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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 (라다크, 라자스탄, 델리)

라자스탄 16: 다시 뉴델리로(20170805)

경계넘기 2018. 1. 29. 10:36

 

2017. 8. 5.  맑음.    "다시 뉴델리로"

 

오늘은 이번 인도 여행의 마지막 여정인 뉴델리로 출발하는 날이다. 마지막 여행지는 항상 새로운 출발이라기보다는 여행을 마무리 한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게다가 뉴델리는 이번에 가면 두 번째다. 미지의 여행지는 아니다. 당연히 긴장과 흥분보다는 여행의 마무리라는 안도가 더 강하게 들 수밖에 없다.

 

그간 멍을 많이 때렸는데 오늘도 변함없이 오전, 오후로 멍을 때리기로 한다. 우다이푸르가 멍 때리기 좋은 곳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답답하다. 가는 곳이 너무 빤하기 때문일까? 보는 곳이 너무 제한적이라 그런 것일까? 잘 모르겠지만 무료하고 답답한 느낌은 사실이다. 나랑 궁합이 안 맞아 그럴 수도 있다.

 

조금 느지막이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늦은 오후에 출발하는 기차라 전날에 부지런 떨면서 짐을 챙길 필요가 없어서 좋다. 늦잠 잘 것 다 자고 샤워도 할 것 다하고 이렇게 천천히 짐을 챙기면 된다. 이게 이번 여행의 마지막 두 번째 짐 싸기가 될 것이다. 뉴델리에서 숙소를 옮기지 않는다면.

 

옥상에 올라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글을 쓴다. 마지막 아침이라 생각하니 며칠 간 보았던 호수도 새롭게 보이는 듯하다. 날씨도 맑을 것 같다. 해가 비치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인도는 커피가 글라스에 담아 나온다. 물론 잔이나 머그에도 주긴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투명한 유리 글라스에 담아 나온다. 짜이 빼고는 뜨겁던 차갑던 대부분의 음료를 유리 글라스에 담아 마신다. 그래서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특히 여성분들은 뜨거운 글라스를 감싸기 위해서 손수건 같은 것을 하나 꼭 가지고 다닌다.

 

 

 

 

 

열시가 조금 안 돼서 체크아웃을 했다. 방값과 식사비를 정산하고 짐을 옥상 사무실에 맡겼다. 조드푸르의 방값이 비싸서 그런지 이곳에서의 숙박 지출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탄두리가 한 마리에 300루피밖에 안하지 않는가. 매일 탄두리를 먹었음에도 지출이 크지 않다.

 

아침 먹으로 우다이푸르에서 항상 가던 수제비 집으로 갔다. 덕분에 이곳에서는 음식 걱정 안하고 잘 지낼 수 있었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아침을 여기서 하는 셈이다. 역시나 세 그릇을 시켜서 형이랑 나눠 먹었다. 곱빼기를 메뉴에 넣었으면 싶다. 정말이지 맛은 한국에서와 전혀 다르지 않다. 국물이 정말 좋다. 인도의 향신료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매운 고추를 넣어서 얼큰하기까지 하다. 감자도 많이 들어가 있고. 가격도 한 그릇에 100루피. 블로그에서는 올 초까지만 해도 80루피라고 했는데. 그새 올렸나 보다. 하지만 올린 100루피도 나쁘지는 않다. 어디 가서 100루피에 이런 한국 음식을 맛보겠는가?

 

궁금하다. 어디서 수제비 만드는 것을 배웠을까? 원래 있던 인도 음식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것일까, 아니면 한국 사람에게 배운 것일까? 이 식당은 그냥 보통의 인도 식당이다. 수제비와 칼국수를 빼면 다 인도 음식이다. 어찌되었든 이 식당 덕에 아침은 얼큰한 수제비로 식사를 든든히 할 수 있었다. 몇 달 후에는 이 가게도 옮긴다고 하니 다시 우다이푸르에 온다고 하더라도 이 식당은 여기에 없을 것이다. 식당 주인도 우리가 오늘 떠난다는 것을 안다. 밥을 먹고 나서는 길에 나눈 주인장의 인사에 석별의 정이 깊게 묻어난다.

 

수제비 식당을 나서서 우리 숙소 맞은편에 있는 진저(Ginger) 카페로 갔다. 이곳에서 오전 시간을 때울 생각이다. 차를 하나 시켜서 마시면서 오전의 피촐라 호수를 바라본다. 인도 와이파이 시스템에는 재미있는 것이 있다. 매일 개인들에게 다른 비번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 비번은 그날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다. 또 한 기기에 사용하면 다른 기기에는 사용할 수 없다. 그러니 올 때 마다 새로운 비번을 받아야 하고, 두 개의 다른 기기를 동시에 사용하려면 비번을 두 개 받아야 한다. 와이파이 도용을 막으려고 하는 것은 이해하나 무척이나 번거롭고 귀찮을 뿐더러 가끔씩 시스템 에러가 발생한다.

 

오후 2시에 우리 숙소의 옥상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지금까지 오전에는 진저 카페 그리고 오후에는 숙소의 루프탑 레스토랑이 이곳에서의 주된 멍 때리기 장소였다. 진저가 서향이기 때문에 오전에 해가 비치지 않아서 시원하고 동향인 숙소는 오후에 시원하기 때문이다. 전망은 우리 숙소쪽이 시티 팰리스가 보이기 때문에 좀 더 낫다.

 

숙소 레스토랑에 와서는 우다이푸르 마지막 오찬을 즐겼다. 탄두리에 버터 치킨 그리고 킹피셔 맥주. 이곳에 와서 거의 매일 오전 수제비와 저녁 탄두리 덕에 큰 돈 안들이고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맥주만 마시지 않았다면 식사는 너무도 저렴하다. 마지막이라고 나온 탄두리는 지금까지 나온 닭 중에서도 가장 컸다. 우리가 매일 탄두리를 시켜서 큰 닭이 나오긴 했지만 이렇게 큰 닭은 처음이다. 탄두리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

 

 

 

 

지금까지 한국이나 인도에서 먹은 탄두리가 모두 작아서 원래 탄두리는 한국의 삼계탕처럼 작은 닭으로만 하는 줄 알았다. 그것이 이곳에 와서 완전히 깨졌다. 오늘 나온 것은 일반 탄두리 닭의 두 배 정도. 거기에 맥주 한 병. 이곳에서 탄두리에 맥주, 즉 인도식 치맥에 푹 빠진 덕에 그렇게 잘 안마시던 인도 맥주를 매일 마셨다. 살 좀 찌려나.

 

5시쯤에 숙소를 나섰다. 지난번 송 선배와 신 양이 가던 날 축제 때문에 길이 막혀서 기차 시각에 늦을 뻔 했었다. 그런데 오늘도 축제가 있는지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다. 뭔 놈의 축제가 이리도 자주 있는지. 넉넉히 서둘러서 나왔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릭샤가 있어서 올라탔는데 아니다 다를까 곳곳의 길이 통제되고 있었다. 릭샤꾼은 여기저기 길을 뚫어서 갔다. 조금 늦게 나왔다면 또 행사 행렬과 만날 뻔 했다.

 

어제 왔던 기차역. 반갑다. 어제 오전보다는 사람들이 많다. 우다이푸르역은 검문검색이 없어서 좋다. 오히려 쇼핑몰이나 영화관이 심하다. 플랫폼에 들어서자마자 우리가 탈 기차도 들어선다.

 

 

 

 

 

델리에서 자이살메르 올 때 탔던 기차보다는 조금 더 깨끗한 것 같다. 인도 기차는 재미있게도 출입구 입구에 탑승자 명단이 붙어 있다. 이름뿐만 아니라 나이와 외국인인지도 적혀 있다. 이걸 보고 자신의 탑승 차량과 좌석을 확인할 수 있다. 에어컨도 가동되고 있다. 더운 밖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고맙네. 그런데 미리 들어온 것이 아니라 사실은 지금 막 도착한 열차다. 아직 실내도 정리되지 않은.

 

 

 

 

 

 

 

우리와 같은 칸에 탄 사람들은 두 쌍의 커플과 어머니 한 분으로 구성된 가족이었다. 내 보기에 어머니와 두 딸, 그리고 사위 둘인 것으로 보인다. 딸 둘의 허벅지가 장난 아니다. 내 허벅지는 그냥 팔뚝 정도라고 할까. 인도 여성들이 하체 비만이 많다고들 하던데 그 말이 틀리지 않다. 얼굴이나 상체는 작은데 하체가 너무 비만이니 다소 기형적이다. 어머니는 전체적으로 엄청 뚱뚱하시다.

 

이 가족들 너무 시끄럽다. 덩치들도 큰 사람들이 우리 좌석을 차지하고 앉아서 쉬지 않고 떠들어 댄다. 나중에 둘째 딸은 우리의 아래 침대까지도 눈독을 들인다. 형이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처음에는 아래 침대가 자기 침대라고 해서 표를 보여주기까지. 확인하고는 복도 쪽 상단에 있는 자기 침대하고 바꾸자고 한다.

 

인도에서 여성의 인권문제가 항상 대두되는데, 오히려 이번 여행 중에는 인도 여자들이 좀 드세고 배려심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아주 지엽적인 경험에서 나온 지극히 피상적인 느낌이라는 것을 안다. 다만, 이번 여행에서 든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라다크의 티베트 여성들이나 루브르 밸리(Nubra Valley) 투르툭(Turtuk)의 이슬람 여성들과는 달리 인도 여성들에 대해 내가 받은 인상은 다소 부정적이다. 제대로 접해본 여성들도 거의 없지만 말이다.

 

인도 사람들 저녁이 늦는다고 하더니만 저녁 9시쯤 되어서야 너도나도 저녁을 먹기 시작한다. 사실은 좀 피곤해서 언제 침대를 펴나하고 눈치를 보고 있다가 9시쯤 주변 인도 사람들이 움직이길래 침대를 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저녁 먹을 준비였다. 형이랑 나는 자리를 좀 피해줬다. 열차의 거의 모든 인도인들이 비슷한 시간에 서로들 저녁을 먹기 시작한다. 대부분 식사는 미리 준비해 온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기차는 계속 역마다 선다. 잠깐 정차하는 시간 동안 내려가서 먹을거리를 사가지고 오는 사람들도 많다. 한때는 우리도 그랬다. 어렸을 때 기차 타면 잠깐 서는 역에 내려서 우동이나 어묵을 먹곤 했다. 고속철도가 생기고 나서는 그런 낭만이 없어졌지만.

 

 

 

 

 

식사를 마치니 잠 잘 준비를 한다. 저녁을 이렇게 늦게 먹고 바로 자니 비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문화적 습관이 생긴 이유가 뭘까 궁금해진다. 저녁을 늦게 먹고 바로 잠자리에 드는 것은 일반적으로 건강에 지극이 안 좋다고 알고 있다. 종교적인 이유 때문일까?

 

인도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10시가 되니 소등을 한다. 이 시각이 바로 잠잘 시각인 셈이다. 우리도 얼른 잘 준비를 하고 잠을 청한다. 내일이면 바로 델리다. 우리 여정의 마지막 종착지.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