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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041, 베트남 하노이 3-2: 천년의 도시, 하노이(Hanoi)의 역사와 문화 산책 1(20181225)

경계넘기 2021. 4. 1. 21:43

문묘

 

천년의 도시, 하노이(Hanoi)의 역사와 문화 산책 1

 

하노이(Hanio)는 천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다.

 

1010년 베트남 리() 왕조(1009~1225)에 의해 수도로 정해졌으니 하노이는 한 나라의 수도로만 천년의 세월을 보냈다. 19세기 잠시 수도의 자리를 내려놓긴 했지만, 19세기말 동남아를 지배한 프랑스의 행정 중심지로, 20세기 초에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수도가 되었다. 1954년 독립 이후로는 사회주의 북베트남의 수도였다가 베트남 전쟁이 끝난 1975년에는 통일 베트남의 수도로 지금까지 오고 있다.

 

수도로만 천년이지 도시로는 천년이 훌쩍 넘는다.

 

기원전 110년 중국의 전한(前漢)이 침범한 이래 베트남은 천여 년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이 시기에 중국이 하노이를 식민지 베트남의 정치 중심지로 삼았다. 특히 당나라()가 하노이에 안남도호부를 설치하고 남방 지배의 거점으로 활용하면서 하노이는 베트남의 중심 도시로 급성장했다.

 

그래서일까,

하노이는 베트남의 아린 상처들과 영광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고대의 중국 식민지, 근대의 프랑스의 식민지, 현대의 이데올로기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 치러진 수많은 전쟁의 상흔들. 아울러 중국과 프랑스와의 독립 전쟁 승리,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 치열한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에의 승리, 베트남 통일 그리고 개혁개방의 영광까지. 그래서 하노이에는 중국 문화, 프랑스 문화 그리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문화들이 곳곳에 공존한다.

 

그만큼 하노이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하노이의 굴곡진 역사를 따라 이 천년의 고도(古都)를 산책하는 것은 그런 면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복잡한 거리만큼이나 산만해 보이는 하노이와 베트남을 제대로 정리하고 이해하기도 쉽다.

 

 

중국 문화의 영향

 

일반 동남아 국가들과 달리 베트남은 한자와 유교의 중국 문화권이다. 오랜 세월 동안 중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타 동남아 국가들보다 베트남에 더 친근감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노이에도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문화 유적들이 여럿 남아 있다.

 

유교 문화를 대표하는 하노이의 유적지는 역시 문묘(文廟, Van Mieu)’. 1070년에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사원으로 세워졌고, 1076년에는 유학자를 배출하는 최초의 베트남 대학이 되었다. 우리의 성균관과 같은 곳으로 전통적인 베트남 양식의 건물들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의 향을 맡을 수 있는 곳이다. 아울러 조용하고, 잘 가꿔진 정원과 주변 공원은 복잡하고 시끄러운 하노이에서 안식과 휴식을 준다.

 

 

 

하노이 관광의 중심 호안끼엠 호수(Hoan Kiem Lake) 북단의 작은 섬에 있는 응옥 썬 사당(玉山祠, Den Ngoc Son)’도 볼만하다. 도시 안의 호수인 호안끼엠 호수와 어울려 좋은 풍광도 보여준다. 응옥 썬 사당은 13세기 몽고의 침략을 막아낸 쩐 흥다오(Tran Hung Dao) 장군과 대학자 반 승(Van Xuong) 등을 기리는 사당이라고 한다. 사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붉은색 다리를 건너야 한다.

 

 

 

 

동남아시아의 국가들은 대부분 소승 불교지만 베트남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대승 불교다.

 

하노이에 여러 불교 사찰이 있는데 관광객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사찰은 아마도 호찌민 묘소 근처에 있는 못꼿 사원(Chua Mot Cot)’일 듯싶다. 못꼿 사원의 한자 이름은 일주사(一柱寺). 해석하면 기둥이 하나인 절이다. 못꼿 사원은 부처님을 모신 경당이 연못 위에 기둥 하나로 세워져 있다. 독특한 모습이긴 한데 사실 사원 건물 하나가 전부다. 1049년에 세워져 역사가 오래된 사찰이라는 것 외에 이렇다 할 볼거리는 없다. 특별히 불교나 건축에 관심이 없는 여행자들에게는 호찌민 묘소와 호찌민 박물관을 둘러보고 잠시 거치는 곳이다.

 

 

 

 

사찰다운 모습을 보고 싶다면 떠이 호수(Ho Tay, 西湖)에 있는 쩐 꿕 사(Chua Tran Quoc, 鎭國寺)’를 가보라. 떠이 호수는 하노이 안에 있는 호수 중 가장 넓은 호수. 그 호숫가 섬 안에 있는 절이다. 사원은 육로 길로 들어갈 수 있다. 호안끼엠 호수에 있는 응옥 썬 사당의 좀 큰 버전으로 보면 된다. 하노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6세기에 지어졌다고 하니 중국이 베트남을 지배할 시기다. 제법 넓은 경내에 여러 동의 사찰 건물들 그리고 높은 탑과 부도들을 만날 수 있다. 여행객이 많은 못꼿 사원과는 달리 경건히 기도하는 하노이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울러 그곳에서 시원한 떠이 호수의 풍경도 볼 수 있고, 호안끼엠과 달리 조용하고 시원한 호수 주변을 산책할 수도 있다.

 

 

 

 

프랑스 문화의 영향

 

베트남은 1883년부터 1954년까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정확히 말하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세계대전이 종결된 1945년부터 1954년까지는 프랑스군과의 전쟁 기간이었지만, 여하튼 반세기가 훌쩍 넘는 시기 동안 프랑스의 문화적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대표적인 프랑스풍의 유적지는 호안끼엠 호수 서쪽에 있는 요셉 대성당(St. Joseph Cathedra)’이다. 호수 서쪽 뒤편으로 복잡한 구시가지 도로를 찾아 들어 가다보면 주변 건물들과 다른, 다소 생뚱맞은 고딕 양식의 중세 유럽 건물 하나가 보인다. 요셉 대성당이다. 1886년에 지어졌으니 프랑스가 베트남을 막 지배하기 시작한 시기에 건설한 성당이다. 전형적인 유럽풍의 성당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길고 하얀 예배당이 인상적이다. 성당 앞 작은 광장 주변으로는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모여 있어서 하노이 안의 작은 유럽을 느낄 수 있다.

 

 

 

다음은 호찌민 묘소 북단에 있는 주석궁(Phu Chu Tich Nuoc)’. 유독 노란색의 유럽풍 건물이 녹색의 정원 속에서 바로 눈에 띈다. 식민지 시절 프랑스가 총독부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우리의 조선총독부와 같은 건물이다. 호찌민 시절부터 베트남 국가 주석이 업무를 보는 주석궁으로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프랑스식 건물로 화려한 외관이 볼만하다. 항상 잠겨 있어서 담 밖에서만 봤다. 주석궁이라 들어갈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딱 찍어 말하면 프랑스 영향의 유적지는 요셉 대성당과 주석궁 정도만 생각나지만 사실 프랑스 문화의 영향은 하노이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하노이 거리를 걷다보면 유럽풍의 옛 건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나마도 치열했던 베트남 전쟁 기간 미군의 폭격에서 살아남은 건물들이다. 전쟁의 피해만 없었다면 하노이는 중국의 칭다오(靑島)처럼 식민지 시대에 지은 유럽풍의 건물들이 많았을 게다.

 

하지만 뭐니 뭐니 프랑스의 문화적 영향은 베트남인들의 생활 속에 녹아 있다. 베트남인들에게는 커피 마시는 문화가 일상화되어 있다. 거리에는 숱한 카페들을 볼 수 있고, 거리 노천에도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많은 베트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른 아침에도 출근하기 전에 커피 한 잔 마시는 직장인들로 카페는 항상 인산인해다. 여기에 베트남 샌드위치 반미(Banh Mi)와 같은 베이커리 문화까지. 이들 문화들은 프랑스가 베트남을 지배하는 시기에 들어와서 자연스럽게 베트남인들의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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