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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브라더(Big Brother)의 중국

경계넘기 2021. 4. 25. 15:14

 

 

빅브라더(Big Brother)의 중국

 

 

3년 전 가을 세계 여행을 하던 중 베이징(北京)의 한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하고 있었다.

 

그날 따라 유독 베이징의 하늘이 맑았다. 

카페 창밖으로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이 너무 맑고 쾌청했다.

 

날씨는 쾌청했다. 그런데 갑갑함은 떠나질 않았다.

 

 

 

중국에 들어오면서 인터넷 접속이 잘 안되고 있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의 미국 사이트만이 아니었다. 한국의 포털도, 블로그도 작동하지 않았다. 카카오의 카톡과 보이스톡은 아예 먹통이었다. 한국 메일도 먹통이다. 로그인 자체가 안 된다. 접속이 차단되는 것이 분명하다.

 

중국의 수도 베이징.

한국과 연락할 길이 막막하다.

 

예전만해도 베이징에서 인터넷 소통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중국은 파놉티콘(Panopticon)을 향해 가는 빅브라더(Big Brother) 세계 같다.

 

 

시진핑(習近平) 중국의 현실이다.

 

점점 감시와 통제가 심해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21세기의 중국은 다시 20세기 문화대혁명의 시기로 되돌아간다.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국가 통제는 한계에 직면하고, 정보의 자유가 보다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곳 베이징에 오면 무력화되었다.

 

빅브라더(Big Brother).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말이다. 정보 독점과 감시를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권력을 말한다. 선의로 사회를 보호하고 돌보려한다는 긍정적 의미도 가지고 있지만 주로 앞서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아니다. 빅브라더 권력은 겉으로는 긍정적 의미를 표명하면서 실제는 부정적 의미를 추구한다. 시진핑의 중국도 마찬가지다.

 

창살 없는 감옥이 따로 없었다.

보이진 않는 장막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았다.

 

파놉티콘(Panopticon)의 감옥에 갇힌 것 같았다.

 

 

 

파놉티콘(Panopticon).

 

영국의 공리주의 사상가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이 창안한 원형감옥을 말한다. 그리스어로 모두또는 두루를 의미하는 ‘pan’보다를 의미하는 ‘opticon’을 합성했다고 한다. 소수의 인원으로 다수를 감시하기 위한 건축양식이다.

 

파놉티콘은 이중의 원형 건물로 바깥 원형 건물에는 수감자의 방을, 가운데에는 감시자가 있는 원형 감시탑을 둔다. 수감자의 방은 감시탑에서 볼 수 있지만 수감자는 감시탑의 감시자를 볼 수 없다. 소수의 감시자가 다수의 수감자를 감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감자는 감시자를 볼 수 없기 때문에 24시간 감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파놉티콘 (출처: Wikipedia English)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는 파놉티콘이 사회 구조로 확대된 미래 사회의 모습이다.

 

여기서 감시탑의 감시자가 빅브라더다. 대중은 빅브라더를 볼 수 없지만 빅브라더는 모든 대중을 볼 수 있다. 대중은 빅브라더를 볼 수 없기에 항상 빅브라더가 자기를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나는 그 속으로 걸어 들어왔고, 누군가 이 이방인마저도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비행기, 컴퓨터, 인터넷 등 많은 현대 과학기술이 전쟁무기의 개발 과정에서 나오고 발전했다. 마찬가지로 지금 중국은 대중 통제를 위한 기술 개발 과정에서 정보통신과 IT 기술이 발전하는 것 같다.

 

중국에서는 기차나 지하철을 탈 때 개찰구에서 얼굴 인식을 한다.

박물관이나 기념관에 들어갈 때도 얼굴 사진을 찍는다. 

 

중국의 얼굴 인식이 기술이 발달한 이유다. 이제 13억이라는 인구는 의미가 없다. 1명이든 13억 명이든 컴퓨터에게는 그저 용량의 차이일 뿐이다. 중국 정부가 이 기술에 엄청난 돈을 투자한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의 발악일까.

아니면 정말 빅브라더의 세계가 올까?

 

정치학에 정치발전론이라는 과목이 있다.

 

정치발전론의 중요한 내용 중 하나가 경제 수준이 어느 단계 이상으로 성장하면 정치적 자유도 수반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으로 어느 정도 빈곤에서 벗어나면 정치적 자유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요구가 강해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한국이다.

 

그런데 현재 중국에서는 그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

 

 

 

달리 생각하면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통제 수위가 잘 안 먹혀 들어가고 있다는 의미일수도 있다. 기존의 통제로는 현재를 감당하지 못하니까 그 수위를 높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본다면 발악일 수도 있다. 언젠가는 폭발할지 모르는. 발악이 심해질수록 폭발 시각은 가까워진다.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중국만이 예외이기를 바라는 것은 중국 공산당만의 바람일 수 있다. 자유화의 수레바퀴에서 중국만이 예외라면 13억 중국인들에겐 비극일 뿐이다.

 

 

 

과연 언제까지 중국 정부가 지탱할 수 있을까?

지금 중국은 거대한 실험실이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