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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64, 터키 셀축 2: 고대 도시 에페스(Efes) 산책(20190427)

경계넘기 2020. 8. 27. 13:11

 

 

고대 도시 에페스(Efes) 산책

 

 

터키는 빵 인심이 너무 좋다.

 

50리라가 조금 넘는 도미토리에 아침 식사가 괜찮게 나온다. 풍성한 것은 아니어도 딸기, 토마토, 사과, 오렌지 등 과일이 주로 담겨 있다. 이렇게 과일을 챙겨 주는 아침은 처음이다. 물론 뷔페식은 빼고. 빵은 한 바구니를 주니 쨈과 꿀에 발라 먹으면 배가 부르다. 

 

 

 

숙소는 부부가 운영하는데, 여자 분이 중국인이고 남자 분이 터키인이다.

 

중국인 여사장은 쾌활하면서 중국인 특유의 바지런함이 있다. 빵이 떨어지니 빵을 더 챙겨준다. 식사를 하고 자리에 일어나려니 여사장이 일주일마다 열리는 장이 서는 날이라며 구경가보라고 한다. 일주일마다 열리니 7일장이고, 토요일에 열리니 주말장이다. 시장 구경 좋아하는 것을 어찌 알았는지.

 

에페스(Efes) 유적지에 돌무쉬를 타고 간다고 해서 먼 줄 알았는데 구글맵으로 확인해 보니 겨우 3km 조금 넘는 거리다. 걸어서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다. 당연히 걸어가기로 한다. 특히나 날씨 좋은 날엔 걸어 주어야 한다. 에페스를 가려던 일정에 생각지 않은 시장 일정이 생기니 한 가지 걸리는 문제가 있다. 시장을 구경하고 그곳에 가면 시간이 늦어질 것 같다. 에페스 같은 유명한 유적지는 단체 관광객이 많이 오기 때문에 일찍 가는 것이 무조건 좋다. 단체 관광객과 같이 움직이면 제대로 구경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고민을 잠시 해보지만 그렇다고 시장을 포기하기엔 아쉽다. 오후에 볼까도 했지만 이왕이면 아침 시장이 활기차다.

 

 

 

셀축 7일장

 

 

 

버스 터미널 뒤편이라고 했는데 터미널 입구에서부터 장이 선다.

 

아침 830분에 갔는데 여전히 장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앞쪽으로 과일과 야채 시장이 넓게 자리 잡고 있고, 뒤편으로 의류와 잡화류가 자리를 잡고 있다.

 

 

 

코카서스 3국에서부터 느끼지만 이곳 사람들은 과일이나 야채를 매우 가지런하게 진열한다.

 

우리의 경우 마트나 백화점은 모르겠지만 시장은 보통 그냥 쌓아 놓고 판다. 반면에 이곳 사람들은 하나하나 닦아서 마치 성을 쌓듯 층층이 정리한다. 정성이 보통 아니다.

 

 

 

 

고대 도시, 에페스(Efes)

 

 

아쉽지만 장구경은 대충 하고 바로 에페스로 향한다.

 

에페스는 일반 도로를 따라 가는 길이지만 가로수로 덮인 인도가 넓게 나 있다. 한창 인도 공사를 하고 있다. 클래식하게 만드는 인도는 완공하면 멋일 것 같다.

 

 

 

9시 반 조금 넘어서 도착했다.

 

예상한 대로 입구부터 단체 관광객들을 실어 나른 버스로 가득하다. 입장료는 60리라. 입구 쪽에 있는 Church of Mary를 보고 지금은 에페스 원형 극장 위에 앉아 있다. 이곳 원형 극장은 파묵칼레(Pamukkale)의 그리스-로마 유적지인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원형 극장보다 관객석이 한 단 더 높은 3단으로 되어 있다. 규모는 좀 더 크지만 극장의 섬세함과 전망은 히에라폴리스 원형 극장이 좀 더 나은 것 같다.

 

 

 

원형 극장 가운데 앉아서 무대 쪽을 바라보면 왼편으로 직선으로 나 있는 길이 보인다.

 

이 길이 아르카디안 거리(Arcadian Street). 원래 이 길은 폭 14미터에 길이는 500미터 정도 되었다고 한다. 원형 극장에서 항구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한다.

 

 

 

지금은 비록 100미터 조금 안 되게 남아 있지만 폭 14미터의 거리가 전부 넓은 대리석으로 깔려 있고 양편에는 기둥이 세워져 있어서 예전의 웅장함을 능히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그 기둥들 뒤로는 상가와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고 하니 대단히 번화했을 것이다. 하긴 항구와 연결되는 길이니 얼마나 번잡했을까.

 

 

 

고대 도시인 에페스는 원래 항구 도시로 유명했다고 한다.

 

원형 극장에서 500미터의 아르카디안 거리를 걸으면 바로 항구로 연결되었다고 하니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원형 극장에서 바다가 보였으리라. 7세기를 전후해서 강에서 유입된 퇴적물들이 계속 쌓여 바다가 메워졌다고 하니 자연의 힘이란 대단하다. 지금은 에페스에서 바다를 가려면 버스를 타고도 한참을 가야한다. 항구 도시였던 에페스에 바다가 사라지니 도시는 쇠락할 수밖에 없었다.

 

에페스 원형 극장은 2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히에라폴리스의 원형 극장이 15천 명을 수용할 수 있으니 확실히 규모가 더 크다. 극장이 이 정도 규모라면 도시 인구가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현대 도시에서 1~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이나 체육관을 짓는다면 대체 인구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할까? 더욱이 고대에는?

 

에페스 지역에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7천 년 전부터라고 하지만 고대 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0세기 그리스인들이 소아시아 지역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리스인들이 진출하면서 에페스는 소아시아의 중요한 무역항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최고 전성기는 로마 시대였다. 원형 극장은 서기 1~2세기에 지어졌다고 하니 로마 시대에 지어진 것이다. 연극이나 공연 등의 문화예술 행사에 주로 이용되었지만 로마 말기에는 검투사나 맹수 싸움도 하곤 했다고 한다. 물론 연설, 토론 등의 정치적 행사도 있었을 것이다. 비록 그리스 시대보다는 활발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공화정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로마 시대에도 분명 정치적 행사를 많이 했을 것이다.

 

원형 극장에 앉아 있으니 어쩌면 고대 그리스인들이나 로마인들이 현대의 우리보다 정치적 인식이 더 높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문화적 수준 역시 높지 않았을까. 역사는 발전한 것이 아니라 후퇴한 것일까? 아니면 이제야 겨우 그 시절의 수준에 다시 도달한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원형극장을 나서서 조금만 걸어가면 에페스 최고의 건물이라는 셀수스 도서관(Library of Celsus)이 나온다. 하지만 셀수스 도서관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곳에서 연결되는 거리로 바로 들어선다. 최고의 건물은 마지막으로 보기로 하고.

 

들어선 거리는 쿠레테스 거리(Curetes Street).

 

셀수스 도서관에서 약간의 오르막길을 형성하면서 헤라클레스 문까지 연결된다. 아르카디안 거리보다는 좁지만 내 생각에는 이 길이 당시 에페스의 가장 중심거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 길에 주요 건물들이 많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Cleopatra)와 로마의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가 한때 여름을 보냈다던, 부유층이 거주하던 주거지도 있기 때문이다.

 

 

 

길이 끝나는 오르막 끝에 앉아 쿠레테스 길을 굽어보면서 가장 번성했던 로마 시대의 이곳을 상상해본다.

 

오후에 들어서니 단체 관광객들이 이 길에 모여들어 북적대니 쉽게 당시가 그려진다. 영화의 CG 장면을 만들듯 이들을 당시의 시민들로 하고, 주변의 건물들을 복구해서 당시의 모습을 그려보면 이 도시가 얼마나 번화했고 번성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상상만 해도 대단한데 당시는 어떠했을까? 이게 2천 년 전의 모습이라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경사지인 쿠레테스 길을 오르면 1,500석의 소극장이 나온다.

도시에 2개의 원형 극장이 있는 셈인데 소극장이라고 하지만 막상 들어 가보면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다.

 

 

 

그곳을 지나면 에페스 유적지의 또 다른 입구가 나온다.

 

그곳에서 단체 관광객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내가 들어온 문이 북문이고 이쪽이 남문이란다. 보통 단체 관광객들은 남문으로 들어와서 북문으로 나간다고 한다. 아무래도 남문에서 시작하는 편이 경사지를 내려가는 길이라 걷기에 편하다.

 

나는 뚜벅이니 다시 돌아가야 한다. 셀수스 도서관은 내려가는 길에 보려고 남겨 놓았다. 에페스 최고의 걸작이라는 셀수스 도서관은 정말 훌륭하다. 재건되어 있는 부분은 도서관의 앞문뿐이지만 그곳만 해도 대리석을 마치 나무처럼 조각해서 화려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기둥, 지붕 그리고 조각상들의 조각이 섬세하고 유려하다.

 

이 화려한 건물이 왕이나 소수 귀족만의 공간이 아니라 공공의 도서관 건물이라는 사실은 예술적 가치 이상의 사회적 가치마저 갖는다. 소수 권력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공공의 건물에 들인 공이니 그 의미조차도 갸륵하다. 이 점은 우리를 포함한 동양의 문화에 상당한 부족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공공 도서관 건물에 왜 이리 공을 들였는지는 좀 궁금하다. 하긴 공공 화장실과 목욕탕에도 공을 들인 사람들이었으니 도서관 건물에 이 정도 공을 들인 것은 이해가 가기도 한다.

 

도서관 공간이 좁아 보여 그 많은 장서를 어떻게 보관했나 싶었더니 지하에 장서를 보관했다고 한다.

 

 

 

셀수스 도서관을 등지고 왼쪽으로 마제우스와 미테리다테스의 문(Gate of Mazeus and Mitridates)을 나서면 거대한 아고라(Agora)터가 나온다. 옛날 아고라는 사람들의 만남과 토론의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장터이기도 했다는데 이곳의 안내문에도 아고라는 이름과 함께 상업적 시장이라는 부가 설명이 붙어 있다.

 

건물과 기둥들로 거대한 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가운데는 그냥 잔해들만 남아 있다. 광장 주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서 흥정도 보고 토론도 하고 대화도 했던 시끌벅적한 광장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고라 광장을 마지막으로 에페스 유적을 나서는데 아쉽다.

 

인적이 드문 이른 오전이나 늦은 오후에 다시 한 번 와서 이 고대의 유적을 조용히 거닐어 보고 싶다. 아니면 어디 고대의 잔해 위에 누워서 낮잠이라도 자고 싶다. 그러면 유적에서 스며있던 그때의 기운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아르테미스 신전
Temple of Artemis
 

 

 

돌아오는 길에 셀축 초입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Temple of Artemis) 터도 들려 본다.

 

인류 역사 최초로 전체 건물을 대리석으로 만들고, 높이 18미터인 127개의 원기둥을 세워 만들었다고 해서 고대 세계 7대 불가사리로 불린다는 건물인데 지금은 덜렁 기둥 2개만 남아 있어서 그때의 흔적을 찾아볼 수도, 상상해 보기도 어렵다.

 

 

 

에페스 박물관을 가봐야 하는데 에페스 유적지만으로도 머리가 꽉 차서 더 이상 가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 정도로도 셀축에 온 의미는 차고 넘친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