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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 (라다크, 라자스탄, 델리)

델리 5: 회자정리(會者定離)(20170808)

경계넘기 2018. 2. 2. 09:54

2017. 8. 8.  오전에 맑다가 늦은 오후에 비.    "회자정리 (會者定離)“

 

술기운이 아직도 남았는지 빠하르간즈의 여성분들은 아침에 다들 좀 쉰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후 늦게 호텔에 올테니 짐 좀 맡아 달라고 하다. 그리고 저녁에는 악샤르담 사원(Akshahdham Mandir)의 분수 공연을 보러가자고 한다.

 

지난 일요일 우리가 도착하던 날에 송 선배가 가고, 오늘밤 늦게, 정확히는 내일 새벽 비행기로 신 양과 김 선배가 떠난다. 신 양은 태국 방콕으로 김 선배는 서울로 간다. 인도는 공항에 일찍 가봐야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대략 3시간 전에야 공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 전에는 waiting room이라는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일찍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다행히 우리가 시원하고 널찍한 호텔방을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오전에 시간이 조금 붕 떠서 우리들끼리 민속박물관이나 다녀왔다. 뉴델리에도 볼 것들은 정말 많다. 유적지도 많고. 하지만 이런 날씨에는 그림의 떡이라고나 할까. 덥고 습해서 도저히 걸어 다닐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에어컨이 나오는 실내 박물관 투어다. 요즘 여행 다니다보면 종종 박물관을 가곤 한다. 박물관에 가면 그 곳의 역사와 문화를 한 번에 알 수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재미도 있고 뿌듯한 느낌도 든다. 옛날에는 수학여행 가듯이 거의 의무적으로 가서 수박 겉핥듯 봤는데 요즘은 나름 찬찬히 본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가진 박물관을 찬찬히 둘러보려면 거의 한 나절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은 관람 시간이 길지 않아 보이는 민속박물관으로 가기로. 가져간 여행책에도 델리의 숨어있는 보석상자 중 하나라고 나와 있다. 입장료도 많이 비싸지 않아 보이고.

 

호텔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인디아 게이트 뒤편이라 릭샤 100루피에 왔다. 이제는 제법 릭샤하고 흥정도 곧잘 한다. 뭐 흥정의 스킬이라고 해봐야 저편의 가격을 묻고, 우리쪽의 가격을 제시한 다음 받아들이지 않으면 바로 뒤돌아서는 것이지만.

 

한마디로 민속박물관은 완전 실패다. 거의 폐관 수준. 민속박물관은 다민족 국가인 인도에서 소수민족들의 문화를 모아 놓은 곳이다. 주류 힌두문화가 아닌 소수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에어컨이 나오는 곳은 전시관 한 곳뿐이고, 대부분의 전시관은 에어컨 없는 것은 물론이고 전시물도 엉망이다. 이게 국가 수준의 박물관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다. 더위를 피하려 실내를 왔는데 오히려 모기까지 물렸다. 너무 덥고 볼 것이 없어서 에어컨이 나오는 전시실만 두 번을 봤다. 야외에 있는 소수 민족 마을을 복원해 놓은 Village Area도 관리가 제대로 안되어서 엉망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200루피 요금이 싼 것이 아니라 엄청 비싼 것이다. 에어컨이 나오는 전시관만 제대로 박물관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델리는 확실히 소를 통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올드델리인 빠하르간즈에서도 뉴델리인 코넷 플레이스와 라즈 파트(Raj Path) 지역에서도 소를 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특히 뉴델리 지역은 길이 무척이나 깨끗하다. 길에 똥은 거의 볼 수 있다. 더욱이 이곳 라즈 파트 지역은 국가의 심장부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바로 릭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덥고 습해서 점심 생각도 들지 않는다. 바로 샤워하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침대에 뒹글뒹글하고 있자니 신 양과 김 선배가 일찍 들이닥쳤다.

 

분수 공연이 저녁 7시 반에 있다고 해서 5시쯤 호텔을 나섰다. 악샤르담 사원은 2005년에 문을 연 힌두사원이다. 새로 지은 사원이긴 하지만 규모가 어마어마하다고. 특기할 것은 사원 안으로 일체의 물건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카메라는 물론이고 핸드폰까지. 이들 물건들은 입장 전에 맡겨야 하는데 그 줄이 어마어마해서 맡기고 찾는데 시간을 많이 소비한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으로 모든 물건, 핸드폰까지도, 방에 두고 정말 단독 군장으로 그곳에 갔다. 핸드폰도 없이 가자니 서로들 너무 낯설어 한다.

 

신 양은 한참 메모를 한다. 역명과 찾아가는 방법을 적고 있는 것인데 보통은 스마트폰에 저장하거나 확인을 해보면 되는 일이었다. 스마트폰이 나타난 것이 채 10년도 안 되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사람들의 생활에 많은 변화를 준 것이다. 바로 몇 년 전까지의 모습인데도 그 모습들이 낯설다.

 

악샤르담은 뉴델리 동쪽으로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 릭샤로는 어림없는 거리. 우선 릭샤로 빠하르간즈 근처의 RK 아쉬람(Ashram)역으로 가서 거기서 지하철 메트로를 탔다. 공항철도 이후 처음 타보는 지하철. 역도 철도도 깨끗하고 최신식이다. 다만 역시나 엄격한 검문검색을 통과해야 해서 번거롭다. 다행히 같은 블루라인에 있어서 악샤르담까지는 갈아탈 필요가 없다. 30분 후에 악샤르담역에 도착했다. 거기서는 조금 걸었다. 다행히 늦은 오후라 한낮의 강렬함은 무뎌졌다.

 

사원입장료는 무료. 그런데 정말 입장이 장난 아니다. 모든 물건들은 맡겨야 하는데 물건 맡기는 곳에 인파가 역시나 많다. 오늘은 평일이라 한산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는 맡길 물건이 없어서 바로 패스했는데도 문제는 검색. 사람은 많은데 검색 창구는 몇 개 없서 줄이 엄청 길었다. 무슨 검사를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하는지.

 

사원은 거대하고 이것저것 볼만한 것은 있다. 특히 중앙에 있는 사원은 끝이 없는 조각들로 둘러싸여 있다. 조각 하나하나마다 이야기가 있어서 그것만 찬찬히 보더라도 시간은 꽤 걸릴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마치 롯데월드의 매직 아일랜드에 들어온 기분이 든다. 아무래도 역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손때 묻은 역사가 깃들여야 건물이든 뭐든 그 아스라한 숨결이 느껴지게 마련인데 그런 역사의 손때가 없는 곳은 화려할수록 그저 돈의 향기만 느껴진다. 나에게 악샤르담은 그런 곳이었다. 갑자기 비가 거세게 내려서 한참을 비를 피했다.

 

일찌감치 분수 근처에 자리를 잡고 음악분수 공연을 기다렸다. 공연은 80루피. 공연 한 시간 전이라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니 꽉 찬다. 더위에 몸은 찐득찐득. 애니메이션과 함께 분수공연은 나름 볼만 했다. 덥지만 않았다면 무척 좋았을 것 같다. 시간은 한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분수 공연은 종교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분수를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의 벽면을 이용한 레이저 쇼와 애니메이션도 색다르다.

 

돌아가는 길이 인파 때문에 걱정되어서 서둘렀는데 막상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오니 한산하다. 열차 안도 한산하고. 올 때보다 엄청 편하게 돌아왔다. 호텔에 와서 신 양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우리가 방을 가지고 있으니 갖는 여유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땀에 젖은 몸과 옷을 가지고 공항으로 갔어야 했을 텐데 말이다.

 

호텔에서 수다를 떨면서 쉬다가 10시 반쯤 신 양과 김 선배는 공항으로 출발했다. 갈 때도 우리 호텔의 800루피 택시서비스를 이용했다. 처음에는 그냥 길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했는데 택시가 보이질 않았다. 일반 택시는 한 300루피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호텔의 택시서비스를 이용한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가격이었다.

 

호텔 앞에서 택시에 짐을 실어주고 떠나는 신 양과 김 선배와 작별인사를 하는데 또 헤어짐의 아쉬움과 섭섭함이 밀려온다. 신 양하고는 거의 50일 가까이, 이번 여행의 거의 처음과 끝을 같이 했다. 레에 도착한 첫날, 찾아간 올뷰(All View) 게스트하우스 정원에서 신 양과 송 선배를 처음 봤었다. 그게 인연이 돼서 지금까지 거의 모든 여정을 함께 했었다. 마치 처음부터 같이 여행 온 친구처럼 말이다. 딸들 시집보내는 것처럼 이들을 하나하나 떠나보내고 있다. 일요일에 송 선배를 그리고 오늘 신 양과 김 선배를. 모두들 올뷰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남은 헤어짐을 기약한다고 한다. 더욱이 여행에서의 만남은 언제나 헤어짐을 전제로 한다. 길 위에서의 만남은 길 위에서 헤어진다. 하지만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헤어짐이기에 더욱 애틋하다. 그래서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하고는 정을 아껴야 하는데 머나먼 타국에서의 인연이기에 자연스레 더욱 정이 가고 의지가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행 중에는 곧잘 짜증도 내고 토닥거리다가도 막상 헤어지면 그게 그렇게 아쉽다. 잘 해 주지 못한 게, 더 좋은 시간을 갖지 못한 게 미안하고 아쉬워진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인생도 하나의 먼 여행이라고들 한다. 그 과정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진다. 영원히 같이 할 것 같은 사람들도 언젠가는 헤어지게 마련이다. 같이 있을 때는 그 시간이 영원할 것 같아도 지나고 보면 짧은 순간이다. 헤어지고 나면 아쉬움과 애틋함 그리고 미안함이 남는 것은 여행이나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만나면 헤어지기 마련, 지금 나와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모두들 떠나보낸 지금 다시 우리 형제만 남았다. 이번에는 진짜 만날 기약이 없다. 인도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사람들일 것이다. 그 첫 만남의 순간들과 함께.

 

by 경계넘기