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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베트남(vietnam)

D+041, 베트남 하노이 3-1: 베트남의 하노이(Hanoi)와 호찌민시티(Ho Chi Minh City) 그리고 중국의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20181225)

경계넘기 2021. 3. 22. 09:48

 

베트남의 하노이(Hanoi)와 호찌민시티(Ho Chi Minh City)

그리고 중국의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

 

 

한국과 베트남의 현대사가 많이 닮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베트남도 식민지를 겪었고, 독립 후에는 민주주의 남과 사회주의 북으로 갈라져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우리는 한국 전쟁이고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은 휴전을 해서 지금까지 남과 북이 갈라져 있지만, 베트남은 사회주의 북베트남의 승리로 통일 국가를 이뤘다는 것이다.

 

문화적으로도 한국과 베트남은 많이 닮았다. 오랫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은 베트남은 한자와 유교 문화권에 속한다. 덕분에 동남아 문화와 함께 우리와 같은 동아시아 문화의 성격도 강하다. 문화가 비슷하다는 것은 삶의 방식이 비슷하다는 것. 논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베트남의 시골 풍경은 한국의 그것과 구분하기 어렵다. 그나마 다른 것이 있다면 군데군데 자라고 있는 야자수뿐. 그래서 베트남의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때에는 반드시 야자수 한 그릇을 끼워 넣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가 무슨 베트남이냐는 소리를 듣기 딱 좋다.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비교하면 한국과 많이 닮았지만 베트남의 대표적인 두 도시, 하노이(Hanoi)와 호찌민시티(Ho Chi Minh City)을 보면 중국의 대표적인 두 도시,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를 많이 닮았다. 하노이는 베이징과 호찌민은 상하이와 정말 많이 닮았다. 도시의 외형적인 모습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등 다방면에서 참 많이 닮았다.

 

하노이는 북부의 대표 도시로 베트남의 수도이자 정치의 중심이다. 마찬가지로 베이징도 북부의 대표 도시로 중국의 수도이자 정치의 중심이다. 반면에 호찌민은 남부의 대표 도시로 경제의 중심이다. 상하이 역시 남부의 대표 도시로 경제의 중심이다.

 

하노이와 베이징이 정치의 중심이 되고, 호찌민과 상하이가 경제의 중심이 덴 배경에는 사람들의 지역적 성향이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정치의 중심인 하노이와 베이징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고, 경제의 중심인 호찌민과 상하이는 개방적인 성향이 강하다. 보수적인 하노이와 베이징 사람들은 이념과 신념에 보다 더 가치를 두고, 개방적인 호찌민과 상하이 사람들은 실리에 보다 더 가치를 둔다. 그래서 하노이와 베이징이 사회주의 혁명의 중심이 되었고, 호찌민과 상하이는 경제개발, 즉 개혁개방의 중심이 되었다.

 

 

하노이
베이징

 

베이징과 상하이가 그렇듯, 하노이와 호치민 역시 다소 대립적이고 경쟁적이다. 이는 중국 북부와 남부 그리고 베트남 북부와 남부의 관계를 상징한다.

 

중국의 경우 베이징을 대표로 하는 북부 사람들은 남부 사람들을 돈이나 밝히는, 잔머리나 쓰는 사람들이라고 치부하곤 한다. 반면에 상하이를 대표로 하는 남부 사람들은 북부 사람들을 권력이나 추구하는 고지식하고 우둔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갈등은 가끔 남부의 분리 움직임으로까지 분출되곤 한다. 상하이를 위시한 선전(深圳), 항조우(杭州) 등의 남부 지방은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북부와 서부가 먹고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북부와 남부의 관계는 더 복잡하다. 베트남이 우리와 비슷하게 오랫동안 통일 국가였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재의 베트남 영토를 토대로 통일 국가가 형성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세기 초에야 현재의 베트남 영토 위에 통일 국가가 세워졌다. 그 마저도 19세기 말에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으니 통일 국가도 겨우 60년 정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독립 이후에는 다시 남북으로 갈라졌다가 1975년 베트남 전쟁이 종식되면서 북베트남에 의한 베트남 통일이 이루어졌으니 베트남 통일 국가의 역사는 모두 합쳐서 겨우 100년 정도 되었다.

 

이는 베트남이 오랜 시간 동안 분열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베트남의 역사는 하노이를 중심으로 북부에 살던 현 베트남 주류 민족인 킨(Kinh)족의 남하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기원전 2세기 무렵 북부에 처음 나라를 세운 베트남인은 약 1000년 가까이 중국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했다. 이후 남하를 시작하여 15세기 무렵 중부를 장악하고, 18세기 무렵에야 남부의 메콩강 유역까지 장악했다. 당시 중부에는 참족이, 남부에는 지금의 캄보디아인인 크메르인들이 주로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베트남의 남과 북은 민족 구성에서 문화까지 많이 다르다고 한다.

 

현대에 들어서는 이념적 지형이 베트남의 남과 북을 갈랐다. 1954년 독립과 함께 사회주의 북베트남과 민주주의 남베트남으로 갈라져 1975년까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렀으니 남과 북에는 오랜 앙금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베트남 정부도 베트남의 단합을 줄기차게 강조한다. 최근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단이 크게 각광 받고 있는 배경에는 2002년의 우리처럼 축구를 통해서 베트남인들의 단합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노이와 호치민이 축구 아래 너나 할 것 없이 하나가 되었으니 그 의미는 남다르다. 베트남 정부로서도 이 모두 더 값지고 효과적으로 베트남인을 하나로 만드는 것도 없을 터다. 베트남 총리가 스즈키 컵에서 우승한 박항서 감독을 얼싸안으며 엄지손가락을 번쩍 세운 것도 단순히 축구 때문만은 아니다.

 

중국과 베트남을 여행할 때마다 이런 생각은 지워지질 않는다. 이념과 권력의 베이징과 하노이 그리고 실리와 돈의 상하이와 호치민이 너무 비슷해서 나도 모르게 가끔 웃음이 나곤 한다. 어느 것이든 조화를 이룰 때 가장 값진 것이니 하노이와 호치민, 그리고 베이징과 상하이도 서로의 장점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길 바라마지 않는다.

 

외형적인 모습도 많이 비슷하다. 하노이와 베이징은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보니 도시도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반면에 경제의 중심인 호찌민과 상하이는 개방적인 성향이 강하다 보니 개발이 빨리 진행되어서 현대적인 모습이 강하다. 호찌민시티 중심의 호치민 광장에 가보면 광장을 둘러싸고 즐비한 높은 마천루들과 고급 쇼핑몰들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상하이의 와이탄(外滩)과 난징루(南京路)를 거닐다 보면 쭉쭉 뻗은 높은 고층 빌딩들과 호화로운 쇼핑몰을 볼 수 있다. 가장 빨리 현대화되고 상업화된 도시들이다.

 

 

상하이
호찌민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