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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04, 아제르바이잔 바쿠 14: 바쿠(Baku)를 떠나는 날, 아제르바이잔 역사의 비극적인 날이기도(20190226)

경계넘기 2019. 12. 26. 10:05

맨 오른쪽 녹색 열차가 트빌리시 가는 국제열차 

 

 

바쿠를 떠나는 날, 아제르바이잔 역사의 비극적인 날이기도

 

 

 

오전 11시 반쯤 느지막이 체크아웃을 했다.

 

바쿠(Baku)를 떠나 조지아(Georgia) 트빌리시(Tbilisi)로 가는 기차는 저녁 840분이다. 시간이 무척 많이 남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루 종일 비가 후줄근하게 내리고, 새벽에도 안개가 자욱하더니만 아침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빛이 쨍쨍하다. 감사한 날이지. 오늘도 비가 내리거나 흐린 날이었으면 내 기분도 조금 우울했을 텐데.

 

무거운 배낭을 메었지만 날씨가 화창해서 그런지 발걸음은 가볍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올드 시티(Old City)에서 내린다. 분수 광장의 자주 가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기차역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마지막으로 올드시티의 성도 보고 싶고, 카스피 해(Caspian Sea)도 보고 싶어졌다. 배낭이 무겁긴 하지만 걸을 만하다.

 

필하모닉 공원으로 내려간다. 성벽 아래 공원 벤치에 잠시 앉아서 푸른 하늘 아래 솟아 있는 성벽을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찬찬히 성벽을 바라 본 적이 있던가? 자주 지나치기만 하고 사진 찍기 바빴지 이렇게 자리에 앉아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세월이 그랬던, 전쟁이 그랬던 성벽 여기저기 상처 입은 곳들이 눈에 들어온다. 멋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성벽도 모진 세월의 역사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성벽에 남아 있는 숱한 상처들과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른 하늘이 너무도 큰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아서 더욱 슬퍼 보인다.

 

2월 26일은 아르메니아에 의한 아제르바이잔 호잘리(Khojaly) 대학살이 일어난 날이다

 

 

성벽을 벗어나서 해안가로 내려간다. 해안가 광장 가운데 높은 깃대 위에 휘날리던 아제르바이잔 국기가 오늘은 이상하다. 분명 한 기폭만큼 내려온 조기다. 그리고 국기 위에는 전에 보지 못했던 검은색 천이 국기와 함께 휘날리고 있었다. 우리의 현충일과 같은 무언가 슬픈, 애도의 날로 보인다.

 

 

조기
원래의 국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좀 물어보고 싶은데 마땅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아제르바이잔에는 영어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거의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구소련의 연방 아래 있었기에 영어 보다는 러시아어를 잘 한다. 그나마 젊은 사람들이 영어를 좀 하는데, 날씨 좋은 평일의 정오라 그런지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연인들이다. 방해하긴 좀 그렇지.

 

마침 형이랑 카톡을 하다가 조기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애도의 날인 것 같다고. 조금 있다가 형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226일은 아르메니아인들에 의한 아제르바이잔 호잘리(Khojaly) 대학살이 일어난 날이라고 한다. 호잘리는 아제르바이잔의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Nagorno-Karabakh) 내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은 지금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분쟁 지역인데, 1992년 이 지역을 병합하려는 아르메니아 군인들이 호잘리 마을에 침입해서 민간인들을 전부 몰살시켰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바쿠의 국가역사박물관에서도 봤던 기억이 난다.

 

그날을 애도하기 위해서 저렇게 조기가 걸렸구나. 검은색 긴 리본과 함께. 푸르디 푸른 하늘에 휘날리는 조기와 검은색 리본 역시 눈부신 하늘과 너무도 대조적이어서 더욱 슬프다. 차라리 어제처럼 비가 내렸으면 이런 기분이 덜할 텐데.

 

푸른 하늘 그리고 상처 입은 성벽과 조기. 간만에 너무도 눈부시게 화창한 날이었는데 무언가 무거운 것을 가슴에 담고 바쿠를 떠난다.

 

 

 

캅카스의 비극 1: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끝나지 않는 비극,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Nagorn

추적추적 비가 오는 2월의 어느 날, 난 아제르바이잔(Azerbaijan)의 수도 바쿠(Baku)의 한 공동묘지를 걷고 있었다. 바쿠의 랜드마크 건물로 세 개의 불꽃을 형상화한 불꽃 타워(Flame Towers)를 찾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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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역설적으로 난 오늘 바쿠를 떠나서 내일 조지아 트빌리시를 거쳐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Yerevan)으로 들어간다. 오늘 바쿠의 조기를 만든 그 역사적 장본인.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의 슬픔이 있다면 아르메니아에도 슬픔이 있다. 그들도 집단학살을 당한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이 무슨 장난질인지. 바쿠를 떠나는 날, 간만의 맑은 날을 보고 마지막으로 올드 시티의 성벽과 카스피 해를 눈에 담고 가려 했는데 무언가 무거운 돌덩이를 가슴에 얹고 간다. 날씨가 맑아 더욱 슬픈 날이다.

 

위로는 카프카스(KavKaz) 산맥과 옆으로는 흑해와 카스피 해에 둘러싸인 이 작고 아름다운 코카서스 3국에 대체 무슨 아픈 역사가 서려 있는 것일까? 이제는 아르메니아의 슬픈 역사를 보러 간다. 난 그저 아름다운 자연과 화려한 문화를 보고 싶었는데. 하늘은 화창하지만 조기를 펄펄 날리게 할 정도로 바람이 심한 날이다. 바닷가에서는 옷깃을 올리고 외투에 붙은 모자를 쓰고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춥기도 춥지만 내 모자가 날라가 버릴 것 같다.

 

바쿠의 카페, 글로리아진스커피(Gloria Jean’s coffees)

 

 

올드 타운 초입에 있는 글로리아진스커피(Gloria Jean’s coffees) 카페에 들어간다. 지난번 숙소 바로 아래와 지금 들어온 바닷가 도로변에 두 곳이 있다. 모두 내가 바쿠에 있으면서 자주 갔던 곳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그 나라나 그 지역에서 유독 자주 가게 되는 카페가 생긴다. 개별 카페들도 있고, 체인 브랜드도 있다. 내 경우 체인 브랜드로는 베트남에서의 하이랜드(Highland), 중국에서의 맥도날드, 말레이시아에서의 스타벅스 등이 그런 곳이다.

 

바쿠에서 내가 애용하던 카페가 바로 글로리아진스 커피다. 숙소 근처 성벽 앞에 있어서 처음 가게 되었는데 이렇게 해안가 바로 옆에도 있어서 자주 찾아가게 되었다. 마지막 날이니 만큼 자주 애용하던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밥 먹는 것보다 이곳의 커피 한 잔이 더 생각나는 것도 이 이유일 것이다.

 

바쿠를 생각할 때 항상 기억하게 될 나만의 추억의 장소다. 올드 시티의 성벽을 보고나 작은 호수 공원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마시고 글을 썼던 곳으로 말이다. 그리고 보니 바쿠의 눈 내리는 날에도 숙소 아래 이 카페에서 함께 했다.

 

4시 반쯤 되어 카페를 나선다.

 

걸어서 기차역까지 간다. 걸어 가면서 저녁을 먹을 만한 곳을 찾는데 막상 들어가고 싶은 곳이 없다. 어쩌면 큰 배낭을 메고 레스토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남은 아제르바이잔 돈을 써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마나트는 10마나트 짜리 지폐 2장과 1마나트 짜리 지폐 3, 그리고 동전 몇 개. 적어도 1마나트 짜리 지폐와 동전은 해치워야 한다. 10마타트는 조지아에서 환전이 가능할 것이다. 정 안되면 나중에 올 때를 위해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하지만 소액 지폐나 동전은 짐만 될 뿐이다.

 

길을 걷다가 도넛, 되네르(doner)가 아니라 진짜 도넛 파는 곳이 보여서 4개를 샀는데 달랑 1마나트 달란다.

 

바쿠에 처음 왔을 때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걷는다. 그때 생각이 난다.

 

바쿠역(Baku Station)

 

 

저녁을 거르고 왔더니 역에 너무 빨리 도착했다. 역 근처의 작은 식당에서 햄버거와 도넛 2개를 사면서 잔돈과 동전을 완벽하게 해치웠다. 지난번 두바이 공항 도넛 가게에서 했던 방법을 그대로 썼다. 저렴한 분식집 같은 곳에 가서 남은 잔돈을 다 쓸 수 있도록 먹을거리를 맞추었다. 이제 지갑에는 10마타트 지폐 2장만 달랑 있을 뿐이다.

 

대합실에 올라가니 이제 겨우 오후 5시 반이다. 마침 책상이 달린 대합실 의자가 남아 있어서 그곳에 짐을 놓고 책을 읽는다. 책은 공항이나 기차역에서만 읽는 것 같다. 공항이든 역이든 자리 깔고 앉아서 책을 읽고 있노라면 시간 하나는 잘 간다.

 

 

 

시간을 보니 어느덧 750분이다.

 

이곳 역에는 기차 탑승 시각이나 플랫폼을 알려주는 전광판은 없다. 안내방송은 나오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는 않는다. 솔직히 영어로 해주는지도 모르겠다. 인포메이션에 가서 물어보니 한 10분 후쯤 1번 플랫폼으로 가라고 알려준다.

 

화장실에나 들렸다 가려고 했으나 역 안 화장실도 유료다. 0.3마타트. 그러나 난 더 이상 마타트가 없다. 화장실 가려고 10마나트를 헐 수는 없다. 화장실과 물 인심은 한국이 최고. 요새 보니 중국도 무료 공공화장실이 많이 생겼다.

 

한국을 여행한 중국인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한국 공공화장실이란다. 중국도 예전에는 거의 대부분 돈을 받았다. 유료임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은 결코 깨끗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을 여행한 중국 관광객들은 한국의 공공화장실, 그 중에서도 고속도로 휴게실의 화장실을 보고 놀란다고. 공공화장실이 호텔 화장실처럼 예쁘고 깨끗하다는 사실과 거기에 더해 그것이 무료라는 사실에 더욱 놀란다고 한다.

 

요즘 중국은 정책적으로 공공화장실을 설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관광지마다 한국처럼 잘 만들어지고 관리되는 화장실이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덕분에 요즘 중국을 여행하는 것도 많이 편해졌다. 예전에는 되도록 숙소에서 볼 일을 해결해야 했다.

 

지금까지 여행에서도 중국 이외에는 무료 공공화장실을 가지고 있는 나라를 거의 볼 수 없다. 그나마 말레이시아가 고속도로 휴게실 화장실이 무료였다. 그러고 보면 화장실이 유료인 나라를 여행할 때는 마지막 순간까지 잔돈푼 몇 개는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만일을 위해서. 앞으로 유럽은 더 지랄 같은데.

 

티켓에는 영어 문구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차량과 좌석을 알 수 없다. 열차 직원에게 티켓을 보여주며 차량과 좌석 넘버가 어느 것이냐고 물었다. 웃으며 알려준다.

 

차량에 탑승할 때 여권을 확인한다. 그제서야 이게 국제열차라는 사실을 새삼 인지한다. 입구에서 검사하더니만 객차 문 앞에서도 여권을 확인한다. 그러더니 조지아 비자를 보여 달라고 한다. 한국은 무비자라고 했더니 잠시 부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등석 객실은 마주보는 4개의 침대가 하나의 방으로 되어 있다. 그간 여행하면서 슬리핑 기차를 많이 타 보았지만 이렇게 방으로 되어 있는 객실은 비싸서 타 본적이 없다. 이곳에서는 저렴해서 이런 호사도 누려본다.

 

 

 

객실에는 나밖에 없다. 출발할 시간이 거의 되어서 옆방에 있던 일행들 중 한 명이 내 방에 와서 침대만 확인하고 간다. 자기 침대란다. 아마 일행이 5명인가 보다. 이 친구는 옆 방에서 한참을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다. 덕분에 기차 출발하고도 한참을 혼자 있었다.

 

침구는 있고, 기차 출발하고 조금 있으니 시트를 따로 준다. 시트를 씌우는 일은 직접 해야 한다. 일등석은 대신 씌어 주나. 아까 잔돈을 다 풀어서 산 저녁거리도 먹는다. 혼자 있으니 기차 객실 하나를 전세 낸 것 같다.

 

객실은 아늑하고 따뜻했지만 기차 자체의 진동은 좀 심한 것 같다. 아마 철로가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태국 기차가 이랬다. 아까 역무원이 세관신고서를 주어서 쓰고 자려고 하는데 기차 진동이 심해서 글쓰기가 만만치 않을 정도다.

 

저녁이라 창밖의 풍경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잠을 청할 때까지 옆방에서 내 룸메이트는 오지 않았다. 이제 아쉬운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의 여행을 마칠 시간이다.

 

언제 다시 오게 될까? 영영 다시 못 올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다시 올 것 같다. 바쿠에만 있어서 아제르바이잔의 다른 지역을 남겨 놓고 떠나기 때문이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