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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4: 가까이 하기엔 너무 덥고 습한 뉴델리(20170807)

경계넘기 2018. 1. 31. 12:50

 

2017. 8. 7. . 흐리다가 오후 폭우. "가까이 하기엔 너무 덥고 습한 뉴델리

 

아침 8시쯤 아침을 하러 옥상의 레스토랑으로 갔다. 뷔페식 아침.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좋다고 말할 수는 없는 그런 아침. 그래도 원 없이 아침을 먹을 수 있고, 특히 커피는 원두다.

 

식당에서 한국인 남자 여행자를 만났다. 며칠 전에 인도에 들어왔다고 하는데 원래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귀국을 당겨서 내일 한국에 간다고 한다. 인도가 너무 더럽고 짜증나서 도저히 여행할 엄두가 나지 않는단다. 인도에 왔다가 일정을 댕겨서 귀국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데 그들 중에 한 명이다. 그래봐야 길지 않은 일정인 것 같아서 좀 버텨보라고 했는데 너무도 단호하다. 이미 비행기도 예약을 바꾼 상태라 더욱 힘들다. 개인적으로 아쉽기는 하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 곳이라면 다음 기회를 보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다. 버텨보는 것이 좋긴 하지만.

 

아침을 든든히 먹고 호텔방으로 돌아오니 오늘 일정이 아득하다. 갈 곳은 많은 데 이 더위를 뚫고 가고 싶은 곳이 없다. 그냥 생각나는 곳은 실내에 있는 박물관들뿐이다. 형과 신 양은 카톡으로 열심히 오늘 갈 곳을 상의하는 중이다. 그래서 나온 곳이 코넷 플레이스(Connaught Place) 근처의 옛 우물 건물을 보고 코넷 플레이스의 극장에서 영화를 보자는 것. 우물 건물은 멀리 가기 싫어서 잡은 코스인 것 같다. 입장료도 없고.

 

메인 바자르 시티은행에서 신 양과 김 선배를 만나서 릭샤를 타고 우물로 갔다. 멋들어진 옛 석조 건물 하나가 있다. 지하로 깊게 나 있는 계단식 길은 훌륭하다. 계단을 끝까지 내려가서 좁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우물이 나온다. 건물 규모는 크지만 막상 우물 자체는 크지 않다. 조드푸르(Jodhpur)에서 봤던 그런 곳인데 건물 규모는 더 크지만 물이 있는 우물은 훨씬 작다. 근데 맨 아래 우물로 가니 장난이 아니다. 냄새도 엄청날 뿐만 아니라 천장에는 새똥이 더덕더덕. 잠깐 보고 얼른 뛰어 나왔다. 신 양은 근처에 올 엄두도 못 낸다. 건물 하나만 덩그러니 있어서 더 이상 볼 곳은 없는 그런 곳이다.

 

   

 

 

 

 

코넷 플레이스는 거기서 걸어서 갔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어서 걸었지만 덥긴 덥다. 이곳만 해도 뉴델리라 그런지 올드델리, 특히 빠하르간즈에 비해서는 훨씬 깨끗하다. 길거리에 소도 없고. 코넷 플레이스에 도착하자마자 버거킹을 발견하고는 얼른 들어갔다. 배고프지는 않아서 아이스크림만 먹었다. 더위 식히려 들어간 것이다.

 

처음 간 극장은 단관이다. 우다이푸르에서 갔었던 그 유명한 체인점인데, 이곳은 특별히 단관이다. 아마도 스크린이 무척이나 클 것 같은데 아쉽게도 우다이푸르에서 본 인도판 해리가 셀리를 만날 때를 하고 있다. 다른 극장을 알아보러 가는 길에 펍(pub)이 보였다. 김 선배와 나는 이곳에서 맥주 한 잔 하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형과 신 양이 극장에 갔다오리로 했는데 술 좋아하는 신 양은 거의 개 끌려가듯이 끌려갔다.

 

인도에서 처음 보는 펍다운 펍이다. 하지만 기대했던 생맥주는 없단다. 다만 맥주를 할인해서 판다고. 80루피짜리 킹피셔 맥주를 시켰는데 아니다 다를까 작은 병에 있는 맥주다. 그래도 김 선배 말로는 고급 맥주란다. 고급 맥주를 80루피 가격에 마신다면 바가지는 아니다. 시원도 하고.

 

조금 있으니 형과 신 양이 왔다. 역시나 극장에는 우리가 본 영화들만 한다나. 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발리우드라고 하더니만 정작 영화관에는 볼 것이 없다. , 세 개 영화가 스크린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인도인들이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고들 하던데 막상 극장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초창기 중국에 비해서도 많지 않다. 영화를 주로 TV에서 즐기나 보다.

 

영화나 보면서 더위를 식혀보려던 우리의 계획은 일그러졌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우리 호텔에 가서 시원한 에어컨에서 술을 마시자는 것. 호텔 근처에 와인숍이 있으니 그곳까지 릭샤 타고 가기로 했다. 펍에서 나오니 하늘이 흐려져 있다. 해를 가려주니 그나마 다행이다. 릭샤를 타고 호텔 근처로 가는 길에 원래 생각했던 곳보다 더 가까운 곳에 와인숍이 보였다. 얼른 릭샤에서 내려서 맥주를 샀다. 녹색 킹피셔 캔이 80루피였다. 웬만한 곳에서 110루피에 팔던 것이다. 가격이 너무도 착하다는. 신 양은 정신없이 산다.

 

술을 사서 걸어서 호텔로 가는데 갑자기 날씨가 더 흐려지기 시작했다. 김 선배가 곧 비가 쏟아질 것 같다고 해서 서둘러서 호텔로 왔다. 아니다 다를까 호텔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서 폭포수 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호텔 앞길은 금세 개천으로 변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저 비를 제대로 맞을 뻔 했다. 뉴델리도 아열대에 속하니 아열대 기후의 여름 특성인 스콜이다. 그런데 동남아시아에서 만나는 스콜과 기분이 다르다. 이곳 인도에서는 길에 똥과 오물이 너무 많은 관계로 비가 오면 길이 정말 똥물이 된다. 비만 맞는다면 그런대로 버티겠는데 그 똥물을 건너 다녀야 하니 미친다. 그래서 인도에서의 비는 그다지 반갑지가 않다.

 

원래는 호텔에 들어왔다가 안주 겸 음식을 사러 나갈 생각이었는데 나갈 엄두를 못 냈다. 그냥 과자에 맥주를. 호텔 방이 넓어서 4명이서 술을 먹어도 좁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게다가 시원하기까지. 여느 카페 못지않다. 아니 더 시원하다. 탁월한 선택.

 

열 캔을 금세 마셨다. 형은 거의 마시질 않았으니 우리 셋이 마신 셈이다. 신 양이 배도 출출하고 술도 더 사와야겠다고 한다. 비 때문에 갈 생각을 못하는데 비는 거의 멎었단다. 다만 길이 한강이다. 형과 신 양이 다녀오는 사이에 김 선배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보다는 괜찮은 사람 같다. 레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미술을 전공해서 애니메이션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지만 최근에 불교미술에 관심이 생겼다고. 레에서 한국 불교미술 한 점을 완성했단다. 원래 목표였던 것이란다. 불상 하나를 그린 것인데 그 밑그림 하나 그리는데 거의 한 달이 걸렸다고.

 

아침에 호텔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도 불렀다. 이번에도 열 캔. 거기다가 탄두리 치킨과 붂음국수까지. 길에 물이 엄청나게 고여 고생했단다. 그 똥물을 건너다니며 왔으니 수고가 엄청났다. 형은 들어오자마자 바로 화장실에 가서 발과 슬리퍼를 씻었다. 가까워도 최대한 릭샤를 타고 다녀왔는데, 그럼에도 신 양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형만 시켰다나.

 

그렇게 힘들게 사왔건만 정작 사온 신 양은 한 캔 정도 마시더니만 침대에서 거의 떡실신. 저녁 9시가 훌쩍 넘어서야 술자리가 파하고 신 양을 깨웠다. 여성분들은 메인 바자르의 숙소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지 않은 관계로 출출해서 우리도 같이 빠하르간즈로 가서 한국 식당 쉼터에서 짬뽕밥을 먹었다. 나에겐 해장인 셈. 저녁인데도 덥고 습하다. 저녁 10시가 넘은 시각의 빠하르간즈는 처음인데 여전히 사람들로 혼잡하다.

 

by 경계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