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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페타르: 세계대전의 서막(King Petar Ⅰ)

경계넘기 2021. 12. 22. 15:26

(출처: 네이버영화)

 

제 목 : 킹 페타르: 세계대전의 서막(King Petar )

감 독 : 페타르 리스톱스키(Petar Ristovski)

국 가 : 세르비아, 그리스

제 작 : 2018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Beograd)를 걷다보면 폭격 맞은 듯한 건물을 만난다.

 

그것도 도시의 중심가 도로에서. 아닌 게 아니라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 나토(NATO)군의 공습을 맞은 건물이다.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두 동의 건물은 세르비아의 전() 국방성과 육군 본부 건물이다.

 

 

 

20세기 말, 1990년대 내내 세르비아는 전쟁과 학살의 중심에 있었다.

 

세르비아는 원래 구()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주축 국가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발칸 반도의 6개 공화국, 즉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그리고 세르비아가 연합해 만든 나라다. 하지만 연방을 세우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끈 티토(Josip Broz Tito)1980년 사망하고, 1980년대 말 동유럽 사회주의권 그리고 1991년에는 구()소련마저 해체되자 구유고 연방도 시대의 흐름에 역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구유고 연방은 폭력적인 해체의 길을 걸었다.

 

1991년부터 1999년까지 8년 간 4번의 전쟁을 치렀고, 전쟁 중에는 무수한 집단 학살이 일어나 인종 청소(ethnic cleaning)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4번의 전쟁 중 마지막 전쟁이 코소보 전쟁이었다. 코소보 전쟁에서 세르비아가 집단 학살과 인종 청소를 계속하자 참을 수 없었던 나토가 베오그라드까지 폭격했다.

 

세르비아는 왜 그토록 구유고 연방의 해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일까? 마찬가지로 구유고의 공화국들은 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만들었던 연방에서 왜 그토록 독립하기를 원했던 것일까?

 

거기에는 세르비아니즘(Serbianism)이 있다.

 

세르비아니즘은 세르비아를 중심으로 발칸의 남슬라브 국가들-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을 통일해서 대()세르비아를 건설하고자 하는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말한다. 이는 대등한 관계의 연합이나 연방이 아니라 세르비아 중심의 통일, 즉 발칸의 제 민족들을 세르비아로 통합하려는 사상이다.

 

구유고 연방을 세운 티토는 각 민족과 공화국을 존중하며 대등한 관계에서의 연방을 지향했다. 이를 위해 세르비아로의 통합, 즉 세르비아니즘이 아니라 발칸의 모든 민족들을 평등한 관계에서 아우르는 새로운 유고슬라비아 민족, 즉 유고슬라비즘(Yugoslavism)을 형성하려고 했다.

 

사단은 티토 사후에 일어났다.

 

티토 이후 세르비아의 권력 중심에 있던 슬로보단 밀로세비치(Milosevi Slobodan)가 자신의 권력 획득과 유지를 위해 세르비아니즘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세르비아인들에게 대세르비아 건설의 욕망을 불 지피면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지도자로서 자신을 부각시키고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려했다. 세르비아니즘 강조는 곧 연방을 구성하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배타와 차별 그리고 지배의 공포로 다가왔다. 어차피 티토와 사회주의라는 연방 결속의 구심점이 사라진 이상 차별과 공포 속에서 연방에 남을 공화국은 없었다.

 

얼핏 세르비아니즘은 그저 허황된 꿈처럼 보인다.

 

세르비아니즘은 세르비아가 가장 잘 나갔던, 14세기 초반 중세 세르비아 왕국의 영토를 기반으로 한다. 당시 세르비아 왕국은 발칸의 대부분을 장악할 정도로 강력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도 잠깐 곧 오스만 제국에 패하여 왕국은 사라지고 그 지배에 들어갔다. 세르비아니즘은 바로 그때의 영광과 영토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한반도와 만주를 호령하던 옛 고구려의 영광과 영토를 실현하자고 한다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구유고슬라비아 (출처: wikipedia)

 

하지만 세르비아에는 그것이 단지 허황된 꿈만이 아님을 보여준 사람이 있었다.

20세기 초 세르비아의 국왕이었던 페타르 1(Petar )가 바로 그다.

 

1904년에 즉위한 페타르 1세는 세르비아를 발칸에서 가장 강력한 근대 왕국으로 만들었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함께 근대적인 시각을 가졌던 페타르 1세는 시민 자유에 바탕을 둔 근대적 입헌 정부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1912년에서 1913년까지의 1, 2차 발칸 전쟁에서는 세르비아군의 총사령관으로 직접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현재의 코소보와 마케도니아까지 영토를 확장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에는 마침내 몬테네그로까지 통합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막 독립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함께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세르비아 왕국(후에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개칭)을 세우고 연합 왕국의 국왕에 올랐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세워진 구유고 연방의 전신이 페테르 1세가 세운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세르비아 왕국이었으니 그는 세르비아니즘을 20세기 초입에 현실화시켰던 세르비아의 영웅이었다.

 

 

페테르 1세 (출처: wikipedia)

 

영화 킹 페타르: 세계대전의 서막(King Petar )’은 이런 그를 그린 영화다.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의 초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침입에 맞선 페타르 1세의 이야기를 전한다. 1914년부터 고령의 페타르 1세는 그의 아들 알렉산다르(Alexander)를 섭정자로 두고 자신은 시골에 머물렀다. 1918년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청년에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암살당하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의 서막이 울린 것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이때부터 시작한다.

 

한적한 시골에서 시간을 보내던 페타르 1세에게 전쟁에 참여해 달라는 급보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황태자로서는 전쟁을 제대로 이끌 수 없다고 생각한 군 수뇌부의 판단이었다. 군복을 입은 페타르 1세는 노구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간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저런 사연을 가지고 전쟁에 참여한 세르비아 병사들을 주로 잡는다.

 

영화의 전반은 오스트리아군과 접전을 벌이는 세르비아군을 그린다. 전쟁에 직접 참여해 싸우고, 부대를 시찰하는 페타르 1세의 모습도 간간히 나온다. 초기 접전을 벌이던 페타르 1세의 세르비아군은 독일과 후방의 불가리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편에서 서서 참전하자 급격히 무너졌다. 남과 북의 전선에서 밀리던 페타르 1세는 급기야 험준한 산맥을 넘어 알바니아로 후퇴하기로 결정한다.

 

 

(출처: 네이버영화)
(출처: 네이버 영화)
(출처: 네이버 영화)
전선의 페타르, 실제 모습 (출처: wikipedia)

 

영화의 후반은 세르비아 병력들과 수만의 세르비아 피난민들이 알바니아로 철수하는 모습을 그린다. 전쟁에 지친 병사들이 오스트리아군과 불가리아군에 쫓겨 눈보라가 몰아치는 험준한 산맥을 넘는다. 끌고 갈 수 없는 대포 등의 무기는 파괴하여 버린다. 피로와 추위, 굶주림에 지친 병사들이 산을 채 넘지도 못하고 죽어가고, 겨우 산을 넘어 알바니아 해변에 도착한 병사들도 피로와 굶주림에 죽어간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후퇴 길의 페테르 1세도 잡는다. 영화는 그가 왕인가 싶을 정도로 일반 군인들에 섞여 함께 움직이는 왕의 모습을 그린다. 군인들과 함께 눈길을 걷고, 눈길에 기대 휴식을 취하고, 작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눈길을 헤매기도 한다.

 

정말 그랬을까? 정말 그랬다면 대단한 왕이고, 그렇지 않다면 영화는 너무 과장되었다. 하지만 직접 수많은 전장을 누비고, 또한 전제 군주제를 버리고 과감히 입헌 군주제를 세운 국왕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그리 과한 과장도 아니리라 싶다.

 

 

후퇴 중의 페타르, 실제 모습 (출처: wikipedia)

 

영화는 그를 전쟁 영웅으로 그리고 있지 않음은 분명하다.

 

영화 초반 전쟁에 나서 달라는 급보가 계속 전달되는 와중에 한 젊은 부관에게 그가 한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때 그는 직접 군복의 단추를 달고 있었다.

 

젊은 친구들은 살아남은 자들을 최고로 여기네만 먼저 죽는 게 실상은 운 좋은 거네. 형제들의 죽음을 안 봐도 되니까....... 불굴의 용기는 미덕이 아니라네. 전쟁은 어리석은 혼란일 뿐이야. 죽은 자는 생명을 빼앗기고, 산 자는 영혼을 빼앗기지. 전쟁이라면 진절머리가 나네.

 

 

영화적 재미도 나쁘지 않다.

 

특히 영화 후반부 눈 덮인 험준한 산맥을 넘어 후퇴하는 장면은 너무도 실감나서 보는 사람마저도 춥고 배고프게 만든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