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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에콰도르(Ecuador)

D+ 404, 에콰도르 바뇨스 8: 바뇨스(Banos)의 무진기행(霧津紀行) 그리고 한 통의 국제전화(20191223)

경계넘기 2020. 1. 3. 08:55

 

김승옥이라는 작가가 쓴 소설 무진기행이 있다. 무진(霧津)이라는 단어가 암시하듯이 안개로 유명한 한 도시에서의 여행을 그린 소설. 안개 속의 도시인 무진은 여기서 현실 또는 세속과 떨어진 이상 또는 허무를 상징한다.

 

지금 바뇨스가 딱 그 소설 속의 도시 같다. 내가 그 소설의 주인공이고.

 

 

 

며칠 계속 비가 내리더니만 오늘 아침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이 모두 안개, 아니 구름에 잠겼다. 딱 마을만 남겨두고 온통 하얀색이다.

 

구름에 갇힌 기분이 이럴까? 차라리 구름 속에 들어가 있다면 안개가 자욱하다고 표현할 터인데, 이건 내가 있는 마을만 남겨두고 구름이 둘러싸고 있으니 그게 신기하다.

 

 

 

마치 구름이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마을을 숨겨주고 있는 듯하다. 마추픽추가 이러했을까? 이렇게 구름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서 그 오랜 시간 속에서도 외부의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일어나기 싫어서 침대에 누워 이런 저런 생각들만 하고 있다.

 

저녁에는 정말 간만에 국제전화라는 것을 걸러 나갔다. 온 마을을 다 뒤져서 겨우 국제전화를 걸 수 있는 전화 집을 찾았다. 현지인들도 잘 모르고, 경찰도 잘 모르는 곳을.

 

요즘 누가 국제전화를 거나? 인터넷이 되는 곳이면 카카오톡으로 영상통화까지 무료로 가능한 세상이구만, 은행 업무는 직접 전화통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단다. 한국과는 시차도 13시간 늦으니 한국 영업시간에 맞추어 빗속에 우비를 걸쳐 입고 저녁에 마을로 내려가야 했다.

 

전화기 앞에 요금 표시 패널이 있는데 돈 떨어지는 것이 장난이 아니다. 더욱이 한국의 영업전화는 알지 않는가? 기계가 받아서 지금 모든 상담사들이 통화 중이오니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만 나온다. 1~2분 사이에 돈은 3~4 달러가 떨어졌다. 순간 등에 식은 땀이 흐른다. 1달러가 아쉬운 가난한 배낭여행자이구만.

 

전화로 용건을 확인하고, 내 생년월일만 대고 업무는 끝났지만 단 몇 분 통화에 8달러가 넘게 나왔다. 우리 돈으로 만원 돈이다.

 

생각해보니 그간 카카오톡, 라인, 와츠앱 등의 모바일 메신저 통신의 고마움을 몰랐다. 그런 것들이 없던 예전에는 해외여행하면서 국제통화 자체도 어려웠지만 그나마 통화에도 비용이 엄청 나갔었다.

 

그런데 지금은 세상 어디에서도 인터넷만 되는 곳이라면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편하게 영상통화까지 가능하니 세상이 엄청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덕분에 자식들을 해외에 보낸 부모들도 걱정들을 놓을 뿐만 아니라 수시로 하는 영상통화로 먼 곳에 자녀를 보냈다는 사실 조차도 가끔은 깜박깜박 한다.

 

이렇게 고생을 해보니 고마움을 안다. 그나저나 모바일 메신저 통신과 핸드폰으로 인해 세계 어디에서도 공공전화나 전화 걸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때론 이렇게 급하게 전화를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인데.

 

안개 속 도시의 이상과 허무에서 국제전화 한 통화로 현실과 세속으로 돌아왔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