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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 (라다크, 라자스탄, 델리)

라자스탄 14: 흐린 하늘 속의 우다이푸르 풍경(20170803)

경계넘기 2017. 12. 29. 19:32

 

2017. 8. 3.  .    "흐린 하늘 속의 우다이푸르 풍경"

 

아침에 일어나서 6시 반이 조금 넘은 시간에 산책을 나갔다. 이번에는 우리 숙소 뒤편의 골목길을 걸었다. 길이 많이 깨끗하다. 어제에 비해. 자세히 보니 청소부들이 거리를 청소하고 있었다. 어제는 아마 거리 청소부들이 청소하기 전에 나가서 거리가 그렇게 지저분했나 보다. 예전에 인도 현지분이 이른 아침에 나가면 길이 지저분하다고 했는데 그 말을 이해하겠다.

 

사람들도 열심히 청소를 하고, 거리 청소부들도 청소를 하고. 이 시간에 맞춰서 사람들이 거리 청소부들이 끄는 리어카에 쓰레기도 버린다.

 

우다이푸르의 집들은 문 좌우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다들 서로 다른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것은 아니고, 인도 전통옷들을 입은 무사나 무희들이 그려져 있다. 때론 코끼리를 탄 전사와 무희들이 그려져 있기도 하고. 아무래도 무슨 종교적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문 위에 꽃들이 매달려 있고, 바닥에 기하학적 문양이 있는 것을 더욱 그렇다.

 

 

 

 

 

 

 

 

좁은 골목은 어떤 규칙성이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이리저리 나있다. 좁은 골목길을 사이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1층에는 햇빛 한 점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 축축하고 답답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예전 어렸을 때 서울 달동네의 모습 보다는 나아 보인다.

 

 

 

 

오늘도 아이들은 예쁜 교복을 입고, 어떤 아이들은 릭샤를, 어떤 아이들은 노란색 스쿨버스를 타고 서로들 등교하기 바쁘다.

 

, 그러고 보니 아침에 소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을 간혹 볼 수 있었다. 풀을 베어다 소들에게 나눠주는 사람도 있고, 간혹 어떤 신사분들은 짜파티를 소에게 건네주기도 한다. 소가 짜파티를 정말 잘 먹는다. 좀 퍽퍽하지 않나.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보다는 훨씬 낫다.

 

골목길이 하도 복잡해서 길을 제대로 알 수는 없다. 다행히 호수에 둘러싸인 곳이라 대충 방향만 잃지 않으면 길을 잃지는 않는다. 북쪽을 향해 걸었더니 피촐라(Pichola) 호수 안쪽 전경이 나온다. 호수의 막다른 안쪽이라 물은 다소 탁하면서 녹조가 꼈지만 그래서 오히려 주변의 녹지와 주택들과 잘 어울린다. 녹색 호수표면에 비치는 주변 건물의 반영들이 잿빛 하늘과 어울려 오히려 몽환적이다.

 

 

 

 

 

 

 

 

 

1시간도 채 못 걸은 것 같은데, 살짝 가랑비가 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당장 비가 쏟아져도 이상할 것 없는 날씨인지라 숙소로 발을 옮겼다.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옥상에 올라오니 비가 제법 내린다. 서둘러서 숙소에 들어온 것이 다행이다.

 

지금 비가 내리는 호수는 안개에 휩싸여 있다. 안개에 쌓여 있으니 호수와 안개의 도시인 춘천과 더욱 닮아 보인다. 안개에 쌓인 피촐라 호수, 한 폭의 동양화 같아서 더욱 정겹다.

 

 

 

 

우리 숙소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시티 팰리스(City Palace)도 안개에 휩싸여 그 신비로움을 더 한다. 시티 팰리스는 우다이푸르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자이살메르(Jaisalmer)에 자이살메르성(Jaisalmer Fort), 조드푸르에 메헤랑가르성(Mdherangar Fort)이 있다면 우다이푸르에는 시티 팰리스가 있다. 우다이푸르에 왕조를 연 메와르 왕조의 궁전이다. 지금은 박물관과 호텔, 그리고 왕실 가족의 거주 공간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영화 007 시리즈의 <007 옥터퍼스>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시티 팰리스 입구까지는 가봤지만 들어가지는 않았다. 한 지역을 오래 다니다보면 비슷한 것을 하도 많이 보게 되니 식상해진다. 게다가 최근 인도는 외국인의 유적 입장료를 이전보다 거의 3배 이상 올려나서 너무 비싸다. 뿐만 아니라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가면 거의 입장료에 준하는 카메라 촬영권을 사야만 한다. 선조의 유물을 가지고 장사 속에 열 올리는 후손들에게 지친다. 그리고 이렇게 숙소 옥상에서도 아침, 저녁으로 한 없이 볼 수 있는데 굳이 들어갈 필요까지 있겠는가?

 

 

 

 

 

 

 

 

 

오늘은 우리 숙소 편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었다. 시설도 좋고 테이블이 바로 호수 옆이라 분위기도 좋다. 호수 맞은편으로 가트(Gaht)들과 바고르 키 하벨리(Bagore-Ki-Haveli)라는 궁전 못지않은 웅장한 대저택 건물들도 바로 보인다. 여기서 보니 자주 갔던 진저(Jinger) 카페 좌우에도 가트가 있다. 사람도 우리뿐이고 와이파이는 지금까지 인도 최고다. 다만, 깔끔하긴 한데 가격 대비 음식의 양이 너무 적다.

 

 

 

 

 

 

 

 

 

 

아침을 먹은 레스토랑 쪽에서 사람만 다니는 다이지 다리(Daiji Bridge)를 건너가서 시가지를 둘러봤다. 레스토랑에서 바라봤던 바고르 키 하벨리 옆에 있는 가트에서 다시 레스토랑 쪽을 바라보니 색다르다.

 

 

 

 

 

 

호숫가에 바고르 키 하벨리(Bagore-Ki-Haveli)는 궁전 못지않은 대저택이다. 18세기 말 수상을 역임했던 세도가가 지었다고 하는데 방만 무려 138개라고 한다. 조선시대였다면 100개를 채우지 못했을 터인데. 지금은 박물관과 공연장으로 사용된다.

 

 

 

 

 

 

 

 

아침을 허접한 샌드위치로 때웠더니 배가 고프다. 우다이푸르 구시가지를 이리저리 걸어봤는데 배고파서 그런지 몸이 힘들다. 살이 많이 빠졌나 보다. 살이 좀 있으면 비축된 영양분이 있어서 좀 굶어도 힘이 들거나 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가끔 마른 친구들이 밥을 안 먹으면 몸이 떨린다거나, 신경질이 갑자기 늘어나기도 한다고 하던데, 갑자기 그 말이 이해가 되는 것은 무슨 일일까? 갑자기 밥 먹고 싶다는 욕구가 강렬해진다.

 

항상 가는 곳, 수제비 먹는 곳에 가서 둘이서 세 그릇을 시켰다. 그랬더니 네 그릇을 서비스로 준다. 단골이 좋다. 수제비를 푸짐히 먹으니 이제야 힘이 난다. 그렇게 먹고도 숙소로 돌아올 때 맥주 한 병을 사서 들어왔다.

 

축적된 지방분이 없어질 정도로 살이 빠졌다는 생각이 드니 기분이 좋다. 여행 다이어트란 말을 자주 하지만, 이렇게까지 여행을 하면서 살이 빠져보긴 처음이다. 인도 음식이 맞지 않을 뿐더러, 술 먹기도 까다로워서 술을 자주 마시지 못하니 살이 빠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한국식당 없었으면 거의 굶어 죽을 판이다.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 중에서 인도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여자들이고, 싫어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남자라고 하던데 그 이유를 알겠다.

 

기본적으로 남자들이 인도를 좋아하기가 어렵다. 음식인 커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고기 먹기 힘들지, 술 먹기 힘들지 무슨 힘으로 여행을 하라는 것인지. 인도인들이 여자들에게 특별히 친절하다는 설명은 내가 여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음식문화만 놓고 본다면 확실히 남자들에게 불리하다.

 

인도 음식은 종류가 많다. 종류가 많긴 하지만 크게 보면 대부분은 커리 종류다. 우리로 치면 반찬이 많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김치 종류만 있다는 격이다. 배추김치, 총각김치, 물김치, 오이김치, 파김치, 깍두기 등등 종류가 많아 보이지만 다 김치다. 마찬가지로 인도 음식도 종류는 대단히 많은 것 같은데 시켜놓고 보면 대개 커리다.

 

이번 인도 여행 중에 다행인 것은 탄두리(Tandoori) 치킨 하나라도 건졌다는 것이다. 인도 음식 중 나에게 가장 맞는 것은 현재까지 탄두리다. 맛도 좋은 것 같고, 게다가 고기고. 탄두리라도 없었다면 인도 음식 중 먹는 것이 거의 없을 뻔했다. 한국의 인도 레스토랑에서 먹을 때는 그렇게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는데. 우다이푸르에 와서는 매일 1닭이다.

 

지금 내가 묵고 있는 드림 헤븐(Dream Heaven) 게스트하우스의 루프탑 식당은 탄두리 한 마리가 3백 루피다. 음식 값이 비교적 쌌던 레에서도 반 마리에 270루피였다. 보통 탄두리 한 마리가 5, 6백 루피였는데, 이곳은 300 루피. 어제는 자주 시켜 먹었더니 지금까지 인도에서 먹어본 탄두리 중에서 가장 큰 닭을 주었다. 인도식 치맥, 탄두리와 맥주는 내가 발견한 인도 음식 중 최고다.

 

오늘밤이 우다이푸르에서도 마지막 밤이다. 이 밤이 지나면 내일 델리(Delhi)로 가는 기차를 탄다. 아니 이때까지만 해도 그런 줄 알았다. 왜냐고? 우리는 지난번에 델리에서 우다이푸르에서 델리 가는 기차표를 이미 사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다이푸르 마지막 만찬으로 숙소의 루프탑 식당에서 탄두리와 인도 백반이라는 탈리(Thali)를 시켰다. 탈리의 다양한 색과 탄두리의 빨간색이 묘한 화려함을 준다.

 

 

 

 

 

만찬을 즐기고 후식으로 차를 마시고 있는데 형이 내일 타고 갈 기차 티켓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뜸금 없이 출발역 이름이 우다이푸르가 아닌 것 같다고 한다. 기차표의 인쇄가 흐릿할 뿐만 아니라 선 상에 출발지와 도착지가 찍혀 있어서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니 우다이푸르가 아니라 우담푸르(UDHAMPUR)로 되어 있다. 아마도 델리역에서 프린트가 흐리게 나와서 형이 제대로 확인을 못했던 모양이다.

 

어쩐지 송 선배와 신 양이 탄 기차와 시간과 가격이 다르더니만, 그때는 그냥 다른 기차라고만 생각했다. 어제 저녁에 내가 표를 확인할 때도 시간과 좌석 등을 확인했지 설마 다른 지역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형의 말로는 델리 기차역에서 역무원이 잘못 준 것 같다고 한다. 숙소 직원에게 물어보니 우담푸르라는 곳은 잠무 & 카슈미르에 있단다. 자기들도 몰라서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고 말해 준 것이다. 잠무 & 카슈미르에서 왔는데 다시 가야할 판이다.

 

 

 

 

형이 인도 기차앱을 통해 알아보니 며칠 이내로는 일반표가 없단다. 내일 기차로는 딱갈표도 없단다. 별 수 없이 내일 하루 더 우다이푸르에 머물기로 하고, 내일 기차역에 가서 표를 환불하고 내일 모레 가는 딱갈표를 구하기로 했다.

 

기차표 환불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 부분 손해는 불가피할 것 같다. 그래도 귀국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큰 문제는 없다. 정말 다행인 것은 내일 기차역에서 알게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껏 짐 싸서 역에서 알았다면 정말이지 뭐 될 뻔 했다. 저녁 먹고 열심히 기차표를 들여다보고 있더라니, 불행 중 다행이다.

 

덕분에 우다이푸르에서 하루를 더 보내게 되었다. 날씨가 좋아서 나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꼭 좋지만도 않다. 뭐랄까 우다이푸르는 나에게 너무 무료하고 심심하다 할까? 호수만 지켜보고 있기에는 너무 심심하고 무료하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