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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 여행/조지아(Georgia)

D+144, 조지아 바투미 13: 흑해(Black Sea)와의 작별(20190407)

경계넘기 2020. 8. 11. 14:44

 

 

흑해(Black Sea)와의 작별

 

 

이번 주는 날이 좋다.

 

햇살이 좋은 날이면 흑해는 그 햇살을 받아서 더욱 푸르다. 왜 이름을 흑해라 지어서 사람들에게 흑해 물빛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을 주었을까! 동쪽에서 서쪽으로 햇살 비스듬히 비취는 아침에는 흑해의 빛깔이 푸르다 못해 파랗게 빛난다. 그 파아란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내 눈도 맑아진다. 맑아지는 느낌이 아니라 진짜 맑아진다. 눈이 선명해진다.

 

오늘은 아침 햇살이 더 좋다.

 

바다도 더욱 파랗고. 그런 모습만 보고 있어도 너무 행복하다.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쉽다. 아제르바이잔의 바쿠(Baku)도 아르메니아의 예레반(Yerevan)도 떠날 때 발걸음이 무거웠다. 조지아에서는 흥미가 조금 떨어졌다 생각했는데 흑해가 다시 떠나는 발걸음을 잡는다.

 

그냥 한 달 더 살고 싶다. 그냥 살까!

 

 

 

가면 갈수록 더 좋은 곳이 생기니 이렇게 한정 없이 있다간 어느 세월에 내 여행을 마칠지 알 수가 없다. 아니다. 돈이 떨어져 더 좋은 곳 근처도 못가고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떨어지지 않더라도 발길을 옮겨야 한다.

 

나중에 다시 올 것을 기약하고.

 

오후에는 바다로 나간다. 흑해의 몽돌해변을 걷고 또 걷는다. 처음에는 자갈밭 걷는 게 익숙하지 않았는데 한 2주일 매일 걸었더니 이제는 익숙해진 느낌이다. 발밑에서 몽돌 구르는 소리도 기분 좋다.

 

 

 

오늘은 바람도 없고 햇살마저 너무 따스해서 몽돌 위에 누었다.

 

불편할 것 같아서 지금까지 눕지 않았는데 막상 누우니 정말 편하다. 모래보다 더 편한 느낌. 더욱이 햇살을 몽돌이 머금어서 등에 따뜻한 온기까지 전해진다. 잠이 사르르 들려고 할 정도로. 노래를 듣던 이어폰을 빼고 몽돌을 통해 전해 오는 파도 소리를 듣는다. 눈은 파란 하늘과 파한 바다가 만나는 수평선을 바라본다. 몽환적이다. 세상이 온통 파랗다. 몽돌에 전해지는 파도 소리마저도.

 

 

 

숙소에 들어와서는 떠날 준비를 한다.

 

오전에도 한 차례 돌렸던 세탁기도 저녁에 한 번 더 돌린다. 내일 입고 갈 옷들 위주로. 건조해서 하루 저녁이면 다 마른다. 낮에는 햇살이 너무 좋아서 배낭을 꺼내서 발코니에서 햇빛 마사지를 시켰다. 소독도 되고, 혹 있을지 모르는 빈대도 잡고.

 

뽀송뽀송해진 배낭에 2주 동안 편하게 널부러져 있던 옷가지들을 다시 돌돌 말아서 집어넣는다. 배낭여행자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아침 일찍 출발할 생각인지라 미리 짐을 다 챙겨 놓는다. 2주 동안 아파트에서 퍼져 있었기 때문에 짐들마저도 이곳저곳 퍼져 있어서 아침에 급하게 싸다보면 놓고 가기 딱 좋다. 하나하나 차곡차곡 챙겨서 배낭에 담는다.

 

배낭을 싸고 있으니 떠난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다시 새로운 곳에 간다는 설레임과 긴장감도 생긴다.

 

 


 

 

원래 계획은 바투미(Batumi)에서 가까운 터키의 흑해 연안 도시인 트라브존(Trabzon)을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바투미에서 원 없이 흑해를 보고 나니 굳이 트라브존을 갈 필요를 못 느낀다. 그래서 바로 터키의 중앙부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괴레메(Gὅreme)로 가기로 했다.

 

내일 로컬 버스만을 이용해서 터키를 넘을 생각이다.

 

우선은 이곳에서 16번 시내버스를 타고 국경 마을 Sarpi로 가서 걸어서 국경을 넘는다. 국경을 넘으면 다시 터키 로컬 버스를 타고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호파(Hopa)로 간다. 그리고 그곳 터미널에서 괴레메 근처의 도시인 네브셰히르(Nevşehir)로 가는 버스를 탈 생각이다. 네브셰히르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괴레메로 가는 일정이다. 어느 것 하나 예약을 했다거나 확실한 것은 없다. 가서 부딪쳐봐야 한다. 그래도 앞서 간 사람들이 있으니 맨땅에 헤딩하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문제는 있다.

 

첫째는 내가 가진 터키 돈이 지난번 한국 친구가 준 7리라가 전부라는 사실이다. 국경에는 환전소나 ATM이 없다고 하니 국경에서 호파 가는 버스비가 7리라 이상이면 난처해진다. 그래서 소액 달러 몇 장을 지갑에 담아 두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소액 달러를 가지고 있다. 1달러, 5달러, 10달러. 환전용이 아니라 그냥 내는 용도다. 거스름돈을 못 받는다는 가정 아래 현지 돈이 없을 때 금액에 가장 가까운 달러를 사용하는 것이다. 대부분 국가에서 달러는 받기 때문이다. 터키처럼 자국 화폐의 가치가 사정없이 떨어진 나라들에서는 더 좋아한다.

 

둘째는 호파에서 네브셰히르 가는 버스의 좌석이 없을 수도 있다. 예약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건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말이 아니라는 것과 호파에서 네브셰히르로 가는 버스 운영회사인 메트로(Metro)의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아직 좌석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현지에 가서 버스가 없다면 호파에서 일박을 하거나 거기서 트라브존으로 갈 생각이다. 호파에서 트라브존으로 가는 버스는 여러 편 있다.

 

셋째는 네브셰히르에서 괴레마 가는 길이다. 네브셰히르 터미널에서 괴레메로 무료 셔틀 버스를 타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고, 무료 셔틀 버스가 없어서 택시를 타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단 무료 셔틀을 알아보고 없다면 네브셰히르 시내로 가서 괴레메 가는 버스를 타고 들어갈 생각이다.

 

일단 이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최선의 방법은 일찍 국경을 넘는 것이다. 일찍 호파에 갈수록 버스표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찍 국경을 넘으려는 다른 이유도 있다. 조지아에서 터키로 넘어가는, 이 국경에 사람이 엄청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한번 사람이 몰리기 시작하면 도태기 시장이 된다고 한다. 새치기도 치열하고. 그걸 피하려면 빨리 움직이는 것이 상책이다. 1시간 게으름을 피우면 1시간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2~3 시간 늦어진다. 특히 이번 같은 경우에는 버스를 놓치면 하루 이틀도 늦어질 수 있다.

 

여기서 바로 트라브존으로 가는 국제버스도 있지만 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부분 국제버스들은 빨라도 9시나 10시에 출발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리는 시각에 국경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제버스들이 오는 시각이 바로 국경이 붐비는 시간이다.

 

그러니 국제버스가 오기 전에 국경을 넘어야 한다. 그렇다고 국경 여는 시간이 있으니 한정 없이 빨리 갈 수도 없다. 터키는 조지아 보다 시차가 한 시간 더 늦으니 그것도 고려해야 한다.

 

내일 아침 8시에 숙소를 나가서 9시쯤 국경에 떨어지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9시면 8시인 터키와 함께 막 국경을 열 시간으로 생각된다. 아니면 좀 기다리면 되고.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넘어올 때도 새벽에 국경에 떨어졌었다. 문이 열리길 기다려서 외국인으로는 가장 먼저 국경을 넘었었다. 베트남에서 라오스 넘어올 때는 국제버스를 이용했는데 버스가 이른 새벽에 가장 먼저 국경에 도착했다. 버스가 국경 앞에서 기다리다 국경 열자마자 넘었다. 라오스에서 태국 넘을 때도 비슷했다. 덕분에 붐비지 않고 정말 수월하게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럴 생각이다.

 

시간이 많이 남으면 호파라는 도시를 구경하면 되니 문제될 것은 없다.

 

짐을 챙기다 보니 일몰이 질 시간이다. 이제 정말 흑해와 마지막 작별을 할 시간이다. 어제 레드 와인을 다 마셔서 오늘은 화이트 와인을 들고 흑해의 일몰을 본다. 해도 이별이 섭섭한지 맑은 날임에도 구름 뒤로 숨는다. 그 덕에 오히려 직접 해를 바라볼 수가 있다. 구름 때문에 더욱 붉게 물든 흑해의 일몰이 오늘 따라 더 예쁘고 한편으로는 서글프다.

 

 

 

잘 있거라 흑해야. 그 동안 고마웠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