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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03, 아제르바이잔 바쿠 13: 바쿠(Baku)의 대중교통 순례(20190225)

경계넘기 2019. 12. 26. 09:15

 

 

바쿠(Baku)의 대중교통 순례

 

 

어제 숙소를 옮겼는데 옮긴 숙소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도미토리 생활에 지쳐서 잠깐이나마 개인실에서 쉬고 싶어서 옮긴 숙소였는데 이게 바쿠를 떠나게 만든다. 어차피 아제르바이잔에서 외국인이 15일 이상을 거주하려면 거주지를 등록해야 한다. 어제 숙소 사장이 그러는데 이걸 안하면 벌금이 400마나트라고 한다.

 

내일 아제르바이잔을 떠나 아르메니아로 가기로 한다.

 

 

떠나기로 했으니 바로 기차표를 끊는다. 아제르바이잔도 몇 도시 돌고 싶지만 그냥 바쿠만 보기로 한다. 이동시 거주지 등록도 애매하고. 도시들을 거쳐서 간다면 버스를 이용하겠지만 바로 조지아(Georgia) 트빌리스(Tbilisi)로 갈 것이기에 기차가 좋아 보인다. 바쿠에서 트빌리시까지 국제열차가 있다. 요금도 비싸지 않고.

 

사실 조지아를 가는 것이 아니라 조지아를 경우해서 아르메니아(Armenia)를 가려는 것이다.

 

아제르바이잔과 터키는 아르메니아와 앙숙이라 국경이 개방되어 있지 않다. 아제르바이잔에서 아르메이나를 가려면 조지아를 거쳐서 가는 수밖에 없다. 아르메니아와 터키도 마찬가지. 아르메니아에서 터키로 가려면 또 다시 조지아로 나와야 한다. 어차피 조지아로 다시 나와야 하기 때문에 아르메니아를 먼저 보고 나올 때 조지아를 보려한다.

 

저녁 840분 기차를 타면 다음날 오전에 트빌리시에 도착한다. 거기서 바로 아르메니아 수도인 예레반(Yerevan)으로 가는 차를 탈 생각이다. 트빌리시에서 예레반은 그리 오래 걸리는 것 같지는 않다. 계획대로라면 내일 오후 늦게 예레반에 들어갈 수 있다.

 

12시쯤 기차표를 예매하러 나가려는데 하늘이 금방 비라도 내릴 기세다. 지금은 안 내려도 오늘 중으로는 내릴 것 같다. 굳이 미리 표를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일 그냥 가도 비수기라 표는 있을 것 같지만 금세 그 생각을 접는다. 불가피하다면 모를까 그것이 아니라면 미리 사두는 것이 현명하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낯선 곳에서의 여행이다.

 

숙소를 나서는데 아주 가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다.

좀 걸으니 제법 젖는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더니만 .

 

바쿠(Baku)의 대중교통

 

 

옮긴 숙소는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싼 개인방을 구하다 보니 외곽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구글맵으로 바쿠역까지 가는 길을 확인해보니 조금 복잡하다. 그래도 구글맵이 대중교통을 알려줄 수 있다는 사실은 이곳 바쿠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어느 정도 디지털화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구글맵이 알려준 방법은 이곳 숙소에서 시내버스 31번을 타고 가서 올드시티 역, 정확한 이름은 이체리셰헤르(Icherisheher) 역에 내려서 거기서 지하철(Metro) 레드 라인(led line)을 타고 기차역으로 가는 것이다. 기차역이 있는 메트로 역 이름은 ‘28 May’. ‘528’. 이 날이 아제르바이잔에 무슨 의미가 있어서 붙인 이름인지는 모르겠다. 날짜가 아닐 수도 있고. 여하튼 버스와 지하철을 모두 타야 하는 것인데 버스는 이전에 타 봤지만 지하철은 오늘 처음 타본다.

 

바쿠의 시내버스는 요금을 현금으로 직접 내는 버스와 교통카드를 사용하는 버스 두 종류가 다 있다. 돈을 직접 내는 버스는 대개 오래된 버스인데 타보면 낯설지가 않다. 바로 대우 버스이기 때문이다. 유리창에 KS마크도 보인다. 오늘 타야 하는 31번 버스가 돈을 내는 버스다.

 

버스 요금은 거리와 상관없이 0.3마나트임에도 내릴 때 요금을 낸다. 차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기사가 요금을 받다 보니 내리는 문과 타는 문이 우리와 다를 수밖에 없다. 뒷문으로 타서 앞문으로 내리면서 기사에게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기사 아저씨가 잔돈도 거슬러 준다. 물론 큰 지폐는 안 되겠지만.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로 갈아타기 위해서 항상 지나치기만 했던 이체리세헤르 역으로 들어간다.

 

 

맑은 날의 이체르세헤르 역 전경

 

말로만 들었는데 역이 정말 깊다.

 

구소련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사시 대피소로 사용하기 위해서 핵폭탄에도 끄떡없게 만들었다고 하더니만 실감이 확 난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참을 내려간다. 처음에는 그 끝도 보이지 않는다. 속도도 처음에는 무척 빠르게 느껴졌는데 하도 길어서 그런지 점점 속도감이 덜 느껴진다. 내려가서 보니 통로도 마치 터널처럼 둥글게 되어 있어서 딱 방공호다.

 

 

 

열차 차량은 옛날식으로 낡았다.

 

달릴 때 보면 소음도 엄청 심하다. 더욱이 이 깊은 터널에서 지하철 창문을 열어 놓는다. 소리도 소리지만 공기도 안 좋을 텐데.

 

 

 

28 May 역에서 나오면 바로 옆이 기차역이다.

 

이체리세헤르 역에서 두 정거장이다. 지난번 한 번 와봤던 곳이라 금방 찾았다. 여기는 기차표 끊을 때도 은행처럼 번호표를 끊어서 기다려야 한다.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여기도 인도처럼 일처리가 무척 느리다. 뿐만 아니라 요금을 매표 창구에 내는 것이 아니다. 돈을 받는 수납 창구가 따로 있어서 거기서 납부하고 받은 영수증을 들고 가서 표를 받아야 한다. 그러니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다행이 사람이 별로 없어서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왼쪽의 건물이 지하철 역, 우측의 KFC 건물이 기차역

 

트빌리스 가는 국제열차는 침대 열차다.

 

티켓에 여유가 있는지 침대칸의 아래 침대를 원하는지 위 침대를 원하는지 묻는다. 당연히 아래 침대. 등급은 2등 칸을 샀다. 3등 칸도 있는데 2등 칸은 4인실이고, 3등 칸은 6인실이란다.

 

 

 

중국이나 인도에서 주로 타본 침대 기차가 주로 6인실이어서 4인실은 어떤지 한 번 보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여타 유럽에서는 비싸서 침대 열차는 타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금은 34.59마나트. 우리 돈으로 25천 원 정도다.

 

기차표를 받고 보니 영어 표기가 없어서 객실과 좌석을 알 도리가 없다. 아니, 이 기차표가 트빌리시에 가는 것인지도 확인이 안 된다. 이럴 줄 알았으면 표 받을 때 물어보기나 할 것을. 블로그에 의하면 영어가 전혀 안 되는 창구 직원도 많다고 하던데 내 창구 직원은 영어를 잘 했다.

 

 

 

어렵게 산 티켓도 아닌데 사고 나니 뿌듯해지고 진짜 떠난다는 생각이 든다.

 

대합실로 올라가 본다. 혹시 몰라서 짐 맡길 곳이 있는지 확인해 보려는 것이다. 따로 짐 보관소는 없고, 한쪽에 무인 락커가 있다. 큰 짐은 4시간에 3마나트. 내일 이곳에 배낭을 두고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숙소가 기차역에서 멀어서 짐을 숙소에 둘 수는 없다.

 

비가 부슬부슬 계속 내리고 있어서 숙소로 바로 돌아가기로 한다. 같은 방법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혹시 몰라서 구글맵으로 가는 방법을 알아본다. 이상하게 다른 길을 알려 준다. 새로운 길은 지하철 레드 라인이 아니라 그린 라인(green line)을 타고 가서 3번 버스로 갈아타는 것이다. 전혀 다른 길이다. 이 길로 가보기로 한다. 이왕이면 새로운 길로 가보기로.

 

28 May 역이 환승역이라 여기서 타면 되는데 그 깊은 역 안에서 길을 잃었다. 덕분에 방공호 같은 긴 터널을 많이도 걸었다. 할 수 없이 영어가 될 것 같은 젊은 처자에게 물으니 자기도 거기까지 간다면 직접 안내해 준다.

 

알고 보니 같은 플랫폼에서 레드 라인과 그린 라인 열차가 번갈아 오는 것이다. 이걸 모르고 플랫폼이 다를 것이라 생각하고 찾아 다닌 것이다. 이 친구 아니었으면 진짜 못 타고 나올 뻔 했다.

 

그린 라인에서도 두 번째 역에서 내렸는데 역에 젊은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지하철 역 옆에 바쿠주립대학이 있다. 거리에는 젊은 대학생들 천지다. 바쿠의 대학로인 셈. 방학이 아닌지 학생들이 많다. 떠날 때가 되서야 이런 곳에 오다니.

 

 

 

이곳 역까지 나를 안내해준 친구는 내 이름을 묻더니만 자기 이름도 말해주고 악수를 청하면서 작별인사를 한다. 정말 친절하고 예쁜 처자다. 길 안내의 정석을 본 것 같다. 바쿠 대학 학생아닌가 싶다.

 

학생들을 따라 학교나 구경하려고 들어가려 하니 학생증이 있어야만 한다. 뭔 놈의 대학이 출입증이 있어야만 들어가나. 사정을 좀 해보려 했으나 두 분 경비원분들 모두 영어가 안 되시는 분들이시다. 말이 되어야 사정이라도 하지.

 

그곳에서 3번 버스를 타려고 하니 이번 버스는 카드를 이용하는 버스다. 이건 한국과 마찬가지다. 앞으로 타서 카드 찍고, 내릴 때는 뒷문으로 내린다. 버스도 훨씬 새 거다.

 

오늘 기차표 예매하러 가면서 지금껏 못 탔던 바쿠의 대중교통을 일순했다. 지하철도 2개 노선을 다 타보고 버스도 돈 내는 것과 카드 찍는 것도 다 타봤다. 기차역을 갈 때와 올 때의 길이 정 반대라 바쿠 시내를 한 바퀴 돈 느낌이다.

 

이제 바쿠의 대중교통도 익숙해진 것 같은데 난 내일 떠난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