

, 지금 가! 바로! 일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우리 팀은 걱정하지 말고. 얼른 가서 미팅 좀 주선하시구요라며 전부 내 등을 떠민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